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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친박(親朴)의 사상(思想)

① 사드를 통해 본 친박(親朴)의 안보관

[취재파일] 친박(親朴)의 사상(思想)
- ① 사드를 통해 본 친박(親朴)의 안보관
- ② 국정 교과서를 통해 본 친박(親朴)의 역사관
- ③ 당청 관계를 통해 본 친박(親朴)의 민주주의
- ④ 대한민국 보수주의, 친박(親朴)의 보수주의

정유년 새해, 대한민국은 여전히 번뇌하고 있습니다. 국가와 비선(秘線), 그리고 자본의 삼각편대. 대한민국은 최순실이 박근혜의 역린이란 걸 너무 늦게 알아챘습니다. 이 편대를 지지했거나 눈감았던 사람들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인명진발 인적 쇄신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친박(親朴). 대통령 박근혜를 지지하고 함께 가자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최순실을 알았느냐, 몰랐느냐, 이런 질문은 부질없습니다. 그들은 대통령의 역린을 감히 건드려 볼 생각도 못했고, 피했고, 혹은 부역했습니다.

친박은 대한민국 보수주의의 상징으로 호령했습니다. 대한민국도 이들에게 과반의 지지를 보냈습니다. 제아무리 궁했어도, 피 흘려가며 민주주의를 얻어냈던 대한민국이 권위주의 군부 정권과 1촌 관계였던 박근혜와 그 지지 세력을 대한민국의 얼굴로 뽑았던 이유가 있을 겁니다. 어쨌든 그들은 국민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세계관을 ‘사상(思想)’이란 거창한 단어로 예우하는 이유입니다.

친박의 사상. 그간 국회를 출입하며 지근거리에서 봐왔던 친박의 모습을 차근차근 곱씹는 거로 시작하겠습니다. 새해 벽두라지만 과거를 좀 훑어봐야겠습니다. 그들의 중심을 잡아줬던 사상이 무엇인지, 그 실체는 어떤 모습인지, 분야별로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먼저 대한민국 보수주의가 생명처럼 여기는 안보관을 살펴보겠습니다. 그 대푯값은 사드 배치 문제로 하겠습니다. 사드 논란은 대한민국에서 보수와 진보, 첨예한 진영 논리로 소비됐지만, 안보 분야 친박의 사상, 그 적나라한 밑바닥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윤상현에 정색한 김규현…“왜 사드를 반대합니까?”
 
지난해 7월 8일. 박근혜 대통령은 새누리당 의원 전원을 초청해 오찬 간담회를 엽니다. 당시 청와대와 당의 관계는 냉랭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로 낙인찍었던 유승민 의원을 비롯해 총선 탈당 의원 7명 전원을 당 지도부가 복당시켜주면서 청와대의 불만이 컸을 때였습니다. 당시 예정됐던 고위 당정청 협의회도 무산됐습니다. 새로 임명된 김재원 정무수석이 박근혜 대통령을 설득해 어렵게 성사된 간담회였습니다.

간담회 테이블은 상임위 별로 나눴습니다. 외교통상위 테이블에는 비박계 김무성, 친박계 서청원, 원유철, 최경환, 윤상현 의원이 배치됐습니다. 친박계와 비박계 좌장이 마주 앉아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하지만, 싸한 분위기를 만든 건 애먼 사드 배치 문제였습니다. 테이블에 배석했던 김규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포문을 열었습니다.

김규현 : 윤 의원님, 사드 문제를 그렇게 보시면 안 됩니다.

김 수석은 평소 사드 문제를 반대했던 윤상현 의원에 대해 앙금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친박 핵심이라는 사람이 왜 정부를 도와주지 않느냐는 불만이었을 겁니다. 꽤 정색한 말투였습니다.

윤상현 : 아니, 그게 아니라, 사드 배치 문제는 외교적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윤 의원은 평소 사드 문제에 대해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었습니다. 주변 참석자들은 당시 윤 의원이 당황한 눈치였다고 전했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친박계 좌장이라 불리는 최경환 의원까지 가세했습니다.

최경환 : 지금 신공항 때문에 TK 분위기가 매우 안 좋아요. 여기에 사드까지 TK에 배치되면 TK는 돌아설 수도 있습니다.

TK의 염원이었던 밀양 신공항이 무산된 상황, 여기에 사드 배치 지역이 경북 성주로 사실상 결정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대변자 역할을 했던 최경환 의원까지 사드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나타냈던 겁니다.
(지난해 7월 취재정보 재구성)

하지만, 윤상현 의원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소신 발언을 이어갑니다. 사흘 뒤 열린 국회 외교통상위에서 윤 의원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향해 사드 배치의 부당성을 강하게 주장합니다.
 
윤상현 : 사드 체계는 군사적 무기가 아니라 한반도 통일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통일외교 주도권을 확보하는 전략적 카드로 써야 했습니다. 결정이 너무 빠르게 이뤄졌습니다. 사드는 전략적 카드로 쓰면서 중국으로 하여금 대북 제재 등 동북아 이슈에 있어 협조를 끌어내야 했습니다. 미 국방부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에서 사드가 태생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한반도에 배치한 이유가 뭡니까? 피상적으로 북핵·미사일의 위협이지만 근본적으로 중국을 겨냥하고 있는 겁니다.
( 지난해 7월11일 국회 외교통일위 전체회의)
사드
● TK의 반란…박근혜의 잠 못 이루는 밤

여권 내 사드 논란은 친박의 심장부 TK 의원들의 반발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사드가 경북 성주에 배치되는 걸로 최종 확정되자 TK 의원들은 단체 행동에 들어갔습니다. 전자파 논란 때문에 지역 민심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배치 지역으로 결정된 성주의 이완영, 인접지역이었던 영천의 이만희, 김천의 이철우 의원이 기자회견에 나섰습니다.
 
“대구 경북 지역민들은 신공항 건설 무산으로 인한 실망에 이어 최근 불거진 대구경북 지역 사드 배치설로 불안감과 불만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으로 결정되는 것에 대해 시도민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어야 하고 배치 지역에 대해서는 한반도 방어의 최적지임을 전 국민이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해 7월 13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초부터 사드 배치에 의욕을 보였습니다. 자연히, 청와대와 한 배를 탄 친박의 기본적 입장은 ‘사드 대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을 ‘누나’라고 부른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최측근으로 통했던 윤상현 의원은 사드를 반대했습니다. 국제정치학 전문가로 외교적 식견이 있는 윤 의원의 반대는 ‘대(對) 중국 관계’라는 이론적인 이유가 강했습니다. 친박계 좌장 최경환 의원을 비롯한 TK의원들의 반대는 지역적 이유가 컸습니다. 나중에 “사드 배치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라며 다시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지금까지도 사드 배치 문제는 TK의원들이 아킬레스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다음 달 4일, 박 대통령은 TK의원을 청와대로 초청해 민심 추스르기에 나섭니다.
 
이완영 : 성주 군민들은 아침에 눈만 뜨면 성산이 눈앞에 보입니다. 3만 명 지역 주민이 너무나 불안해 합니다.

박근혜 : 성주는 제 고향인데, 제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성주에는 제 선영(先塋)도 있어요. 피를 토하는 심정입니다. 저도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대안이 있느냐는 거죠. 국민 안전을 책임져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사드를 도입하는 것이고, 성주 지역을 정밀 조사해서 문제없게 하겠습니다.
(지난해 8월 취재정보 재구성)

하지만, 당시는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이 친박계의 심장부 TK 의원들을 만나는 건, TK를 기반으로 한 친박계 후보에 대한 우회적 지지로 읽혔습니다. 대통령이 특정 현안을 두고, 특정 지역 국회의원만 따로 만난다는 건 이례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안보 문제 사드가 계파 정치의 수단이 됐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당시 김무성 전 대표는 사드 문제를 빌미로 대통령이 전당대회에 개입하려 한다며 반발했습니다.
 
김무성 : TK 의원들을 만나서 무슨 말씀을 하실지 모르겠으나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통령께서 특정 지역의 의원들을 만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8월 3일 김무성 대표 백브리핑)

● ‘사드’로도 부족했던 친박 원유철의 ‘핵 무장론’
원유철 원내대표
신박(新朴)으로 불렸던 원유철 의원은 안보 강경론자였습니다. 원 의원은 MB 정부 국방위원장 출신이었는데, 사드 배치에 대해서는 꽤 일관된 입장을 보였습니다. 사드도 부족하다며 심지어 한반도 핵 무장론을 주장했습니다. ‘핵유철’이란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미국마저 불쾌감을 나타냈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원유철 의원은 지난해 11월 국회 정보위원회와 외통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해 윌리엄 코헨 전 국방장관을 만납니다. 코헨 장관의 앞에는 문건이 하나 있었는데, 원유철 의원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었습니다. ‘국회 국방위원장 출신으로 한국 국회의원 가운데 몇 안 되는 핵 무장론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대화가 이어질 즈음, 원유철 의원이 한반도 핵 무장 이야기를 꺼내 들었습니다.

원유철 : 장관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한반도 핵무장이 필요합니다.

순간 코헨 장관이 기다렸다는 듯 밥 먹던 숟가락을 확 내려놓더니 정색하며 따져 물었습니다.

코헨 : 원 의원님! 주한미군이나 핵 무장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세요!

옆에 배석했던 안호영 주미 한국대사까지 당황할 정도로 분위기가 살벌했습니다. 분위기를 살렸던 건 미국 출장을 같이 갔던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이었습니다. 전대협 출신의 이인영 의원도 이런 분위기에 자못 당황했던 것 같습니다.

이인영 : 둘 중 하나라면 당연히 주한미군이겠죠. 하하.

면담이 끝날 때까지 코헨 장관은 원유철 의원에게 싸했습니다. 이인영 의원에게는 친구(friend)라는 표현까지 했지만, 원 의원과는 헤어질 때 악수도 하지 않았습니다.

원유철 의원이 한국으로 돌아온 뒤 코헨 장관에게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카터 전 대통령의 회담 사진이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카터 대통령에게 “대한민국도 핵 무장을 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가, 카터가 “그렇다면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압박했던, 바로 그 회담이었습니다.
(SBS 지난해 11월 취재정보 재구성)

● 유승민의 ‘사드 외고집’…친박과 靑의 반발
유승민 의원
친박 핵심이라 불리던 최경환, 윤상현 의원, 여기에 친박의 심장부인 TK는 사드 배치를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친박계의 기본적인 입장은 사드 대찬성이었습니다. 당시 지도부였던 친박 원유철 의원은 사드 배치를 계속 주장했고, 핵 무장론까지 주장했습니다. 쉽게 말해, 친박 의원들 사이에서도 일관성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키며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TK 의원들 안에서도 또 갈렸습니다. 성주 배치 직후 이뤄진 기자회견에는 25명의 TK 의원 가운데 유승민, 추경호, 백승주 의원이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추경호, 백승주 의원은 현 정부에서 각각 국무조정실장과 국방부 차관을 했었기 때문에 청와대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게 부담이 됐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배신의 정치’ 낙인이 찍혔던 유승민 의원도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사드에 적극 찬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새누리당이 사실상의 당론으로 사드를 적극 지지했던 건 지난해 1월, 박근혜 대통령이 언론인 간담회에서 사드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이후였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새누리당 내에서 사드 배치를 찬성하면 역적 취급을 받았습니다. 유승민 의원이 시발점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사드 배치 추진을 공식화하기 딱 1년 전인 2015년 초, 비박계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를 했을 때 논란은 불거졌습니다. 국방위원장 출신이었던 유승민 의원은 줄곧 사드 배치를 주장해왔습니다. 사드를 당론으로 정해 청와대에 건의하자며 의원총회까지 소집하며 의욕을 보였습니다. 청와대와 친박계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김관진 안보실장은 그해 3월 유승민 의원과 비공개로 만나 사드를 공론화하지 말아주길 요청했습니다.
 
김관진 : 대표님, 우리가 먼저 사드를 이야기하는 건 도움이 안 됩니다. 사드 포대 가격만 올라갈 겁니다. 미국이 우리가 원한다는 걸 알면 가격 협상이 쉽지 않을 것 아닙니까.

유승민 : 그렇지 않습니다. 주한미군도 사드가 아쉬운 입장인데, 그렇게 눈치 볼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관진 : 6~7월 쯤에 미국 측에서 사드를 주한미군에 배치한다는 요청이 올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파악하고 있어요. 그러니 그때까지 좀 참아주세요.

하지만, 6~7월에 미국이 사드를 정식 요청한다는 김관진 실장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유승민 의원은 원내대표에 물러난 뒤에도 이를 불쾌하게 여겼습니다.
(2015년 8월 취재정보 재구성)

청와대와 교감이 있던 친박의 공세도 시작됐습니다. 유 의원이 사드 배치 공론화하는 것에 대해, 친박계는 ‘유승민의 정치적 몸집을 키우기’, ‘자기 정치를 위한 배신 행위’로 해석했습니다. 즉, 당시 친박의 기본적 입장은 ‘사드 반대’였습니다. 친박계 맏형 격인 서청원 의원도 그해 3월 의원총회에서 유승민 의원을 향해 불쾌감을 나타냈습니다.
 
서청원 : 유 대표, 나는 사드를 지금 왜 논의해야 하는지 모르겠소. 더군다나 이걸 왜 의원총회에서 하는 거요? 전문적인 내용을 의총에서 얘기해서 뭐 나올 게 있소? 전문가들이나 이 분야 잘 아는 국회의원들이 논의를 해야지, 무턱대로 의총해서 무슨 결론이 나는 거요? 의총을 한다고 얻을 게 대체 무엇이오?

유승민 대표는 듣고만 있었습니다. 유승민 의원의 표정은 조금 어두워졌습니다. 정적이 흘렀지만 여기에 공감하는 의원들이 꽤 있었던 모양입니다.
(SBS 2015년 3월 취재정보 재구성)

당시 친박 의원은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유승민 의원의 사드 배치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친박 A의원 : 나도 개인적으로 사드를 도입하는 게 맞는다고는 생각해.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이지? 미국이 먼저 얘기한 것도 아니고. 갑자기 사드 들고 와서는 공개적으로 의사 표시하라는 이유가 뭐야? 유승민 대표가 지금 자기 정치하겠다는 뜻 아니야? 하기는 유승민 대표가 무상급식 찬성하고, 법인세도 올릴 수 있다고 말하고, 계속 경제적으로 왼쪽으로 가는 사람이잖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안보라도 보수적으로 말해야 욕은 안 먹겠다 싶은 거겠지. 그래도 이건 아니야. 청와대도 사드 별로 안 하고 싶어하는 데 왜 자기가 나서서 저래? 그냥 자기 정치하는 거지.
(SBS 2015년 4월 티타임 재구성)

● ‘핵 보유국’ 발언…한 수 더 둔 김무성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
유승민 의원이 사드에 목을 맸던 당시, 비박계는 사드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일부 비박계 의원조차도 유승민 의원의 사드 당론 추진을 뜬금포로 해석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청와대를 의식한 듯 보였습니다.
 
비박 B의원 : 유승민 대표가 초반에 당론이 없다며 이렇게 치고 나가는 것까지는 좋아. 그런데, 지금 사드 도입 논의는 아닌 것 같아. 원래 외교 분야는 이렇게 공론화해서 처리할 문제도 아니야. 이러면 이슈가 너무 분산돼. 지금 할 게 얼마나 많아? 유승민 대표는 전략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어.
(SBS 2015년 3월 오찬 내용 재구성)

사드 논의의 주도권은 유승민 의원에게 있었습니다. 당시 대표였던 비박계 김무성 의원은 그 전까지 사드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해 3월 24일, 한국해양대 강연에 나선 김무성 의원은 갑자기 폭탄 발언을 쏟아냅니다.
 
“세상에 제일 무서운 무기가 핵폭탄입니다. 특히 핵폭탄을 잠수함에서 쏘는 것이 제일 무섭습니다. 문제 있는 발언으로 볼 수 있겠지만,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봐야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북핵을 어떻게 방어하느냐 입니다. 정치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하지만,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방어할 수 있는 무기체계를 갖춰야 합니다. 사드에 대해 잘 아십니까?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입니다. 북한에서 만약 핵을 쏘아 올리면 올라가서 150킬로미터 상공에서 요격할 수 있는 방어체계 갖춰야 한다는 것은 기본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2015년 3월 24일 한국해양대 강연)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발언은 파장이 컸습니다. 국제적으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는 건, 국제사회의 노력 실패를 인정한 것이고, 대북 정책은 핵감축 협상으로 가야 한다는 걸 의미했습니다. 나중에 과한 발언이라며 한 발 물러섰지만, 당시 분위기는 김무성 의원이 사드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하게 주장하다 과도한 논리를 끌어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김 의원 측 C의원 : 김 대표는 사드에 대해 매우 신중했어. 지난번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이인제 최고위원이 사드 문제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여기에 동조했었거든. 이인제 의원은 유승민 대표가 의원 총회에서 사드 당론으로 정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었어. 그런데 며칠 사이에 갑작스럽게 입장이 바뀌었어. 최근 들어 홍용표 통일부 장관한테 북핵 관련해 업무 보고를 받았는데, 북한에 이상 동향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던 것 같아.
(2015년 3월 오찬 내용 재구성)

이런 입장 변화의 이면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는 말이 내부에서 나왔습니다. 대한민국 보수의 탯줄이었던 안보 이슈를 유승민 의원이 사드로 선점하는 것에 대해, 김무성 의원도 한 수 더 나가 보수층의 지지를 얻어내려 했다는 겁니다.
 
김 의원 측 C의원 : 사실 유승민 대표가 안보 분야를 너무 치고 나가니까 이에 대한 위기감이 있었을 것 수도 있어. 뭐랄까, 한 수를 더 두는 거랄까?
(2015년 3월 오찬 내용 재구성)

하지만, 김무성 의원은 그 이후 사드에 대한 언급을 자제한 것 같습니다. 2015면 5월 헌정회 초청 강연이 끝나고 기자가 사드 배치 필요성을 언급한 정도가 눈에 띕니다.
 
기자 : 국방부 킬 체인에 회의적 평가 많습니다. 사드 공론화해야 한다고 봅니까?

김무성 : 북핵만 없어지면 사드는 필요 없습니다. 중국이 한반도 사드 배치 반대한다면 북한의 핵을 억제해 달라고 요구하고 사드 배치하지 말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미국이 우리한테 최첨단 무기인 사드를 팔지 않을 겁니다. 미국은 지금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하는 데 필요한 장소를 제공하라는 거죠.
(2015년 5월 22일 헌정회 초청강연 백브리핑)

유승민, 김무성 의원 말고는 대부분의 비박계 의원들도 사드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거의 ‘무플’에 가까웠습니다.

● 고무줄 안보 정책…그리고 친박의 널뛰기

결국, 유승민 대표는 그해 7월 원내대표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청와대가 반대했던 사드 배치를 집요하게 주장한 것도 그 이유로 꼽혔습니다. 여권 내 사드 논의는 잠잠해졌습니다. 유승민 의원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드 배치를 요구했습니다. 정부와 청와대는 그 때에도 불쾌감을 공공연하게 나타냈습니다. 2015년 말 국방부 고위 관료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유승민 의원에 대한 불만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 : 사드 논란이 시작된 건 2014년이었어요.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인 L-SAM 개발을 위해 우리가 미국에 사드 자료를 요청한 게 알려지면서부터입니다. 당시 요청 사실이 블룸버그에 새 나갔고, 이를 그대로 보도하면서 우리가 구매 의사가 있는 것처럼 나가버렸어요. 그런데, 이건 사실 블룸버그의 희망 사항일 뿐이었어요. 미국도 우리가 구매 의사가 있다는 걸로 오해한 건 맞는 것 같습니다.

기자 : 현실적으로 사드 배치에 시간이 많이 걸리나요?

국방부 고위 관계자 : 그렇습니다. 그러면 배치하기까지 그 공백기가 매우 커요. 산술적으로도 사드 배치는 어렵다고 봐야 해요. 그런데 유승민 의원은 기-승-전-사드에요.

기자 : 원내대표 물러난 뒤로도 그런가요?

국방부 고위 관계자 : 그럼요. 국정감사 때문에 대면보고를 들어가면 항상 사드만 이야기해요. 아무리 어렵다, 어렵다, 설명해도 도무지 듣지를 않습니다.
(SBS 2015년 11월 티타임 재구성)

하지만, 결국 사드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전격적으로 배치가 결정됐습니다. 사드 배치를 찬성하면 ‘박근혜의 배신자’가 됐던 시절에서, 이젠 반대하면 배신자가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돼 버린 겁니다. 그간 협상이 진행 중이었던 만큼, 정부와 청와대 입장에서 조심스러웠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친박계는 미국과의 협상 성과를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한 ‘박근혜의 지혜’라고 불렀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설령 그랬다손 치더라도, 국내의 ‘공론화 과정’은 ‘협상의 기술’ 때문에 밀린 셈이 됐고, 대한민국은 고된 홍역을 치러야 했습니다.

● 결국, 친박의 사상은 무엇인가.

정부와 청와대의 사드 배치 정책은 1년 새 극과 극을 오갔습니다. 고무줄 안보 정책이었습니다. 친박은 청와대가 난색을 표할 때는 입을 다물다가도 의욕을 보일 때는 사드 전도사가 됐습니다. 이러는 사이 친박의 누군가는 사드 배치 문제를 계파주의에 이용했고, 또 누군가는 지역주의 때문에 흔들리며 반발했습니다.

철학이 일관됐다고 그 자체가 무조건 정의로운 건 아닐 겁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철학도 없이 이뤄지는 토론은 부질없습니다. 찬성과 반대 논리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드 배치 문제, 오랜 기간의 사회적 토론이 필요했지만, 친박은 철학적 설계도도 없이 집을 지었다가 허물었다가 우왕좌왕했습니다. 그들의 안보관을 관통하는 이론적 얼개도, 철학도 사실상 없었습니다. 제아무리 정치가 생물이라서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다고 하지만, 보수주의가 생명처럼 여기는 안보 문제라면 정치적 계산기를 뛰어넘는 원칙이 있어야 했습니다.

물론 맞은편에 서 있던 비박이 건강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일부 비박 역시 사드 배치를 안보보다는 정치 문제로 인식했고, 또 그렇게 소비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침묵했거나 동조하기도 했습니다. 새누리당 의원 가운데 일관된 원칙을 가지고 사드 문제를 접근했던 의원은, 역설적이게도 계파 양극단에 있던 친박 윤상현, 비박 유승민 의원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거창한 기사의 제목과는 달리, 안보 분야에서 친박의 사상을 추출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다만, 그나마 찾은 공통점이라면, 진보 진영의 안보관을 지속적으로 비판해왔다는 점일 겁니다. 대안 없이 비판만 한다는 말, 진보 진영을 겨냥한 수식어인데, 친박에게도 들어맞는 표현 같습니다. 안보 분야 친박의 사상은 이 정도로 정리하겠습니다.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기초로 하는 이상주의, 경제교류를 통해 상호의존을 높이는 리버럴리즘, 협력 시스템을 구축해 대립을 최소화하자는 기능주의.

에 대한 ‘안티테제(Antithese)’,

여기에 계파의 정치 역학과 지역적 이해관계까지 끌어들여 결합시키는

‘신테제(Synth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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