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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49,900원'으로 가능한 것들

'김영란법'이 바꾼 세상

[취재파일] '49,900원'으로 가능한 것들
● '5만 원'에 맞추면 큰일난다 했는데…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김영란법' 시행 100일이 넘었다. 2016년 9월 28일로 법 시행일이 정해지고도 한참 전인 2016년 5월 한 신문 1면에 인상적인 기사와 사진이 실린 일이 있었다. 25만 원짜리 한우등심 선물세트를 김영란법의 선물 금액 상한선인 5만 원에 맞추면 바구니 한 구석만 겨우 채우는 고기 한 덩이, 24만 원짜리 굴비 10마리 선물세트를 맞추면 단 굴비 2마리. 굴비 가게를 하거나 선물용 난을 팔거나 한우를 키우거나 매매하는 농가 등에는 큰 타격이 예상된다는 게 기사의 취지였다. 3면에는 8만 원짜리 사과 12개 선물세트는 7개만, 14만 원짜리 수삼 9뿌리 선물세트는 4뿌리만 남겨놓을 수밖에 없기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식.

연말의 화두는 '김영란법' 시행 뒤 연말 풍경일 줄 알았지만 다들 아다시피, 그때는 몰랐다시피 최순실 게이트, 대통령 탄핵 정국이 계속 이어지면서 '김영란법'에 대한 관심은 확 줄어들었다. 각종 단속 사례나 다툼 사례가 줄줄이 나올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100일이 지난 최근, AI 파동과 생활 물가의 줄인상, 계속되는 경기 침체, 이런 상황 속에 다시 '김영란법'에서 허용한 식사, 선물, 경조사 금액 3, 5, 10의 상한선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원론적인 차원의 언급 같기도 하나, 검토해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 홈쇼핑에서 많이 보는 그 가격 '49,900원'
롯데백화점에서 내놓은 랍스터 선물세트
설 선물세트가 12월 예약판매를 시작으로 지금 한창 출시돼 팔리고 있다. 백화점, 대형마트, 각 식품업체, 호텔까지 각 업체들이 내놓은 선물세트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5만 원 미만'이다. 김영란법 선물 상한액인 5만 원을 넘지 않도록 이에 맞춤한 선물을 내놨다는 의미이다.

위 사진은 롯데백화점에서 이번에 내놓은 랍스터 선물세트다. 대형 랍스터를 담아 24만 원, 20만 원 가격대도 있지만, 500g 무게의 중형 랍스터 2마리와 전복 8개를 넣어 49,900원에 맞춘 랍스터 실속세트도 있다.(롯데백화점 온라인 몰에서는 랍스터 450-500g짜리 2마리를 1월 12일 현재 43,900원에 팔고 있다. 이마트 몰에서는 역시 450g 내외의 랍스터 1마리를 19,800원에 팔고 있다. 개별 가격과 비교해도 어거지로 만든 세트는 아닌 듯하다.)

● '5만 원 미만' 비중 90%…매출 173% 신장
설 선물세트
굴비선물세트

홈플러스는 1월 12일부터 판매 시작한 2200여 종 선물 세트의 90%가 5만 원 미만이라고 밝혔다. 이마트 역시 5만 원 미만 선물세트의 비중이 90%에 이르고 매출은 전년 대비 173% 늘었다고 전했다. 적어도 설 선물세트를 파는 유통업체들은 '김영란법' 시행으로 매출이 늘어난 것이다. 이마트는 아예 '499 기프트' 라는 이름을 붙여 49,900원에 맞춘 선물세트를 대거 선보였다. 한우로는 처음 5만 원 미만대라는 한우불고기 선물세트, 씨알이 상대적으로 작은 조기나 민어, 부세조기, 긴가이석태 등을 이용한 굴비선물세트 같은 것들도 5만 원 미만으로 나왔다. 요즘 인기 있는 수입맥주가 선물용으로 새롭게 나온 기네스나 호가든, 스텔라 맥주 선물세트도 눈길이 갔다. 혼자 사는 '혼족'을 위한 다품종 소량 포장 세트도 유용하다 싶었다. 

수입 신선식품으로 구성한 선물세트도 늘었다. 신세계백화점은 수입 식품 선물 품목은 전년에 비해 57% 늘었고, 매출은 200%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페루산 애플망고라든가, 러시아산 명란 세트, 인도양 자연산 새우 같은 것들이다. 가격은 물론 5만 원 정도에 맞췄다.(수입 선물이 점령했다는 식의 기사도 여러 나왔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품질만 괜찮다면 '가성비'는 높을수록 좋을 것이다.)  여기에 미리 예약하면 최대 30%를 깎아주기 때문에, 7만원 짜리를 49,000원에 살 수도 있다. 이 역시 5만원 미만이다.(예약 판매 기간은 이제 끝났다.) 

● '김영란법' 이후 달라진 세상

맨 처음 언급했던 기사는 한 교수의 말씀으로 끝이 났다.

"선물을 하지 말라는 사회 분위기가 되면 선물용 물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내수를 급격히 위축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김영란법을 시행해야 한다"

'정'을 주고 받지 못하게 됐기 때문에 내수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 건가? '5만원 미만'의 '정'도 충분히 주고 받을 수 있으며 매출까지 늘어나는 데도 일정 효과 있다는 게 어느 정도 입증되고 있는 것 아닐까. 김영란법이 만든 분위기는, 선물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뇌물 같은' 선물은 하지 말라는 분위기니까. 

'얻어먹고 눈 감아주고 접대받고 편 들어주고 고가의 선물 받고 칭찬해주는' 분위기는 상당 부분은 해소됐거나 해소될 가능성이 커지지 않았을까. '김영란법'의 이런저런 문제점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명절, 특히 선물에 관해서라면 법 시행 후 '더 나은 세상'이 된 것 같다. '49,900원'으로 가능한 선물, 굉장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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