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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공동정부…‘상생의 결단’인가 ‘권력 나눠먹기’인가

[취재파일] 공동정부…‘상생의 결단’인가 ‘권력 나눠먹기’인가
대선을 앞두고 공동정부에 대한 논의가 뜨겁습니다. 공동정부란 이념과 정책에 차이가 있는 정당들이 함께 정부를 구성하는 연정(聯政)을 말합니다. 독일 같은 내각제 국가들은 각 정당이 총선에서 얻은 의석 수를 바탕으로 연정을 모색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선에서 승리한 쪽이 전적으로 정부를 구성합니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명확히 구분되는 대통령제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연정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김대중 정부 때 이른바 ‘DJP연합’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 새정치국민회의와 충청을 기반으로 한 자유민주연합이 힘을 합쳐 대선에서 승리했고 정부도 두 정당이 공동으로 구성했습니다. 둘의 연정이 마지막까지 유지되지는 못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성공 사례로 꼽힙니다.

대통령제인 우리나라에서는 정당 간 연정보다 후보 단일화를 통한 연대나 통합이 더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이번 대선을 앞두고 상당수 후보들이 연정 혹은 공동정부를 들고 나왔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우위가 뚜렷한 상황에서 후발 주자들이 판을 흔들기 위해 들고 나온 정치공학적 카드란 비판이 있는가 하면, 권력 나눠서라도 정상적 국정운영이 가능하도록 판을 개혁하기 위한 결단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전부 혹은 전무…대선의 진실

대통령 선거는 국가 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을 뽑는 선거입니다. 대통령은 정책 집행의 권한을 갖는 행정부의 전권을 갖습니다. 물론 정부조직법, 인사청문회처럼 입법부의 견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정부 인사권과 시행령, 검찰?경찰 사법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갖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대통령제 국가와 달리 행정부가 법안 제출권과 예산 편성권까지 갖고 있습니다.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분립이라지만 앞서 말씀 드렸듯이 실제로 정책을 집행하는 것은 행정부입니다. 정당이 ‘같은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인 점을 감안하면 대선에서 이겨야만, 즉 정권을 잡아 행정부를 운영해야만 정당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대선에서는 승자가 단 1명뿐이라는 점입니다.

바꿔 말해, A라는 정당이 정권을 잡았다면 B라는 정당은 다음 대선에서 반드시 A를 꺾고 정권을 뺏어와야 합니다. 하지만 행정부를 장악한 여당을, 견제 권한 밖에 없는 입법부의 일원인 야당이 꺾기란 쉽지 않습니다. 여대야소(與大野小)는 물론 여소야대(與小野大)라 할지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B가 A보다 나은 정책과 비전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것이겠지만 보다 손쉽고 현실적인 방법은 A가 국정 운영에 실패해 국민의 외면을 받는 겁니다.

전부 혹은 전무로 귀결되는 대선의 구조적 특성상 정당들은 상대를 인정하고 협업하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말 그대로 ‘죽기 살기 식’인 겁니다. 국민은 그런 난장판 속에서 ‘최선(最善)’이 아닌 ‘차악(次惡)’을 선택하도록 강요 당해왔습니다.
 
● 국회선진화법…명과 암

정권은 자신들이 집권 기간 이뤄낸 성과를 바탕으로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정권이 자기 책임 하에 정책을 수립한 뒤 입법부, 특히 야당을 설득해 여야 합의로 추진하고 그에 따른 결과물을 내놓는 게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구구하게 설명 드린 여러 가지 원인 때문에 야당의 협조를 받기란 쉽지 않습니다. 굳이 정략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각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이 다른 만큼 같은 사안을 놓고도 정반대 입장을 취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군사정부 시절에는 이런 고민이 없었습니다. 그냥 밀어붙이면 그만이었습니다. 87년 민주화 이후에도 대통령이 정당의 총재를 겸하고 있어 사실상 입법부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당권-대권 분리가 보편화됐지만 상황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정권은 입법부를 여대야소로 만들 힘이 있었고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과 예산을 강행 처리했습니다. 이른바 ‘날치기’입니다.

날치기는 극한 대립을 불러왔고 국회는 파행하기 일쑤였습니다. 여기에 대한 해법으로 등장한 게 바로 ‘국회선진화법’입니다. 2012년 처리된 이법은 당초 ‘날치기 방지법’, 혹은 ‘몸싸움 방지법’으로 불리다 본회의 통과 후 국회선진화법으로 통칭됐습니다. 날치기 방지를 위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이 대폭 축소됐고 대신 국회 의원들의 몸싸움 등 의사진행 방해 행위에 대한 처벌은 강화됐습니다.

국회선진화법 처리 당시 여당 내에서 반대가 적지 않았습니다. 지금과 같은 여야 구도에서는 결국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거라는 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국회선진화법을 주도했던 황우여 전 의원은 당시 이런 우려에 대해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국회를 운영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처음에는 진통이 있겠지만 결국 대화와 타협의 문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4년이 넘게 지났지만 황 전 의원이 기대했던 대화와 타협은 여전히 요원해 보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기 과반 의석으로 출발했지만 주요 국정 과제를 관철시키는데 실패했습니다.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너 죽고 나 살기 식’ 정치 풍토, 구조적 모순도 이런 결과와 무관하지는 않다는 게 대체적인 평입니다. 그리고 그런 모순적 상황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 공동정부 해법 될 수 있을까

국회선진화법 하에서 특정 정당이 뜻대로 법안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재적의원의 3/5을 차지해야 합니다. 지금 같은 다당제 상황 하에서는 물론 기존의 양당제 하에서도 기대하기 힘든 수치입니다. 물론 대통령이 야당을 직접 설득하고 대화와 타협을 하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제의 승자독식 구조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개혁적인 국정과제를 수행하고자 한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현 상황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된다 해도 여소야대의 상황이기 때문에 연정이 아니고서는 정상적인 국정수행이 어렵다.”는 지적을 반박하기 힘든 이유입니다.

대세론을 이끌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최근 연정 가능성을 열어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문 전 대표는 지난 23일 광주를 찾아 "한 개 정당으로 다수를 차지하거나 정권교체가 불가능해 여러 정당과의 연대가 필요하면 연정도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비록 다음 날 ‘지금 공동정부를 말하는 것은 조금 논의가 이르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의미 있는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동정부가 대결적 정치 풍토를 넘어 성과를 낼 수 있게 하는 ‘상생의 결단’이 될지, 아니면 또 하나의 ‘정치 공학적 나눠먹기’가 될지, 그도 아니면 ‘표를 얻기 위한 미끼’로 사용되다 용도폐기 되는 정치 구호에 그칠지, 앞으로 남은 대선 기간 동안 유권자들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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