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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해외로 나갈까봐 숨기는 거야"…꺼지지 않는 '9일 연휴' 논란

직장인 "매일 야근, 좀 쉬자" vs 중소기업 "가뜩이나 어려운데 비용 늘어"

[취재파일] "해외로 나갈까봐 숨기는 거야"…꺼지지 않는 '9일 연휴' 논란
5월 첫째 주. 2일 화요일, 4일 목요일이 임시 공휴일로 지정된다면 무려 9일간의 꿈같은 연휴가 이뤄집니다. 그런데 이 이틀을 어떻게 하느냐를 놓고 논란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시작은 이랬습니다.

● 고용노동부 장관의 원칙론? …"연휴 길면 소비 늘겠지"

고용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5월 첫째 주 얘기를 주고 받으면서 연휴가 길어지면 소비가 늘어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습니다. "아, 임시공휴일 지정을 검토하는 구나" 일부 언론이 이런 생각에 1보를 내보냈습니다.

직장인들의 카톡이 바빠졌습니다. "5월에 9일 쉰대" "어디 여행 갈까" 이런 기쁨도 잠시. 고용부에서 이를 전면 부인하고 나섰습니다.

고용부의 해명은 이렇습니다.

"휴일이 이어지도록 하면 소비 진작 등을 위해 좋을 것이라는 원칙적인 얘기를 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대체 휴일 지정을 통해 노사간의 대화를 통해 자율적으로 쉴지, 안쉴지 결정하는 것이지 정부 차원에서 아예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는 건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소비 진작에 가장 민감하고, 내수 활성화를 가장 원할만한 부서, 바로 기획재정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논의를 한 적도 없다"는 게 공식입장입니다. 일단 모두 부인하고 나선 겁니다.

● "해외로 나갈까봐 숨기는 거야"…작년 5월 6일을 기억하십니까?

고용노동부와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직장인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해외 여행을 갈까봐 사전 예약 못하게 끝까지 보안을 유지할 것이다"라는 게 대표적인 주장입니다. 미리 9일 연휴라고 하면, 해외 여행을 가려고 할 것이고, 그럼 내수 진작 효과가 반감되기 때문에 미리 가르쳐주지 않고 계속 부인하다가 마지막에 휴일로 지정할 거라는 겁니다.

이런 주장은 지난해 임시공휴일 학습효과이기도 합니다. 지난해에는 5월 6일 임시 공휴일 지정으로 5월 5일부터 8일까지 나흘 연휴가 됐습니다. 그런데 그 발표를 일주일 남짓 전인 4월 28일에 합니다. "아니, 1주일 남기고 공휴일 발표하면 여행 예약이 되겠나"라는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동시에 "해외로 나가는 것 보다는 국내에 남는 것이 내수 진작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늦게 발표한 것이다"라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물론 너무 늦게 발표해서 국내 여행 예약까지 힘들기는 했지만, 상당수 해외여행파들을 국내 여행으로 돌려놓았던 효과는 있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탓도 있지만, 통행량이 8.6% 늘었고 때 아닌 '명절 고속도로 정체'까지 연출됐으니까요.
고속도로 혼잡
● "좀 쉽시다"…한국 직장인 노동시간 '세계 2위'

연휴 논란에 한국 직장인들이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 건 바로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입니다. OECD 통계를 살펴보죠.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근무시간이 길다는 건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OECD 발표에 따르면 2014년 한국 임금근로자와 자영업자 등 전체 취업자의 평균 근로 시간은 2,124시간으로 전년 대비 45시간 늘었습니다. 멕시코에 이어 세계 2위입니다.

특히 이런 과도한 노동시간은 삶을 척박하게 만듭니다. OECD가 내놓는 ‘일과 삶의 균형’ 부문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하위권인 36위입니다. 이 부문을 들여다볼 때 중요한 요소인 주당 평균근무시간을 살펴보면 왜 하위권인지 알 수 이습니다. 50시간 이상인 노동자 비율은 23.1%로 OECD 평균보다 10% 포인트 높았습니다. 반면 노동생산성은 최하위권에 속합니다. 34개국 가운데 28위였습니다. 1시간 노동력을 투입해 30.4달러 가치의 상품을 만들어냈는데, 미국과 독일의 절반수준이었습니다. 근무시간은 길고, 생산성은 떨어지는 악순환이 끊어지지 않고 있는 겁니다. 긴 근로 시간에 삶의 질은 계속 나빠지고 있습니다.

지치고 지친 상황. 직장인들이 어떻게 9일 연휴에 관심이 가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자신을 충전하고,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연휴를 '나라에서 만들어줘야 할 판'입니다.

● 소비 진작 vs 수출 감소

하지만 현 정부가 서민이나 직장인들의 애환에 제대로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순전히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9일 연휴 성사 가능성을 예측해보는 게 더 합리적일 겁니다.

연휴의 가장 큰 경제적 미덕은 소비 증진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연휴의 경제적 효과는 이미 입증이 됐습니다. 기획재정부 발표에 따르면 대형마트 매출이 4.8% 늘었고, 백화점 매출은 16% 올랐습니다. 야구장 입장객은 43.9% 늘었고, 고속버스 탑승객은 18.1% 늘었습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 심리지수는 금융위기 직후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100이 넘으면 낙관적, 100이 안되면 부정적인데 지난달 94.2까지 떨어졌습니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월과 같은 수치입니다. 물가 상승폭 역시 가파릅니다. 특히 서민들이 힘들어할만한 생필품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지갑을 닫을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소비 심리도 좋지 않고, 물가도 가파르게 오르는 상황에서 정부가 검증된 소비진작 카드인 ‘연휴 만들기’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반면 수출에는 좋을 게 없습니다. 조업일수가 줄어들면, 수출액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특히 중소기업 사장님들이 많이 반발합니다. 휴일에도 공장을 계속 가동해야 하는 업체들이 있는데 대체 인력을 확보하기도 어렵고, 어렵게 인력을 구해도 추가 비용이 들기 때문입니다.

● 정부 선택은?…임시공휴일, 대체휴일 권고, 아니면 가만히 있는다

결정은 정부가 합니다. 임시공휴일이 지정되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관련 부처에서 임시공휴일 지정을 요청하면 국무회의에서 통과되고, 대통령이 재가를 하면 최종 확정됩니다. 결국 고용노동부나 기획재정부의 판단이 중요합니다. 

여기에 또 하나. 현재 최순실 게이트 특검 수사와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일정도 변수로 남아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가 4월 말이나 5월 초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대통령 선거가 5월 황금 연휴 이전이 될지, 이후가 될지에 따라서도 임시공휴일 지정 판단 기준이 달라질 수 있는 겁니다.
 
결국 5월 연휴를 앞두고 그때 경제상황, 정치상황에 따라서 변수가 많은 만큼 벌써 정부가 9일 황금 연휴가 가능하다, 불가능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겁니다. 즉 정부가 이미 다 쉬기로 해놓고 이를 숨기고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겁니다.
 
이 때문에 혐의 사실을 모두 부인하며 시간 끌기에 나선 최순실이 '황금 연휴' 여부를 결정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여기에 정부가 기업들에게 대체휴일 권고하도록 해서 사실상 연휴를 만드는 방법이 가장 유력하다는 얘기도 고용부에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이럴 경우 어떤 회사를 다니고, 어떤 사장을 만났는지에 따라 연휴 여부가 결정이 되는 문제점이 있겠죠.

황금연휴 여부가 직장인들 사이에 관심을 끌게 된 건 그만큼 늦게까지 계속되는 야근, 주말없이 계속되는 출근에 지쳐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에게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정부가 합리적인 선택을 하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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