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P&G의 팸퍼스 베이비 드라이 기저귀에서 독성물질인 다이옥신과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는 소식 때문에 파장이 일었습니다. P&G는 "극미량이 검출됐으니 안전에 문제 없다"는 입장을 그때부터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극미량'이라면 과연 얼마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고 그 내용을 방송기사와 취재파일로 전달했습니다.( 당시 취재파일: 기저귀에서 나온 '독성물질 극미량'은 얼마였을까?)
P&G에서 공개한 수치였지만 세계적인 기업이 이런 수치를 잘못 전달하진 않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언론이 정보와 어느 정도의 방향성을 제시할 순 있지만 최종 판단은 소비자의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극미량'이라던 수치가 얼마인지를 알렸고 소비자들의 반응은 "정말 극미량이긴 하네" "그래도 독성물질이 나온 건 사실 아닌가" 정도로 엇갈렸습니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나, P&G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저에게 2월 3일 알려줬던 수치가 잘못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과거 기준'으로 계산한 수치를 보냈었는데 업데이트된 기준대로 계산하면 달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P&G 측도 고심했겠지만 저도 고민에 빠졌습니다.
불과 사흘 전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면서 수치를 부각시켜 기사를 썼는데 이를 뒤집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P&G가 공개한 수치를 너무 믿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달리는 확인할 방법이 없기도 했습니다.(처음 조사해 기사를 쓴 프랑스 소비잡지는 검출량 자체를 공개하지 않았고 P&G에만 제공했습니다.)
고민 끝에 다시 공개해 바로 잡기로 했습니다. P&G가 이 수치를 전 언론에 공표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수치를 강조해서 썼던 SBS에서 이를 다시 알리는 게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좀 더 자세하게 풀면 이렇습니다.
원유- 우유 지방의 허용 기준치6.0 pg-TEQ/g과 비교했더니 3만 3천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이를 근거로 P&G는 '극미량'이라고 주장했고 근거가 된 수치를 접한 소비자 반응은, 앞서 적었듯 "정말 극미량이긴 하네" "그래도 독성물질이 나온 건 사실 아닌가"로 양분됐습니다.
그렇게 계산하는 데 쓰는 수치가 독성환산계수 TEF, 그렇게 계산해 농도를 표시한 게 TEQ입니다. 기저귀에서 검출된 다이옥신(퓨란류)은 독성이 약한 편이라 TEF가 0.0001이었습니다. 이를 곱해서 나온 수치가 0.000178인데, 문제는 이 TEF 0.0001은 WHO의 1998년 기준이었다는 겁니다. 2005년에 이 다이옥신에 대한 평가가 바뀌면서 TEF는 0.0003으로 3배 늘었습니다. 그렇다보니 독성을 환산한 수치도 3배가 늘어난 거죠. 검출된 다이옥신 양이 2004년까지 기준으로는 0.000178이지만 2005년 이후로는 0.000553인 것입니다.
다음은, 이와 비교할 대상에 대한 것입니다. 식품 중에서 우유 지방 허용 기준치와 비교했는데 TEF와 마찬가지로 이 또한 '과거 기준'이었습니다. 6.0은 2010년까지만 사용됐던 허용 기준치로, 2011년부터는 2.5로 더 내려갔습니다. 기준이 강화된 것이죠. 또 기저귀는 영유아가 사용하는 제품인데 성인 기준치보다는 영유아 기준으로 비교하는 게 합리적일 겁니다. EU 식품 기준에는 다이옥신에 대한 영유아 식품 기준치도 있었습니다. 0.1, 성인 기준보다 훨씬 낮습니다.
결국 2월 3일 수치보다 다이옥신 검출량은 3배가 늘었고 비교 대상인 기준치는 60분의 1로 내려갔습니다. 계산해보니 기저귀에서 검출된 다이옥신 양은 영유아 식품 기준치와 비교하면 188분의 1이 됩니다. 물론 미량입니다. 시각에 따라 '극미량'이라고도 부를 수도 있겠죠. '아주 적은 양'이라는 뜻의 극미량에 상하한선이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러나 33,000의 1일 때도 '극미량', 188의 1일 때도 '극미량', 175배나 차이나는 수치를 똑같이 '극미량'이라고 해도 괜찮을까요. 저는 괜찮지 않다고 봤습니다.
P&G는 이렇게 수치가 바꿔 공개한 게 "고의가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P&G 설명은, 처음 프랑스 잡지로부터 전달 받은 수치가 '과거 기준'으로 계산한 수치였다는 겁니다. 프랑스 소비전문잡지는 프랑스 국립소비자연구소에서 발간하고 있습니다만, 한국의 소비자단체들이나 심지어 정부기관에서도 종종 잘못된 자료를 제공하듯 그 연구소에서 조사한 것도 그럴 수 있습니다. 이 설명을 존중합니다. '과거 기준'으로 계산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자사에는 불리할텐데도 이를 기자인 저에게 숨기지 않았다는 점은 높이 평가합니다.(만약 이를 숨겼다면 언젠가 드러났을 때의 파장은 더 컸을 것입니다만.)
또 글로벌 기업인 만큼 한국 지사에서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도 이해합니다. 새로 계산한 결과도, 최신 기준치와 비교했을 때 188분의 1로 아주 적은 양인 만큼 안전에 문제 없다는 방침을 유지하는 것도 알겠습니다.
소비자들이 이번 사태를 놓고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혹은 아이에게 혹시 문제가 있진 않을까 불안해하고 있는지 그 마음을 헤아리는 건 제품을 파는 기업이 당연히 취해야 할 태도 아닐까요. P&G에서 한국 언론과 소비자 반응을 보다가 대응 수위를 높였다, 정도로 밖에 해석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고 있는 소비자는 불신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불신을 덜기 위해 정확한 정보를 많이 제공해야겠다고 반성하고 다짐했던 저는 또다시 부끄러웠습니다. 덜 부끄럽기 위해서라도 이런 취재를 더 많이 하고 더 '지적질'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