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모닝 스브스] '나눔의 집' 방문 10년…유지태의 특별한 이유

배우 유지태 씨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을 방문한 지가 10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 그가 이렇게 오랫동안 나눔의 집을 찾을 수 있었는지 만나보실까요.

배우 유지태 씨는 지난 2012년 김화선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지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일정을 미룬 뒤 급히 나눔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바쁜 일정에도 몇 시간 동안 이곳에 머물며 할머니들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가 꾸준히 이곳을 방문한 이유는 지난 2006년 아름다운 재단에서 김군자 할머니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위안부 피해자인 김 할머니는 본인의 장례식 비용 500만 원만 남기고 평생 모든 1억 원을 기부하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나눔을 실천했습니다.

이에 크게 감동한 유지태 씨는 이후 나눔의 집을 찾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가깝게 지내며 이들의 아픔도 더 잘 알게 됐다고요.

평소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데 힘써온 그는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한 다큐멘터리 영화에 관객들을 무료로 초청하기도 했습니다.

또 2011년 김효진 씨와의 결혼식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초대해 기쁨을 함께 나누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도 나눔의 집을 방문해 할머니들을 만난 유지태 씨.

사실, 그의 꿈은 사회복지사였고, 꿈을 이루기 위해 2006년 사회복지 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했습니다. 대중으로부터 받은 많은 사랑을 다시 베풀고 싶었다는 유지태 씨 말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준 그의 모습을 응원하겠습니다.

▶ 개념연금술사 유지태

---

충북의 한 초등학교에서 썰매 타기 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썰매장이 다름 아닌 학교 운동장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학교 교직원들이 학생들을 위해 운동장을 썰매장으로 변신시킨 겁니다.

선생님들이 직접 운동장에 테두리를 치고 비닐을 깔아 물을 가뒀고, 버려지는 스케이트 날과 나무를 잘라서 썰매도 직접 만들었습니다.

학교가 시골이어서 방학에 학생들이 집에만 있는 게 안타까워 11월부터 준비를 해왔다고요. 덕분에 썰매를 타게 된 아이들은 재밌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선생님들이 모두 이벤트 중독이라고 합니다. 크리스마스엔 교장 선생님이 직접 산타할아버지 분장을 하고 학생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기도 하고요.

다문화 가정 어머니가 학교에 와서 언어와 풍속 등을 알려주며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게 '다문화 데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전교생이 총 17명밖에 안되지만, 학생이 적어서 오히려 챙겨줄 수 있는 게 많다고요. 3년 전만 해도 학교에 학생 수가 11명밖에 남지 않아 폐교 위기 직전까지 갔었는데, 소중한 학교를 지키기 위해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진심으로 귀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학부모 대부분이 일을 하고 있어서 집에 가면 아이들은 대부분 혼자였습니다. 배우고 싶은 건 많지만, 형편이 어려운 경우도 있어서 방과 후 학교와 돌봄 프로젝트 등을 강화했다고요.

그렇게 혼자가 아닌 친구들과 학교에서 놀 수 있게 썰매장도 만들고 다른 취미활동도 할 수 있게 만든 겁니다.

김창용 교장 선생님은 다양한 교육활동으로 아이들의 큰 꿈을 가지고 자라길 바란다고요. 또 전교생 수를 20명만 넘겼으면 좋겠다고 하네요. 이벤트에 중독된 선생님들 덕분에 학교에선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을 것 같습니다.

▶ 이벤트 중독 우리 선생님 좀 말려주세요!

---

19세기 조선을 방문했던 서양인들은 당시 조선인들이 먹는 음식의 양에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조선인은 대식가"라는 기록을 많이 남겼는데 이게 정말 사실이었을까요?

19세기 조선에 온 한 프랑스 신부는 65세가 된 조선인이 식욕이 없다면서도 밥을 5그릇이나 비운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가 만난 사람마다 어마어마한 양을 소화해 냈기 때문입니다.

다른 기록에도 "서너 명이 앉아 복숭아와 참외를 최대 25개를 먹는 건 다반사였다.", "조선 사람이 밥 먹을 때 말이 없는 건 음식을 더 많이 먹기 위해서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특히 밥그릇에 밥을 수북이 쌓은 이른바 '고봉밥'은 이들에겐 충격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심지어 조선 선비들이 남긴 기록도 있었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빚을 내서라고 실컷 먹었고 관료들은 세 끼 꼭 술을 마셨다고 적혀 있습니다.

민속 기록엔 성인 조선인 식사량이 한 끼에 7홉이라고 기록돼 있는데 이건 오늘날 우리가 먹는 식사량의 3배에 달하는 양이라고요.

그러다 보니 서양인들은 조선인을 모두 대식가라고 불렀던 겁니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는 이런 조선인들의 모습에 항상 배가 고팠던 당시 형편이 반영돼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대식이 아니라 폭식이라고 말이죠. 음식이 많아서가 아니라 먹을 게 부족해서 많이 먹었다는 겁니다. 조선 시대엔 곡물 농사를 많이 지어서 먹을 거라곤 밥, 즉 탄수화물이 거의 전부였습니다.

영양 불균형 때문에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던 거라고 또 다른 전문가 역시 분석합니다. 게다가 곡물이 떨어지면 밥마저도 많이 먹지 못해서 과일로 허기를 채우기도 했다고요.

또 폭식해도 영양소를 고루 흡수하지 못해서 살도 찌지 않았습니다. 외국인에게 비친 조선인의 모습엔 배고팠던 백성의 고통이 그대로 녹아 있었던 겁니다.

▶ 푸드파이터의 나라 조선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