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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새누리당 지우고 자유한국당?

'친박 정당' 변화 없는 이미지전략은 무의미

[칼럼] 새누리당 지우고 자유한국당?
사람의 이름을 바꾸는 것과 정당의 이름을 바꾸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쉬울까? 법률 절차라는 면만 보자면, 정당의 당명 변경이 더 손쉽다고 할 수 있다.

개인이 이름을 바꾸려면 가정법원에 개명 신청을 해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 법원은 기존의 이름을 계속 쓸 경우의 고통과, 이름을 바꿀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혼란을 비교해서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내 이름 내가 바꾸는 데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한 것은 사회적 혼란 가능성 때문이다. 내 이름은 나의 것인 동시에 사회의 것이기도 하다. 범죄자가 범죄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이름을 바꾸는 것을 법원은 허락하지 않는다. 최순실 모녀와 조카 등 이번 국정파괴 사건의 관련자들 중에는 유독 개명한 사람이 많다. 유죄가 확정되면 이들은 더 이상 개명을 하지 못할 것이다.
최순실
개인이 이름을 바꾸는 사유는 다양하다. 어감이 좋지 않은 이름 때문에 평생 놀림을 받아온 사람들이 개명을 통해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운명을 바꾸고 싶어서’ ‘성공하고 싶어서’ 같은 사유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자아 정체성 확립보다는 행운과 성공에 대한 욕심에서 비롯된 개명 사유”라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정당은 어떤 때 당명을 바꾸는가?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뭔가 다른 꿍꿍이속이 있는 걸까.

● 개명은 ‘허가’, 당명 변경은 ‘등록’

정당의 당명 변경은 개인이 이름을 바꾸는 것보다 자유롭다. 법원의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 관할 선관위에 ‘등록’하면 된다. 그런데 큰 실책을 저질러 유권자의 지지를 잃은 정당의 당명 변경이, 범죄자의 개명에 비해 사회적 혼란을 일으킬 위험성이 작다고 볼 수 있을까?
새누리당 인명진 비대위원장
새누리당이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바꾸기로 했다. 한나라당에서 당명을 바꾼 지 5년 만이다. ‘보수의 힘’ 등 4개 당명 후보를 두고 최근 당원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자유한국당’이 1위를 차지해 의원총회에서 받아들였다. 새누리당은 13일 전국위원회를 열어 당헌당규 개정안과 함께 새로운 당명을 최종확정할 계획이다. 또 태극기를 연상시키는 모양의 새로운 당 로고도 만들 계획이다. 하지만 ‘친박 정당’이라는 정체성을 그대로 둔 채 이름만 바꾸는 것에 대해 “최순실의 개명과 뭐가 다른가” “당명을 바꿀 게 아니라 탄핵정국의 책임을 지고 해체해야 한다.”라는 등 냉소적인 반응이 많다.

● 당명 변경한다지만, 쇄신은 없고 역류 조짐

새누리당은 인명진 비대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쇄신작업을 추진했으나 성과는 미미하다. 친박 핵심인사의 탈당을 요구했으나 몇 명의 당원권 정지만 했을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자진 탈당을 권유했다가 거부당하기도 했다. 오히려 최근에는 미묘한 역류도 감지된다. 김진태, 조원진, 윤상현 의원 등 소속 의원들이 최근 친박 집회에 나가서 탄핵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당초 친박 청산을 주장했던 인명진 비대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당 차원의 징계가 없을 것”임을 재확인했다.
친박단체 맞불 집회
5년 전 새누리당은 당명 변경 이후 선거에서 승리한 경험이 있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이 추락하자 한나라당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를 출범시켰고 당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 2012년 2월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그해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예상을 뛰어넘는 승리를 거뒀다. 그 때의 당명 변경은 어느 정도나마 쇄신의 실체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당명을 바꿔서 뭘 하겠다는 것인지, 변화의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 새누리당의 당명 변경을 놓고 유독 비난의 목소리가 높지만, 사실 당명 변경은 우리 정치사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숱하게 반복돼온 일이다. 이제는 새로운 당명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보수정당의 당명은 대체로 대통령과 함께 변화해왔다. 이승만의 자유당 ⇒박정희의 공화당⇒ 전두환의 민정당 ⇒ 노태우의 민자당 ⇒김영삼의 신한국당 ⇒ 이명박의 한나라당  ⇒박근혜의 새누리당으로 계보가 이어진다. 이 계보를 당명만 바꾼 자유한국당이 잇게 될까? ‘친박 정당’의 정체성을 탈피하지 못하는 한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갈라져 나간 바른정당이 대안이 될 것 같지도 않다. 한국의 보수는 초유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보수 정당이 집권 세력을 중심으로 대체로 단일한 흐름을 유지해온 데 비해, 진보 정당의 계보는 좀 더 복잡하다. 야당으로서 다양한 노선으로 갈라져 이합집산을 거듭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정당이 탄생하고 소멸했다.

진보정당이 집권했던 1998년 이후의 큰 줄기만 보면,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 노무현의 열린우리당이 10년간의 집권세력을 이루었고, 이후 다시 야당이 된 이후 대통합민주신당 ⇒민주통합당 ⇒ 새정치민주연합을 거쳐 현재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으로 복수 야당 체제가 형성되어 있다.

최근에는 국민의당과 손학규 의장이 이끄는 국민주권개혁회의의 통합 논의에서 ‘당명 개정’이 쟁점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손 의장 측에서는 통합의 명분을 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당명 개정을 요구했지만 국민의당에서는 “당명 변경으로 정체성에 혼돈을 줘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해 결국 당명 변경 없이 통합 선언을 했다.
박지원과 손학규
한국의 정당은 길지 않은 역사 속에서 역동적인 변화를 거듭해왔고 최근에는 그 변화의 양상이 더욱 복잡해졌다. 잦은 이합집산과 당명변경 뿐 아니라 너도 나도 인기위주로 정책을 발표해 국민들은 정당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이 2백년 가까이 뚜렷한 정책적 차별성을 지켜온 것과 비교하면 한국의 정당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정당정치의 구조가 자리 잡지 못한 혼란스런 상황일수록, 듣기 좋은 말과 겉모습만으로 유권자들을 현혹하려는 이미지 정치의 부정적인 면이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다.

● 이미지를 뒷받침하는 실체를 따져봐야. 

하지만 현대 정치에서 이미지는 필수불가결한 정치수단이다.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이미지 정치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이미지가 표현하고자 하는 실체다. 실체가 뒷받침된다면, 이미지는 상품의 포장과도 같은 긍정적 기능을 가진다. 하지만 실체가 없다면? 이미지는 사람을 기만하는 수단으로 전락한다.

정치에 있어서 상품과 포장의 균형이 무너지고, 정치의 예능화가 확산되고 있다. 이는 정치의 퇴조, 정치의 위기상황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를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관조하기에는 우리가 처한 국내외적 상황이 너무 절박하다. 당명 변경이든, 쇄신이든, 민생 행보든, 선명성이든,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각종 이미지를 꿰뚫어볼 수 있어야겠다. 진정성 있는 실체가 있는 지를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잘못된 선택을 반복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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