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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재계 신년사 ‘언행일치’ 기대한다

[취재파일] 재계 신년사 ‘언행일치’ 기대한다
-'위기' '변화와 혁신' '신뢰 회복' '고객 제일'…재계 올해 화두 ‘말의 성찬’ 되지 않길

매년 신년에 내놓는 기업 CEO와 재계 총수들의 신년사는 한해 기업을 이끌어가는 방향성, 목표를 짐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꼼꼼히 읽어보는 편입니다. 매년 등장하는 상투적인 표현들이 여전히 많이 있지만, 올해는 유독 심각한 위기감, 비장한 다짐과 각오,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는 리더들이 많았습니다.

올해 재계 신년사 화두는 '혁신' '변화' '경쟁력 강화' ‘신뢰 회복’ 정도로 뽑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커지는 가운데, 중국의 성장세가 둔화하고 금리 인상 압력이 거세지는 것 등 악재 투성이인 외부 환경에 대한 긴장감이 강하게 읽혔습니다. 내부적으로도 사실 엉망입니다. 소비심리 위축으로 내수가 부진한 데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를 둘러싼 특검의 수사가 해를 넘겨서도 계속되고 있고, 정권에 어떤 대가를 바라고 순식간에 거액을 모아준 재벌 기업들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 또한 큽니다. 정국 혼란이 이어지면서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그만큼 커져 재계에선 신년의 희망찬 분위기를 찾아보긴 어렵습니다. 거창한 시무식 행사 보다는 계열사별로 단출하게 치르는 경우가 많았고, 메시지도 다소 무거웠습니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
삼성은 보통 12월에 하던 사장단, 임원 인사도 무기한 연기한 상탭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특검 수사선상에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초긴장 상태인데, 이 부회장은 지난해 했던 신년 경영진 간담회도 올해는 생략하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의 신년사 중에는 갤럭시노트 7 폭발, 단종사태에 대한 경각심, ‘품질의 삼성’을 의심케 하는 일이 다시는 재발되면 안된다는 강한 촉구가 눈에 띕니다. “위기를 만든 것도, 극복하는 것도 우리다. 품질은 사소한 문제도 타협해서는 안된다. 지난해 치른 값비싼 경험을 교훈삼아 올해 완벽한 쇄신을 이뤄내야 한다.”는 말에는 품질개선 없이는 고객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담겨있습니다.

지난해 판매가 크게 부진했던 현대기아차는 실적을 강조했습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IMF 이후 처음으로 글로벌 판매량이 전년 대비 축소됐는데, 813만대로 내걸었던 판매목표도 달성에 실패했습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조직원의 분투를 촉구하겠다는 뜻인지 정몽구 회장은 신년사에서 역대 최대인 825만대로 오히려 판매 목표를 더 높여 잡았습니다. 세계 시장 환경은 녹록치 않지만 경쟁력 있는 신차, SUV 중심의 시장 확대로 달성해나가자는 뜻을 표했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은 ‘딥 체인지(Deep Change)를 통한 새로운 가치 창출’을 새해 경영 방침으로 제시했습니다. 지난해 최회장 역시 가정사와 기업을 둘러싼 여러 구설에 오르며 곤혹스런 한 해를 보냈는데, 무형의 ‘가치’에 대한 강조가 눈에 띄었습니다. 최 회장은 “구성원이 패기로 무장해야 한다, 구성원 개개인의 마음과 자세, 일하는 방식의 변화 속에 사업 모델의 혁신이 나올 것,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의 진정성이다. 사람에서 시작해 조직별로, 그리고 회사별로 일하는 방식과 문화를 재정의하고 실행하면 전체 경영시스템의 업그레이드가 완성될 것”이란 말을 했는데, ‘사람’을 ‘조직’에 앞서 강조한다는 메시지를 구성원들에게 주고 싶은 것 같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을 ‘새해 복 많이 만듭시다’로 바꾸자는 제안도 ‘상생’에 대한 의지로 읽혔습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
LG 구본무 회장은 '변화' 와 함께 LG의 기본' 정도 경영'을 동시에 강조했습니다. 그동안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LG 문화에서 벗어나 “과거의 성공 방식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양적 성장 시대의 관행을 버려라, 가치를 중심으로 일해라” 등 빠른 혁신을 촉구했습니다. 스마트폰 등 트렌드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실책으로 경쟁력이 추락했고 몇 년 째 고전을 거듭한 데 대한 뼈아픈 반성이자 올해는 반드시 국면 전환을 도출해야 한다는 주문이 담겼습니다. 
한화 김승연 회장
한화 김승연 회장 역시 “미래 핵심역량을 키워야 한다”며 “방산, 화학, 금융, 태양광 모두 지금의 사업방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윤리, 투명, 상생경영과 위기관리에 만전을 기해달라는 메시지도 다른 기업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주요 그룹들은 각각 업종이 다르고 조직 문화가 다르지만 현재 처한 여건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유의 위기 상황에서 근본부터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데도 철저히 공감하고 있는 겁니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들의 엄청난 분노와 실망감이 관련 재단에 돈을 출연한 재벌 대기업에 그대로 전이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큰 축을 차지하는 대기업들에 대한 기본적 여론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기업들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반기업 정서’ 때문에 사업을 못해 먹겠다는 푸념을 하곤 합니다. 빠른 산업화 과정에서 재벌 대기업에 혜택을 몰아줘 인위적으로 키워나간 역사적 배경이 자리 잡고 있지만, 과연 이 반기업 정서를 타개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도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재계 총수 간담회 때 대통령 앞에 가서만 투자와 일자리 창출 약속을 하고 나중에 가면 경제상황이 안 좋아서 다 지키긴 어려웠다고 그 선언이 흐지부지 되는 경우를 우리는 매 정권 여러 차례 봐왔는데, 올해는 좀 다른 모습, 신년사에서 드러난 고객 제일, 품질 만족, 투자 확대, 일자리 창출 등이 반드시 ‘언행일치’ 되길 기대해봅니다.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한 기업들의 약속 이행은 반기업 정서를 줄이는 가장 정직한 방법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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