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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정혼란 조장해놓고…교육부 반쪽 사과

[취재파일] 국정혼란 조장해놓고…교육부 반쪽 사과
1년 넘게 교육현장을 들쑤셔놓은 국정역사교과서 최종본이 결국 모습을 드러냈다.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28일 현장 검토본을 공개한 뒤 약 두 달 만인 31일 오전 국정역사교과서(중학교역사1,2 고등학교 한국사) 최종본을 확정, 발표했다.
이영 교육부 차관
관심은 건국절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한민국 수립’ 표현이 어떻게 달라졌는가였는데,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현장 검토본과 같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고 기술했다. 대한민국 수립 관련 표현은 고교 한국사 246쪽에서부터 252쪽에 걸쳐 나온다. 한 달가량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접수된 국민 의견은 모두 3천807건이나 되는데 이 가운데 가장 많은 논쟁을 일으킨 부분이 대한민국 수립 표현이라고 이영 교육부 차관은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최종본에서 당초 입장을 유지한 채 대한민국 수립으로 못 박았다.
역사교과서 보도자료
국정교과서의 내용과 달리 교육부는 2018년부터 사용할 검정교과서 집필기준에는 ‘대한민국 수립’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용어를 모두 쓸 수 있도록 했다. 이런 교육부의 태도는 국정교과서 혼란의 정점에 있던 ‘건국절’ 논란에서 한 발 빼 물러서는 꼴이다. 또 스스로 국정 단일교과서 논리를 접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국정화 방침을 되돌리는 것이냐는 질문에 이영 교육부 차관은 “하나의 교과서만 쓰겠다는 취지 자체는 없어졌다고 보면 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교육현장에 혼란을 일으킨 데 대해 국민께 사과하라는 기자의 요구에 이 차관은 “어찌 됐든 교육부가 중요한 결정을 하는 데 포함돼 있던 사람으로서 사과드린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마지못해 말꼬리를 이었다. 국정교과서 편찬에 중요한 위치에 있던 사람의 뒤늦은 사과지만 교육부의 공식사과는 아니다.
국정교과서
국정교과서 강행에 대한 국민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교육부가 올 3월부터 국정교과서를 가르칠 연구학교에 1천만 원의 예산을 지원하겠다며 신청을 받고 있지만 전국 17개 교육청 가운데 13개 교육청이 국정화에 반대해 교육부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또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초 광역뿐 아니라 시.군.구 등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국정역사교과서 홍보물을 보내 주민 안내를 요청했지만, 자치단체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민심이 거세게 번지면서 일부 자치단체는 홍보물을 아예 배포하지 않거나 배포된 것을 회수하기까지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연구학교 신청 기간인 2월 10일까지 과연 몇 개 학교가 국정화 교재를 쓰겠다고 신청할지 의문이다.
국정교과서
국회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국회는 지난 1월 20일 본회의를 열어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추진 중단 및 폐기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처리했다. 재적의원 220명 중 찬성 131명, 반대 87명, 기권 2명으로 통과됐다. 결의안은 “정부가 교과서 국정화 추진 중단에 필요한 절차를 조속히 집행하고, 검찰은 국정화 추진과정에 비선 실세인 최순실 씨가 개입돼 국정농단을 했는지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도 같은 날 ‘역사 교과용 도서 다양성 보장에 대한 특별법(국정교과서 금지법)’을 의결해 법사위로 넘겼다. 앞으로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국정교과서 운명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금용한 교육부 학교정책실장 겸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장은 “법이 제정되면 더 이상 국정교과서를 쓸 수 없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심판 결과도 국정교과서의 명운을 쥐고 있다. 국정교과서는 박 대통령이 밀어붙였던 정책이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2년 전 국회의원들도 모르게 국정교과서 제작에 필요한 예산 44억 원을 기획재정부 예비비로 몰래 신청하는 꼼수를 쓰면서까지 국정교과서 사업을 추진했다. 여론을 등진 정책이다 보니 국정교과서의 운명은 끊없는 혼란과 분열을 예고했고 결국 교과서를 만들자마자 풍전등화의 신세가 됐다.

교육부는 국민에게 정중하게 사과해야 한다. 오만하고 잘못된 정책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공복(公僕)의 최소한 도리다. 대통령이 탄핵되거나 국정교과서 금지법이 통과되기 전인 지금의 상황만으로도 교육부가 사과해야 할 책임은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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