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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당신은 어떤 '편의점 인간'입니까?

[취재파일] 당신은 어떤 '편의점 인간'입니까?
편의점 도시락 코너

#'편의점 인간'(1)
"아침에는 이렇게 편의점 빵을 먹고, 점심은 휴식 시간에 편의점 주먹밥과 패스트푸드로 때우고 밤에도 피곤하면 그냥 가게 음식을 사서 집으로 돌아올 때가 많다. 2리터들이 페트병에 든 물은 일하는 동안 절반쯤 마시고, 그대로 에코백에 넣어 집으로 가져와서 밤까지 마시며 보낸다. 내 몸 대부분이 이 편의점 식료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나 자신이 잡화 선반이나 커피머신과 마찬가지로 이 가게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편의점 인간'(2)
"날마다 일하는 탓인지 꿈속에서도 편의점에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때가 많다. 아, 신제품 포테이토칩에 가격표가 붙어있지 않구나. 뜨거운 차가 많이 팔렸으니까 보충해 둬야겠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퍼뜩 눈을 뜬다. "어서 오십시오!"하는 내 목소리에 한밤중에 잠에서 깬 적도 있다. /아침이 되면 또 나는 점원이 되어 세계의 톱니바퀴가 될 수 있다. 그것만이 나를 정상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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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작가 무라타 사야카의 소설 '편의점 인간'에서 옮겨왔습니다. 주인공인 후루쿠라 게이코가 자신이 '편의점 인간'이라는 신인류임을 은연 중에 드러내는 부분입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편의점 인간'인데(2), "내 몸 대부분이 편의점 식료품으로 이루어진" '편의점 인간'이기도 합니다.(1)

 지난주 편의점에 몇 번이나 가셨습니까? 자주 가는 편의점이 몇 곳이나 있습니까? 편의점에서 주로 사는 상품은 무엇입니까? 자문자답하면서 보니 저는 편의점의 '편의성'에 크게 기대고 있습니다.  

 시내를 돌아다니다 편의점에 들를 때 외에 제가 주로 가는 편의점은 집에서 가까운 GS25와 미니스톱입니다. 조금 더 걸어나가서 CU와 세븐일레븐 매장에 갈 때도 있고 지하철역에서 집에 오는 길에 있는 'With Me'에도 가끔 들릅니다. 회사 근처에서는 길 건너 미니스톱이나 CU에 종종 갑니다. 끼니를 걸렀을 때 삼각김밥(주로 전주비빔밥 맛)이나 반숙 달걀을 사먹기도 하고 때론 사발면이나 소시지를 살 때도 있습니다. 어쩌다 바나나나 기타 채소를 사먹은 일도 있습니다. 어느 피트니스 트레이너가 "편의점에서 고단백, 고칼슘, 저지방의 건강식을 챙겨 먹을 수 있다"고 쓴 글을 보고는 '뭔 소리야' 싶었는데 요즘 편의점에선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예전엔 어땠을까요. 1989년 한국에 첫 편의점이 선 보였다 하는데 8년 뒤인 1997년엔 전국에 2천 개 정도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중 한 곳인 '훼미리마트'(CU의 이전 이름)에서 잠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과자류, 컵라면을 포함한 라면류, 삼각김밥 등 즉석식품들, 각종 음료수, 술, 담배, 냉동식품 등을 팔았습니다. 복권도 있었지만 로또는 아직 출시 전이었습니다. 상품의 다양성에서나 신선식품에서나 슈퍼마켓만 못했습니다. 당시에도 24시간 연중 무휴로 영업했기에 슈퍼가 문 닫는 밤과 새벽, 혹은 유흥가처럼 일반 슈퍼가 들어오기 힘든 틈새에서 강점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영세 슈퍼들 대부분이 문을 닫았고 백화점과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이 자리하고 그 틈새에 편의점이 자리잡은 듯합니다. 틈새가 오히려 더 커져서 편의점은 매년 급증하고 있고 매출 또한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2016년 현재 편의점은 3만 4천 곳에 이릅니다. 다른 유통업체는 매출 부진에 시달리는데 편의점만 20% 가까이 성장했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편의점에서 살 수 있습니다. '편의점 인간'의 한 대목에서처럼 아침엔 편의점에서 가볍게 삼각김밥에 우유 하나, 점심은 백종원이나 혜리 도시락, 저녁은 라면에 밥말아 먹거나 국밥을 돌려먹는 식으로 하루 세끼를 해결할 수도 있고 간단한 속옷과 스타킹, 양말도 구입할 수 있습니다. 펜이나 수첩, 봉투 등 문구류나 간단한 약품도 구입할 수 있습니다. 택배를 보내거나 받는 서비스도 수년 전 나왔고 편의점 상품을 모바일로 구입해 집으로 배달받는 서비스도 등장했습니다. 아직은 일부 점포에 한해서지만 무인세탁소, 은행 키오스크, 차량 대여 등 편의점에서 가능한 것들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마트에서 모든 걸 해결하는 '이마트 인간'은 여러 여건상 나오기 어려울 것 같은데 '편의점 인간'(1)은 도처에 있을 것 같습니다.  

 곳곳에 있는 만큼 편의점은 수시로 들르기 좋지만 상품의 질은 그리 높지 않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가격 대비 성능의 비율, 즉 '가성비'가 좋긴 하지만 성능보다는 가격이었죠. 3천-4천 원짜리 도시락은 한끼 해결에는 좋지만 대단히 뛰어난 맛이라든가 좋은 품질의 식재료를 썼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을 겁니다. 편의점 업계는 이제는 '가성비'에서 가격 못지 않게 '성능'도 챙기려 하고 있습니다. 단가가 조금 올라가겠으나 횡성 한우를 활용한다거나 김은 모두 완도산 김으로 바꾼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흔히 대기업이 이런저런 중소기업의 영역까지 확장하는 걸 놓고 '문어발식 확장'이라고 했는데 편의점의 다리도 새로운 영역을 찾아 계속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편의점

 문제가 되는 건 또다른 '편의점 인간'(2) 같습니다. 각 편의점 업체의 직영 비율은 적으면 1%, 많아야 5%를 넘지 않는 수준입니다. 나머지가 가맹점인데(일반 가맹과 위탁 가맹이 있는데 통칭해도 될 듯) 전국 편의점 수보다 조금 적다고 보면 가맹점 사업자도 3만 명이 넘는다고 보면 되겠죠. 20년 전 제가 일했던 훼미리마트에서는 주중, 주말 아르바이트 5명에 점장 부부까지 합쳐 7명의 근무가 톱니바퀴처럼 돌아갔습니다. 그 작은 편의점도 그러했는데 편의점 1곳당 종사자 수를 7명 정도만 잡아도 전국에 20만 명이 넘는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하루 24시간, 연 365일을 쉬지 않고, 인건비 아끼려 부부가 이 편의점 일을 나눠 하는 구조라면 그 가정이 견딜 수 있는 매출이 나올까요? 그 가정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긴 할까요? 아르바이트의 최저시급 문제는 별도로 하고라도 말입니다. 한국 인구 5천만 명을 편의점 3만 4천 개로 나누면 편의점 1곳당 1500명이라는 대략의 계산이 나오는데 일본은 편의점 1곳에 2300명, 미국은 2100명 정도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이 구조로 선순환할 만한 매출이 될까요. 65:35라는 매출 배분 비율은, 프랜차이즈 본사만 돈 벌고 있는 구조는 아닐까요.

 취재하다 만난 편의점 업체 직원은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을 읽어보셨냐고 말을 건네자, "직원 필독서"라고 농담하듯 답했습니다. 때때로 '편의점 인간'(1)으로 살아가고 있는 저는, 20년 전 기억을 떠올리며 2017년의 '편의점 인간'(2)들이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업체에서는 '편의점 인간'을 어떤 의미로 읽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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