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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1시간 지각…유니폼 대여…세상에 이런 축구팀이

[취재파일] 1시간 지각…유니폼 대여…세상에 이런 축구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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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축구클럽 아틀레티코 투쿠만이 창단 115년 만에 출전한 리베르타도레스컵에서 쏟아지는 악재들을 뚫고 감격적인 첫 승을 거둬 화제입니다. 해발 2,800미터 고지대인 에콰도르 키토 원정경기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치르기 위해 나름 머리를 썼다가 큰 일 날 뻔 했습니다. 킥오프 시간 1시간 뒤에야 경기장에 도착했는데, 유니폼을 안 가지고 와 홍역을 치렀습니다. 이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아틀레티코 투쿠만 로고
● 115년 만에 출전한 리베르타도레스컵

리베르타도레스컵은 남미의 ‘챔피언스리그’라고 보시면 됩니다. 남미 최강의 프로 축구팀을 가리는 대회로 각국 리그 상위권 팀들이 출전합니다. 아르헨티나 북부 도시 투쿠만을 연고로 하는 아틀레티코 투쿠만은 1902년 창단 이후 주로 하부리그를 맴돌며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하다가 올 시즌 창단 후 처음으로 리베르타도레스컵 출전 티켓을 얻었습니다. 에콰도르의 키토를 연고로하는 엘 나시오날과 1라운드에서 맞붙었는데, 지난 4일 1차전 홈경기에서 2대 2로 비겼습니다. 그래서 2차전 원정경기는 이들에게 반드시 이겨야 하는 한 판이었습니다.

● 고지대 극복을 위한 ‘치고 빠지기 작전’

에콰도르 키토는 해발 2,800m 고지대입니다. 성냥불을 켜면 2~3초 안에 꺼질 정도로 산소가 부족한 곳입니다. 고산병 극복을 위해 비아그라가 필요할 수도 있는 곳이죠. 아틀레티코 투쿠만 구단은 고지대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른바 ‘치고 빠지기 작전’을 계획합니다.

가끔 남미 축구팀들이 고지대 경기에서 사용하는 방식이기도 한데, 일단 저지대에서 산소를 충분히 몸속에 충전한 뒤 킥오프 직전에 경기장에 도착해 90분을 뛰고, 곧바로 돌아오는 일정을 짠 겁니다.

그래서 아틀레티코 투쿠만은 에콰도르의 해안 도시 과야킬에 1차 캠프를 차립니다. 과야킬은 경기장소인 키토에서 450km 떨어진 곳입니다. 여기서 경기 당일인 7일 오후에 비행기를 타고 킥오프 1시간 전에 경기장에 도착할 예정이었습니다. 필승을 다짐하며 선수들은 산소를 충분히 몸속에 채우며 컨디션을 끌어 올렸습니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터졌습니다.
아틀레티코 라커룸
● ‘비행 허가’ 실패…유니폼 놔두고 몸만 탑승

아틀레티코 투쿠만이 탑승 예정이었던 전세기가 비행허가를 받지 못한 겁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는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지난해 샤페코엔시 전세기 추락 참사 이후 더욱 엄격해진 비행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으로 알려 졌습니다. 다급해진 구단 측은 일반 비행기표 구하기에 나섰고, 구단 관계자들을 제외하고 경기에 뛸 선수들만 어렵게 비행기에 태웠습니다. 하지만 전세기에 실었던 화물은 옮겨 실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유니폼도 없이 경기하러 떠난 겁니다.

● 대사관까지 출동…U-20 대표팀 유니폼 급구

하늘이 도왔을까요? 때마침 에콰도르 키토에서는 20세 이하(U-20) 남미 선수권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오는 5월 한국에서 열리는 FIFA 20세 이하 월드컵에 출전할 팀을 가리는 대횝니다. 구단 측은 에콰도르의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의 도움으로 20세 이하 대표팀 유니폼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대사관의 도움으로 공항 입국 절차를 간소화하면서 경기장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때가 킥오프 시간을 이미 넘긴 뒤였다는 겁니다.

● 1시간 늦게 도착…극적으로 경기 성사

FIFA규정에 따르면 선수단은 킥오프 시간 이후 45분이 지나서 경기장에 도착하면 몰수 게임이 선언될 수 있습니다. 다만 두 팀이 합의를 하면 경기가 성사될 수 있습니다. 이날 킥오프 시간은 저녁 7시 15분이었는데, 투쿠만 선수들은 7시에야 키토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킥오프 시간이 지나면서 TV 중계화면에는 45분부터 1초 씩 줄어드는 타이머가 작동하는 진풍경기 펼쳐졌습니다. 그 사이 투쿠만 선수들을 실은 버스는 전속력으로 경기장으로 튀었습니다. 하지만 버스는 45분 타이머가 멈추고도 22분이 지난 저녁 8시 22분에 도착했습니다. 몰수 게임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남아메리카축구연맹(CONMEBOL)이 중재에 나섰습니다.

관중이 그대로 경기장을 떠나지 않고 기다린 게 결정적이었습니다. 결국 처음에 ‘몰수 게임’을 주장하던 홈팀인 엘 나시오날이 합의를 하면서 극적으로 경기가 성사됐습니다.
아틀레티코 투쿠만 승리

● 황당했지만, 의미가 컸던 '역사적인 승리'
 
가장 황당했을 또 한 무리는 바로 TV 중계 방송팀이었습니다. 갑자기 선수들의 유니폼이 바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등번호를 맞춰 있지 못한 선수들이 있어서 중계 캐스터에게는 악몽이었을 겁니다. 투쿠만은 후반 19분 잠페드리의 극적이 헤딩 결승골로 승리를 거뒀는데, 등번호 9번인 잠페드리는 20세 이하 대표팀의 9번 마르티네즈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투쿠만은 창단 115년 만에 리베르타도레스컵에서 거둔 역사적인 첫 번째 승리를 기록하며 2라운드에 진출했습니다.

유니폼을 빌려준 20세 이하 대표팀은 이틀전 홈팀 에콰도르에게 3대 0 패배를 당했습니다. 투쿠만이 아우들의 패배를 되갚아 준 셈이 됐습니다. 20세 이하 대표 선수들은 투쿠만의 극적인 승리의 기운이 담긴 유니폼을 입고 2차전에서 브라질과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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