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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 패가 된 '늘공'과 '어공'…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칼럼] 한 패가 된 '늘공'과 '어공'…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 2017년 정유년, 대한민국의 신화는 깨지는가

2017년 丁酉年 새해가 시작됐다. 새 출발과 비상을 상징하는 ‘붉은 닭의 해‘로 희망을 고대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은 사방에 무엇 하나 시원하게 뚫린 것이 없이 막혀 답답하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이 진행되고 있고, 경제성장률은 2%대로 낮아져 소득이 늘지 않는 가운데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기저물가가 상승하고, 금리는 올라 경제주체들의 비용부담은 늘고 있다. 1천3백조 원을 넘어선 가계 빚은 이자 부담이 늘면서 연체율이 올라가고, 부동산에 쏠려 있는 가계의 자산 가치는 하락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합계출산율은 1.24로 세계최저수준, 초저출산이 계속되면서 올해부터 25세에서 49세까지 핵심생산인구가 감소하고, 2020년부터는 15세에서 64세까지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말 그대로 인구절벽, 소비절벽, 성장률 절벽이 한꺼번에 닥치면서 우리경제는 벼랑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대세다. 부존자원이 없이도 6.25의 참화 속에서 맨주먹으로 일어나 ‘한강의 기적’을 일군 대한민국의 신화가 깨지려는 것인가?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Daron Acemoglu) 미국 MIT 경제학과 교수와 제임스 A. 로빈슨(James A. Robinson) 하버드대학교 정치학과 교수가 쓴 책,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는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신화에 새로운 탈출구를 제시하고 있다.

두 교수의 저서는 로마시대에서 봉건시대, 산업혁명기, 그리고 21세기까지 전 지구적 경제발전의 역사를 고찰한다. 그리고 가깝게는 남한과 북한, 좁게는 미국 애리조나 주와 멕시코 소노라 주로 갈라져 있는 노갈레스시, 넓게는 서유럽과 동유럽, 북미와 남미,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들이 지역별로 왜 그토록 현격한 소득수준에 차이가 나는 지를 분석한다.

애쓰모글루와 로빈슨 교수는 지금까지 지역별 흥망성쇠의 요인으로 지목돼온 지리적 위치, 부존자원, 동식물자원, 문화적요인, 지식의 유무 같은 것들이 큰 의미가 없다고 설명하고, 지역의 경제발전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그 지역의 정치와 경제 시스템이 ‘포용적인가’의 여부라고 주장한다.

사유재산이 확고히 보장되고, 법이 공평무사하게 시행되며, 누구나 교환 및 계약이 가능한 공평한 경쟁을 보장하는 포용적인 제도(Inclusive Institution)를 구비한 지역은 흥하지만, 한 계층의 소득과 부를 착취해 다른 계층의 배를 불리는 착취적 제도(Extractive Institution)가 지배하는 지역은 쇠한다는 것이다. 착취적인 지역에서도 일시적으로 발전이 있을 수 있지만, 그 발전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창조적 파괴와 광범위한 기술혁신이 수반되지 않은 성장은 지속될 수 없고, 창조적 파괴와 혁신은 포용적인 정치경제 시스템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논리다. 착취적인 시스템에서는 혁신을 해 봐야 주인의 배만 불릴 테니 혁신의 인센티브는 사라진다.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와도 착취적인 사회에서는 혁신이 가져올 정치경제적인 변화를 두려해 파괴적 혁신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 왜 포용적이어야 하는가…착취적인 제도에선 창조적 파괴 불가

아우구스투스에 이어 로마의 2대 황제가 된 티베리우스 황제(재위 AD 14-37) 시절 한 청년이 깨지지 않는 유리를 발명해 황제를 알현했다. 하지만 이 깨지지 않는 유리는 빛을 보지 못했다. 이를 발명한 사내는 결국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황제는 “황금이 진흙의 가치로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79-69년 재위한 로마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도 카피톨리누스 성채로 기둥을 운반할 수 있는 발명품을 도입하지 않았다. 베스파시아누스는 “그 기계가 도입되면, 기둥을 운반하던 백성을 어떻게 먹여 살리지.”라며 새로운 기구를 외면했다고 한다.

세상을 바꾸어 놓을 새로운 기술이 외면 받거나 오히려 파괴의 대상이 된 사례는 근대로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다. 1589년 영국의 윌리엄 리는 편물기계를 발명하고 엘리자베스 1세에게 특허를 요청했다. 엘리자베스는 “리 명장의 의도는 높이 사겠소. 그러나 이런 기계를 만들면 백성이 일거리를 모조리 빼앗기고 거지가 될 게 불을 보듯 뻔하지 않소.”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절대군주가 아니라도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신기술의 채택을 막는 경우는 많았다. 영국의 디니시우스 파팽은 1705년 증기선을 만들어 운행하려 했지만 뱃사공들은 증기선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산업혁명 시절 러다이트 운동은 또 다른 대표적인 예이다.

애쓰모글루와 로빈슨 교수는 신석기 혁명에서 산업혁명까지 생활수준이 지속적으로 나아지지 않은 주된 이유는 ‘창조적 파괴‘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중대한 혁신은 정치적 권력의 판도마저 바꾸어 놓을 수 있기 때문에 포용적인 정치경제 시스템이 정착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뿌리내리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18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꽃을 피운 것은 1215년 마그나카르타, 1530년 크롬웰의 관료주의 정부 도입, 1623년 독점법 통과, 1688년 명예혁명으로 영국에서 권력이 다원화 하고 포용적인 시스템이 정착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1769년 아크라이트가 특허를 낸 수력방적기가 도입되면서 18세기 초 까지만 해도 1백 파운드의 실을 뽑아내는 데 손으로 5만 시간이 걸리던 것이 300 시간으로 단축됐다고 한다. 자동뮬은 이것을 다시 135시간으로 단축했다. 혁신적인 기술의 힘이 얼마나 큰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으로 절대정권이 무너지면서 서유럽 지역에 제도적 개혁이 확산하고, 1868년 일본에서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메이지유신을 선포하고 봉건제 철폐와 산업화의 길을 가게 된 일, 미국과 호주 등의 경제발전도 포용적인 시스템으로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같은 사안을 접하고서도 그 사회가 포용적인가 아닌가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 미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은 독점 파괴의 힘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독점적 지배력을 가진 재벌기업들이 속속 등장했다. 1870년 존 D. 록펠러가 만든 스탠더드 오일, 존 피어몬트 모건의 JP 모건, 뒤퐁, 이스트먼 코닥, 인터내셔널 하비스터, 아메리칸 타바코 등으로 당시 이들 강도귀족에 조직적으로 맞서는 포퓰리스트(Populist)운동과 진보(Progressive)운동이 시작됐다.

미국 정부는 1887년 주간통상법(Interstate Act)으로 산업규제의 기틀을 마련하고, 1890년 셔먼 반트러스트법(Sherman Antitrust Act)으로 반독점 규제를 시행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1901-1909), 윌리엄 태프트(1909-1913), 우드로 윌슨(1913-1921) 대통령은 트러스트를 향한 대대적 공격을 감행했다.

그 결과 1911년 스탠더드 오일은 해체됐다, 1913년 수정헌법 제16조 비준과 함께 연방소득세가 도입됐고, 1913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설립은 금융부분에 대한 독점 규제의 일환이었다. 언론도 지대한 역할을 해 독점적 기업들의 추문을 파헤치는 '머크레이커(Muckraker)'로 불렸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사회보장법에 서명해 퇴직연금과 실업수당, 부양 아동이 있는 가족에 대한 부조, 건강보험, 장애수당 등 근대 복지국가 이념을 도입했다. 전국노동관계법을 제정해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파업권 강화시켰다. 하지만 대법관을 자기 마음대로 임명하려는 루스벨트의 시도는 의회의 반대로 무산됐다.

애쓰모글루와 로빈슨 교수는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할지라도 포용적인 시스템이 없으면 경제발전은 지속될 수 없다고 말한다. 한 때 영국보다 잘 살았다는 아르헨티나, 공산주의 혁명 이후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미국과 어깨를 견주던 러시아가 다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포용적인 시스템이 아닌 착취적인 제도 때문이라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 중국의 경제성장은 계속될까…권위주의적 성장은 한계

1949년10월1일 마오쩌둥은 장제스를 물리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해 공산정권을 수립했다. 1966년5월16일 문화혁명으로 불리는 대약진 운동 선포로 10년 동안 2000-4000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고, 1976년9월 마오쩌둥은 사망했다.

1977년3월 복권한 덩샤오핑은 1983년 집단농업체제를 폐기하고 농업에 경제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농가책임제를 시행했다. 1985년 농산물 통일매입제를 폐기해 자율적인 계약제도로 대체했고, 14개 ‘개방도시’를 선정하고 국영기업의 자율성을 확대했다. 이 같은 개혁개방정책으로 중국경제는 고속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식 소유권 제한, 국가통제로 이뤄지는 착취적인 제도하의 성장은 한계가 있다고 두 교수는 지적한다. 첸윤이 말했듯이 중국경제는 ‘새장 안의 새’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중국 공산당과 기업의 유착으로 특정 계층에 엄청난 경제적 이익이 돌아가는 시스템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진단이다. 

애쓰모글루와 로빈슨 교수는 1) 중국에서와 같은 권위주의적이고 착취적인 정치제도하의 성장은 당분간 계속된다 해도 포용적 경제제도와 창조적 파괴로 지탱되는 지속적 성장으로 연결되지 못할 것이다. 2) 근대화 이론이 주장하는 바와 대조적으로 권위주의적 성장이 민주주의 또는 포용적 정치제도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3) 권위주의적 성장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다고 결론을 내린다.

“19세기 영국과 북아메리카, 독립 이후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정치혁명은 한층 더 포용적인 제도와 점진적 제도변화가 태동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으며, 궁극적으로 포용적 정치제도를 강화시켰다. 이런 성공한 혁명의 공통점은 광범위한 사회계층이 권한강화(Empowerment)에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포용적 정치제도의 주춧돌인 다원주의는 정치권력이 사회전반에 고르게 분배되어야만 뿌리내릴 수 있다. 소수 엘리트 손에 권력을 쥐어 주는 착취적 제도에서 출발했다면 사회전반의 권한 강화과정이 필요하다.”

● 2017년 대한한국의 희망은…포용적 국가운영시스템 구축

여러 부문에서 개혁이 추진됐던 노무현 대통령 시절 정치권에서 일하다 어쩌다 공무원이 된 ‘어공’들이 늘 공무원이었던 ‘늘공’들과 갈등을 벌인 적이 있다. ‘어공‘들은 ’늘공‘들이 개혁성향이 부족해 개혁정책에 따르지 않는다고 비판했고, ’늘공‘들은 ’어공‘들이 전문지식도 없고 행정도 모르면서 의욕만 앞세운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최순실 국정개입 사태’가 온 나라를 휩쓸고 있는 지금은 그러나 ‘어공’의 개혁성향도 ‘늘공’의 행정적 현실주의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 권력자의 ‘부역자’가 되어, 또는 자신들의 이익만을 염두에 두고 국가라는 시스템을 착취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6백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지적하는 낙후된 아프리카와 남미, 아시아 국가에서처럼 우리사회의 엘리트 계층이 착취적인 계급을 형성하고, 착취적인 행정을 하게 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운 일이다.

우리사회는 계층간 이동의 역동성이 떨어지면서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흑수저'로 부르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잘 살수 없다고 아우성이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격차는 갈수록 벌어져 경제의 활력을 떨어트리고 있다.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한 대한민국은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지금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구축했다. 하지만 권력의 사유화에 따른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의 고리는 계속 남아 국민들을 좌절하게 만들고 있다.

조기 대통령 선거와 개헌이 논의되고 있는 2017년, 국민이면 누구나 정치, 경제, 사회활동에 참여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개인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소질이 존중받는 공평하고 포용적인 국가운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강의 기적이라는 대한민국의 신화창조도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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