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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드들강 살인사건…16년 만의 판결을 가능케 한 '두 사람'

[리포트+] 드들강 살인사건…16년 만의 판결을 가능케 한 '두 사람'
2001년 전남 나주시에서 발생한 '드들강 살인사건'을 아십니까? 전남 나주시 드들강에서 여고생 박 양이 변사체로 발견돼, '드들강 살인사건'으로 불립니다.

당시 30대 남성 김 씨가 유력한 용의자로 수차례 수사 선상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살인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그는 법의 심판대에 서지 않았습니다.

유족들은 원망할 대상조차 찾지 못한 채 고통 속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11일, 재판부는 김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지 16년 만의 일입니다.

오늘 '리포트+'에서는 '드들강 살인사건'의 범인에게 무기징역이 내려지기까지의 과정과 16년 만의 유죄 판결을 가능하게 했던 숨은 주역들을 조명해봤습니다.

■ 2001년 2월 4일, 그날의 악몽

사건은 2001년 2월 4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남 나주시 드들강 변에서 박 양이 변사체로 발견됐습니다. 여고생이었던 박 양의 옷은 모두 벗겨져 있었고, 손에 끼고 다니던 반지도 사라진 상태였죠.

몸 곳곳에는 성폭행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피해자의 몸에선 범인을 밝힐 결정적 단서인 DNA가 발견됐습니다. 당시 경찰은 이 단서를 바탕으로 용의자를 찾아 나섰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2001년 2월 4일의 악몽
박 양의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2010년, 용의자의 DNA를 동의 없이 채취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면서, 2012년 용의자의 DNA와 일치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피해자인 박 양과 같은 동네에 살던 김 씨, 그는 이미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 11년 만에 DNA가 일치하는 용의자가 나타나자 수사는 활기를 띠는 듯했습니다.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용의자
하지만 김 씨는 살해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김 씨는 채팅을 통해 박 양과 만났고, 성관계는 합의로 했을 뿐 살인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죠.

시간은 또 흘러 2015년,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 여고생의 한을 풀어준 '태완이법'

드들강 살인사건은 공소시효가 임박했고, 용의자 김 씨를 법정에 세우기에는 증거가 부족했습니다. 이대로라면 장기미제 사건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2015년, 드들강 살인사건의 수사팀은 다시 꾸려지게 됩니다. 같은 해 '태완이법'이 시행되면서 살인사건의 공소 시효가 폐지됐기 때문입니다.

일명 '태완이법'으로 불리는 '살인죄 공소 시효 폐지법'은 살인죄를 저질러 법정 최고형이 사형인 경우, 25년으로 돼 있는 공소 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입니다.
태완이법
1999년 5월 20일, 대구의 한 골목에서 6살 김태완 군은 괴한으로부터 황산 테러를 당했습니다. 김 군은 49일간의 투병 끝에 숨졌지만, 범인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공소 시효가 만료됐습니다.

이에 살인사건의 공소 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쳤고, 2015년 7월 '태완이법'으로 불린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드들강 살인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 법의학자의 끈질긴 ‘실험’

김 씨의 살해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어 난항을 겪던 드들강 살인사건 해결에 기여 한 또 다른 인물은 법의학자인 이정빈 단국대 법학과 석좌교수입니다.

이 교수는 '피해자가 성폭행을 당한 직후 살해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법의학 재감정 결과를 이끌어냈습니다. 재수사 과정에서 이 교수는 경찰 과학수사팀이 작성한 '한 가지 기록'에 주목했습니다.

박 양의 체내에서 채취한 용의자의 정액과 박 양의 생리혈이 섞이지 않은 상태였다는 기록이었죠. 이 교수는 자신의 혈액과 의사인 아들에게 부탁한 정액으로 직접 실험에 나섰습니다.

이 교수는 혈액과 정액을 한 봉투에 넣었습니다. 7시간이 흘렀지만, 혈액과 정액은 섞이지 않았죠. 하지만, 봉투를 흔들자 두 액체는 금방 섞였습니다.
이정빈 교수의 실험
박 양이 성폭행당한 직후 몸을 움직이거나 이동하지 못한 채, 현장에서 살해됐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 실험 결과였습니다.

김 씨가 자신의 결백을 밝힐 증거로 제출한 사건 당일 사진 역시 알리바이를 만들고자 의도적으로 촬영한 것이라는 것도 추가로 밝혀졌습니다.

재판부도 이 교수의 소견 등을 반영해 김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17살 여고생의 한이 16년 만에 풀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드들강 살인사건은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없앤 태완이법이 시행된 뒤, 처음으로 내려진 유죄 판결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큽니다.

또한, 재수사 과정에서 사건에 끈질기게 매달린 법의학자와 수사팀의 노력으로 장기미제 사건으로 남을 뻔한 사건이 해결됐습니다.

현재 경찰이 다시 검토하고 있는 장기미제 사건은 270여 건에 이릅니다. 이번 사건을 시작으로 여전히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는 수많은 사건도 해결되길 기대해 봅니다.

(기획·구성 : 김도균, 장아람 / 디자인: 임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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