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칼럼] 2017년. 희망과 절망, 욕망 사이

[칼럼] 2017년. 희망과 절망, 욕망 사이
새해를 맞아 나를 재촉하는 이 마음은 희망인가, 욕망인가. 희망과 욕망은 개념적으로는 다르지만 구체적인 마음에 이르면 구분하기 힘들다. 이때 구분의 지표가 되는 게 절망의 존재다. 내 마음에 절망이 있는가를 물어보면 희망의 존재도 알 수 있다. 마음은 절망의 어둠이 내리고 나서야 비로소 희망의 불씨를 일으킨다. 그리고 희망의 빛이 절망을 밀어내면, 잠시 수그러들었던 욕망이 다시 활개를 치기 시작한다.

촛불, 희망과 절망의 공유

새해를 맞을 때면 우리는 의례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그 메시지는 곧 일상 속으로 흩어져 사라진다. 하지만 올해는 다른 것 같다. 각자의 개인적인 희망과 별도로 이심전심 공유하는 희망이 있다. 공통의 희망이 생긴 것은 공통의 절망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광화문을 비롯해 전국 각지의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함께 이 나라에 대한 절망을 토로하며 희망을 일구어냈다. 촛불로 상징되는 이 희망은 개개인의 마음을 넘어서서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시대정신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촛불집회
2017년 새해가 열리는 바로 그 시각,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송박영신’의 촛불을 들었다. 탄핵으로 낡은 체제를 허물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려는 시민들의 마음이 모여 새해의 희망으로 연결되는 현장이었다. 우리가 희망하는 새로운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이는 촛불집회 구호로 확인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국민이 주인이다.” 이 원칙에는 진보와 보수, 지역, 세대를 막론하고 이견이 없다.

물론 그 희망의 온기를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새해 사설에서 “새해는 밝았으나 우리는 아직 어둡고 긴 터널 속에 있다. 희망이 안 보인다는 절망감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까지 병균처럼 스며들어 있다.”는 상황인식을 보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더욱 절망한 사람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에서 희망을 찾은 사람들이 혼재하는 상황이다. 이 두 부류는 충돌하고 갈등하는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절망이라는 공감대가 있다. 촛불의 희망도 그 절망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촛불의 희망은 힘이 있었다. 호시탐탐 반전을 노리는 국정파괴 세력을 일단 움직이지 못하도록 포박하는데 성공했다. 복잡한 계산속에 어기적거리던 정치권을 몰아붙여 탄핵의결을 이끌어냈다. 10차례에 걸쳐 연인원 1000만 명이 질서를 잃지 않고 광장에 나서는 성숙한 희망의 불꽃 앞에서는 그 어떤 정치적 계산도, 꼼수도 무력했다.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뜻을 받들어 탄핵을 인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고, 4월말 5월초 대선 가능성이 제기되자 새해 들어 차기 권력과 대선주자에 대한 얘기로 관심이 급격히 옮아가고 있다. 희망의 촛불이 절망의 어둠을 몰아낸 그 자리에 욕망의 횃불이 들어서고 있는 형국이랄까? 정치인의 권력욕 자체는 비난할 바 아니지만 그 욕망이 촛불의 최종 목표인 새로운 나라의 건설에 힘을 보탤 지, 아니면 방해를 줄 지를 끊임없이 감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절망의 세력에 대한 경계를 늦춰선 안 되겠다. 권한 정지된 대통령이 어떻게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이 동석한 기자간담회를 열어 여론전을 벌일 수 있을까? 구치소에 수감된 최순실 앞에서 구치소장이 쩔쩔매는 모습을 보였다는 국정조사 특위 의원들의 증언은 어찌 된 것인가? 검찰과 사정기관을 장악한 우병우 사단은 아직 건재한 것 아닌가? 정유라의 해외도피를 도운 외교관은 누구인가?

희망의 촛불은 계속 타오른다.

대통령을 권한정지시키고 최순실과 몇몇 핵심인물들을 구속하긴 했지만 청와대와 정부, 군, 재계 등 우리 사회 곳곳에 그들의 세력이 얼마나 남아있는 지는 현재로선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절망의 세력이 남아있는 한, 그들이 재기를 노리면 노릴수록, 희망의 촛불은 계속 타오를 것이다. 2017년, 우리는 희망과 절망, 욕망이 거세게 뒤엉켜 흐르는 역사의 분기점에 서 있다. 나라 밖 상황도 어느 때보다 위태롭다. 이 국면을 만들어낸 촛불의 희망이 끝까지 흐름을 주도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상상하기조차 싫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