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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가기관들도 서로 감춰야 할 비밀이 있나요?

[취재파일] 국가기관들도 서로 감춰야 할 비밀이 있나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지난 3일 청와대에 대한 직접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청와대가 형사소송법을 근거로 불승인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5시간의 대치 끝에 결국 현장에서 철수했습니다. 당초 민정수석비서관실을 비롯해 청와대 사무실 여러 곳에서 관련 자료를 확보할 계획이었지만 무산된 겁니다.

오전 10시 청와대에 도착한 특검팀은 민원인 안내시설인 연풍문에서 민정비서관 등을 만나 영장을 제시하고 경내 진입을 시도했습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입건한다는 내용과 함께 해당 혐의가 명시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청와대는 경내 진입을 허용할 수 없다며 막아섰고 오후 2시, 한광옥 비서실장과 박흥렬 경호실장 명의의 불승인 사유서를 특검에 제출해 최종적으로 '경내 진입 불가' 입장을 확인했습니다. 불승인 사유서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비밀 보호’입니다.

● '청와대 방패' 된 형사소송법 제110조 · 제111조

그렇다면 청와대가 압수수색을 거부한 법적 근거는 뭘까요? 앞서 말씀 드린 대로 형사소송법입니다.
 
제110조(군사상 비밀과 압수)
①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는 그 책임자의 승낙 없이는 압수 또는 수색할 수 없다.
②전항의 책임자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승낙을 거부하지 못한다.

제111조(공무상 비밀과 압수)
①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자가 소지 또는 보관하는 물건에 관하여는 본인 또는 그 해당 공무소가 직무상의 비밀에 관한 것임을 신고한 때에는 그 소속공무소 또는 당해 감독관공서의 승낙 없이는 압수하지 못한다.
②소속공무소 또는 당해 감독관공서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승낙을 거부하지 못한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두 조항 모두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압수수색) 승낙을 거부하지 못한다”는 단서를 달고 있다는 점입니다. 청와대가 압수수색을 막기에 앞서 특검팀의 압수수색이 국가의 어떤 중대한 이익을 해치는지 반드시 설명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만약 단순히 ‘청와대는 국군통수권자이며 외교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직무 공간이다. 군사상 비밀이나 공무상 비밀을 다수 보관하고 있어 이곳을 압수수색 하는 것은 국가의 중대 이익을 해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이를 납득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요? 특히나 대통령 탄핵 심판과 함께 대통령의 범죄 혐의에 대한 특별검사의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말입니다.

● 靑, '비밀은 나의 것'…다른 국가기관은 못 믿는다?
청와대 압수수색 무산
위 형소사송법 조항의 핵심은 군사상, 공무상 비밀의 경우 해당 기관 책임자의 승낙 없이는 압수수색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압수수색은 검찰이나 경찰 같은 수사기관이 합니다. 국가기관 중에서도 사정 역할을 담당하는 중요 부서입니다. 결국 사정기관이 비밀을 확보해 수사하는 것이 국익을 해칠 수도 있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그런 비밀을 요하는 곳까지 압수수색을 해야 할 만큼 중대한 범죄 혐의가 미칠 해악과 사정기관이 그 비밀을 확보해 수사하는 것이 미칠 해악 가운데 어느 쪽이 우리 국가와 국민이게 더 큰 해가 될까요? 특히나 영장을 발부하는 곳이 3권 분립으로 독립성을 갖고 있는 사법부라면 말입니다.

또 하나 위 조항의 기저에는 국가기관 간에도 국익 보호를 위해 숨겨야 하는 비밀이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청와대는 국가의 모든 정보가 모이는 곳입니다. 안보와 직결된 1급 비밀을 포함해 국익이 걸린 민감한 정보들이 취급됩니다. 그런 만큼 보안이 철저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외부로의 유출, 즉 외부의 위협에 대한 보안입니다. 물론 국가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라고 해서 모두 1급 비밀까지 취급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접근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그에 따른 비밀취급인가증을 발급합니다. 아무리 민감한 비밀이라도 국익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지 그저 청와대 혼자 몰래 감춰 두고 보기 위한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군의 전략 무기 숫자와 배치 현황 같은 1급 비밀도 북한 군의 움직임에 맞춰 관련 기관이 제때 참고해 우리 군의 전력 운용에 활용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솔직히 청와대가 갖고 있는 비밀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대부분 국방부나 국가정보원, 외교부 등 각급 기관들이 보고한 것들입니다. 국익을 해칠 우려가 있어 국가기관 간에도 비밀 접근을 제한한다는 것은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논리입니다. 한마디로 비밀 관리 문제에 있어 같은 국가기관끼리 서로 믿지 못한다는 건 국가의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정부가 정부를 못 믿는데 그런 정부를 국민이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청와대 입장에서 비록 껄끄럽고 불편할 망정 특검도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만든 법과 절차에 따라 다름 아닌 '대통령'이 임명한 국가기관입니다. 국회가 형사소송법을 만들 때 이런 규정을 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과 같은 상황에 활용하라고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닐 겁니다.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라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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