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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트럼프와 프랭크 시나트라, 아디다스의 'My Way'

트럼프 대통령 부부는 이틀 전 취임식에서 팝송 '마이웨이(My Way)'에 맞춰 춤을 췄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엔 유명 가수, 예술인 등이 참석하는 축하 무도회가 열리는 관례가 있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 부부는 팝가수 비욘세(Beyonce)가 열창한 에타 제임스(Etta James)의 명곡 '앳 라스트(At last)', 2001년 조지 부시 대통령 부부는 토미 도시 오케스트라의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트럼프의 ‘마이웨이’는 미남(배우이자)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드럽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내 인생에 후회는 없노라’ 열창했던 바로 그 노래이다.
취임식 무도회에서 춤추는 트럼프 대통령 부부
And now the end is here  이제 끝이 가까워졌네
And so I face the final curtain  나는 인생의 종막을 향하고 있다네
My friend, I`ll say it clear  벗이여, 여기서 분명히 말하겠네
I`ll state my case of which I`m certain  확신을 갖고 나의 인생을 얘기하겠네
I`ve lived a life that`s full 나는 충실한 인생을 살아왔네
...

Regrets, I`ve had a few  조금은 후회도 남아 있지만
But then again too few to mention  그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라네
I did what I had to do  해야 할 일은 모두
And saw it through without exemption  예외없이 끝까지 해냈다네

- 마이웨이 [My Way] 가사 中

‘마이웨이’는 프랑스 싱어 클로드 프랑소와가 연인과 결별한 이후 작곡한 샹송 'Comme d'habitude(습관처럼)'가 원작이다. 원작의 판권을 사들여 새로 영어 가사를 지은 작사가는 당시 낙심한 채로 살아가던 프랭크 시나트라의 인생을 듣고 이를 반영했다고 한다. 

... 그 곡의 판권을 냉큼 사들인 앵카는 프랭크 시나트라와 사전 연락 없이 저녁을 먹던 중 갑작스레 영감이 떠올랐다. 시나트라는 미아 패로우와의 이혼, 그리고 최근 활동에 찾아온 침체기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고, 음악 업계에서 은퇴하겠다는 위협으로 그날 저녁을 마쳤다. 앵카는 곧 'Comme d'habitude'의 가사를 개작해 시나트라의 인생관을 반영해보기로 마음먹었고, 자신의 직업 생애를 돌아보며 모든 것을 겪은 후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 한 남자의 모습으로 그를 그렸다.

시나트라가 부른 최종 버전(오리지널 버전에서 멜로디도 약간 수정되었다)은 1968년 12월 30일, 30분 만에 녹음이 마무리되었다. 이후 서둘러 발매된 이 곡은 빠른 속도로 세계적 히트로 부상했다

- 책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팝송 1001(2013, 마로니에북스)'
'MY WAY'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는 상징적인 노래다. 대부분의 미국민이 사랑하지만 특정한 시기, 그러니까 노래가 나왔던 1960~70년대에 미국 백인 중산층 남성으로 대표되는 부르주아들로부터 특히 큰 사랑을 받았다. 그들은 성공주의 신화에 익숙했다. 남자라면 노래 가사처럼 지난 날의 과오나 슬픔까지도 대수롭지 않는 것이라 여기고 툭툭 털어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후회는 남지만 별 것 아니야. 난 해야 할 일을 모두 해냈고 한 번도 피하지 않았거든"이라 떳떳이 말할 수 있는 사람들 말이다.
 
강헌 음악평론가 역시 "취임식 댄스곡으로 '마이웨이'를 고른 건 트럼프 참모진들이 머리를 잘 쓴 것"이라고 말한다. 시나트라가 활동했던 당시는 미국의 골든 에이지였다. '마이웨이'는 트럼프 본인의 사업가로서 성공 신화 뿐 아니라, 미국민 전체가 "여유로웠노라" 기억하는 시기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래 속 주인공과 트럼프는 서로 서 있는 위치에서부터 다르다. 첫 가사 "And now the end is near 이제 끝이 가까워졌네"에서 볼 수 있듯이 팝송 '마이웨이'의 화자는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최후의 지점에 서 있다. 그가 '회한은 남지 않노라. 나의 방식대로 산 인생이었다' 말하는 것에 힘이 실리는 건, 더는 살아갈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전제 때문이다. 1인칭 주어로 써내려 간 자서전의 결론이기 때문에 청자는 대체로 그런 자기고백을 너그럽게 들어줄 수 있다(주인공과 개인적인 사연이 있어 억한 심정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제외).   

본격적인 정치인생 첫 장을 써 내려가고 있는 트럼프는 시작점에 서 있다. 사업가로서는 꽤 성공적인 삶을 살았지만, 정치인으로서 그의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그 동안 자국민을 포함한 세계인의 우려가 담긴 목소리에 강경대응했던 그가 '내 인생은 내 방식대로 흘러왔고, 돌이켜 봐도 후회스럽지 않다네'라며 미래를 앞당겨 미리 선언해 버린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다. 이럴 때일수록 대중에게 보내야 할 메시지는 'My way'가 아닌, 'Your opinion(당신의 의견, 견해)'에 관한 것이어야 할 것 같은데. 정치적으로 잘 계산된 선곡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의 걱정을 한 층 더 공고히 한 행동인 셈이다.  

팝송 '마이웨이'는 대를 이어오며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고 있다. 가사가 젊은 사람들에겐 (시쳇말로) '꼰대스럽게' 느껴져서 일까. 젊은 층이 저항하는 기성 문화의 대명사 격으로 활용되는 식이다. 영화 '시드와 낸시(Sid And Nancy,1986)'에선 영국의 펑크록 밴드 '섹스 피스톨즈' 멤버 시드 비셔스가 '마이웨이'의 가사를 욕설을 섞어 바꿔 부르는데, 무섭게 눈을 희번덕거리며 노래하는 장면도 나온다.
아디다스 브랜드 캠페인 영상 (출처:아디다스 코리아 홈페이지)
최근엔 스포츠 의류 브랜드 아디다스(adidas Originals)의 새로운 캠페인 영상에서도 '마이웨이'를 들을 수 있다. ‘Original is Never Finished'라는 문구와 함께 영상은 '마이웨이'의 리믹스 버전을 들려준다. 영상 아래 설명을 읽으면, 아디다스가 말하는 마이웨이가 어떤 의미인지 대충 이해할 것도 같다. 감각적인 영상과 함께 스트리트 아트(길거리 예술)를 하는 젊은이들의 선언으로서 마이웨이에선 굉장한 에너지와 함께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의 길을 고수하고 확신을 통해 지켜나가겠다는 다짐같은 게 느껴져서다. 

<adidas Originals | Original is never finished 영상 - 아디다스 유튜브 계정 영상 링크>

"아디다스 오리지널스는 음악, 아트, 스케이트,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미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합니다. 또한 오리지널리티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해 나가며, 동시에 새로운 세대의 크리에이터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불어 넣습니다. 오리지널리티는 무한한 진화를 거듭합니다. 'Original is Never Finished' 영상을 통해 컬처를 앞서 가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오리지널리티를 재창조하는 작업임을 완성도 있게 보여줍니다."
아디다스 브랜드 캠페인 영상 (출처:아디다스 코리아 홈페이지)
결국 (다시 또 트럼프로 돌아와) 우리 가운데 노래 속 '마이웨이'같은 대사를 읊었을 때, 청자의 우려 섞인 잔소리(불평)를 듣지 않을 수 있는 안전지대에 있는 사람이라곤 인생 느지막이 지난날을 추억하는 노년의 누군가, 혹은 이런 예술가들 정도이지 않을지.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의견 교환을 통해 나의 주장과 너의 주장을 수정해 가며 서로 맞춰 살아가는 우리들 대부분 '나의 방식이 옳았음을 확신하네!'같은 노래를 부르기엔 아직은 때가 아니거나, 하는 일의 본질이 예술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상 누구보다 '덜 확신하는' 방식으로 살아도 무방할 것 같은 트럼프가 취임 첫날 선보인 '마이웨이' 메시지에 그의 임기 내내 전전긍긍할 일이 많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말하면 오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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