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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팽목항에서 온 크리스마스 편지

[취재파일] 팽목항에서 온 크리스마스 편지
"가장 가까이서 딸을 기다리는 게 엄마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어요."

"일상이 행복이란 걸 몰랐는데, 가족과 하루하루 소중히 여기며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잊지 않겠다'는 말 보다는, 세월호를 인양하고 가족을 수습하는 데 힘을 보태주셨으면.."  

"촛불 정국과 함께 세월호 참사에 다시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예수의 탄생을 함께 기뻐하는 날, 가족의 주검을 숨죽여 기다리는 사람들. '얼른 가족 데리고 집에 가야지' 하고 팽목항에 내려온 이들은 벌써 3년 째 이곳에서 추운 겨울을 맞고 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그날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성탄절의 의미는 아득해 보였습니다. 천 일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게, 그저 가족의 주검을 수습하는 것이 이들의 소망입니다. 

승객 304명 중 시신으로나마 돌아온 사람은 295명, 아직 9명이 바닷속에 있습니다. 단원고 학생 2학년 1반 조은화, 2학년 2반 허다윤, 2학년 6반 남현철, 박영인 학생, 그리고 단원고 교사 고창석 선생님, 양승진 선생님, 그리고 제주도민 권재근, 권혁규, 이영숙 씨가 바로 그들입니다.

아직 팽목항에 남아있는 미수습자 단원고 조은화 학생의 어머니 이금희씨와, 미수습자 일반인 권재규씨의 형 권오복 씨가 팽목항의 소식을 이곳에 어렵게 전해주었습니다. 

● "성탄절요? 매일 매일이 4월 16일이에요"

시지프스에게 내려진 형벌도 이처럼 무겁고 고통스러웠을까. 매일 매일 바위를 굴려 올리듯, 이들은 매일 매일 2년 전 4월 16일을 겪어내고 있었습니다. 성탄절을 어떻게 보내시냐는 기자의 어리석은 안부 인사에 은화 어머니는 수화기 너머 무겁지만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은화 어머니 "성탄절, 명절, 연말, 이런 것들은 저희에게 의미가 없어요. 매일 똑같은 4월 16일이에요. 저희는 매일 아이를 기다려야 하니까,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거예요. 아침 먹고 나서, 종종 조문객 오시면 물어보시는 거 설명해드리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날, 그날이에요. 여기서 아이 생일을 3번 치렀습니다. 가족들이 팽목항을 빨리 떠날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우리도 집에 가고 싶고, 광화문에 나가서 왜 그랬냐고 따지고 싶고, 억울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동생과 조카, 제수씨를 함께 잃은 62살 권오복 씨도 팽목항 임시 컨테이너에서 3년째 매일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2년 전 권오복씨와 이야기를 나눌 때만 해도 그가 지금까지 이곳을 떠날 거라고는 기자 역시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권오복 씨
권오복 "그냥 하루종일 바다 보고 있는 거죠. 혼자 방에서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기도 하고요. 한번씩 무슨 날 되면, 배 타고 사고 지점에 나가서 보고 오고 그래요. 다른 미수습자 가족들과 밥해 먹기도 하고, 밥이 없으면 컵라면 먹기도 하고요. 그래도 얘기 나눌 땐 잠깐이라도 잊는데 방에 돌아와서 자려고 할 때면 너무 힘들어요. 많이 외롭고, 가족도 보고 싶고요. 이번 성탄절이라고 무슨 계획이 있을까요. 다만 이번엔 한 언론사에서 하룻밤 머물고 가겠다고 하네요. 생각해주시니 고맙죠."
 
● "할 수 있는 건 가장 가까이서 기다리는 것뿐"

궁금했습니다. 이들이 팽목항을 떠날 수 없는 이유를 말입니다. 다음 달 9일이면 세월호 참사 천 일입니다. 세월호 인양도 빨라야 내년 4월 넘어서야 가능할 거라는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들은 왜 지금 팽목항을 지키고 있을까. 이들의 답은 간단했습니다. 기다림이 이들이 할 수 있는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은화 어머니 "2014년 4월 16일, 팽목항 내려와서 사람들한테 울고 불고 딸 살려 달라고 했죠. 이제 눈앞이 천 일인데 바람과 파도 보세요. 날씨가 안 좋아서 배들도 묶여있어요. 이 거친 바다 속에 딸이 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우리 은화는 엄마가 찬 바람 맞으며 팽목항에서 기다리는 걸 많이 아파할 아이에요. 하지만, 이말 해주고 싶어요. 엄마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건 너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는 거. 그리고 엄마는 너가 나올 때까지 끝까지 찾기 위해 최선 다할 거라는 거. 하루라도 빨리, 한 시간이라도 빨리, 십 분이라도 빨리 너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라는 거. 엄마는 내 목숨보다 너를 사랑한다는 거. 너무 오래 있게 해서 미안하다는 거."

권오복 "지금 여기서 세 번째 겨울 맞고 있어요. 저도 지금까지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어요. 기다리다 기다리다 보니까 여지껏 온 거예요. 동생이랑 조카 찾을 때까지, 나올 때까지 여기 있어야죠. 힘이 나고 안 나고 할 게 어디 있어요, 지금. 그냥 깡으로 버티는 거죠, 버티는 거."
단원고 조은화 학생의 어머니 이금희 씨
● "잊지 않겠다는 말보다는"

2년 전, 우리가 그날의 사건을 보며 "잊지 않겠다"는 말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기사에서 "기억하겠다, 잊지 않겠다"는 말을 늘 되뇌듯 썼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수화기 너머 작게 들려오는 은화 어머니의 말에 머리를 한대 세게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은화 어머니 "국민들이 세월호 때문에 참 많이 아파하셨어요. '잊지 않겠다, 기억하겠다'는 말씀 참 많이 해주셨어요. 너무 감사하죠. 하지만, 그보다는 세월호 인양에 힘을 보태주세요. 세월호를 인양해야,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밝히고, 또 앞으론 이런 일 없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세월호 인양이 왜 중요한지 예를 들어가면서 한참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휴대폰이 고장나서 서비스 센터에 가면, 직원이 '아주머니 휴대폰 가져오세요' 그래요. 휴대폰 없이 계약서나 통화 내역만 보고 고장 원인 얘기하면 그건 그냥 어떤 '설'일 뿐이잖아요. 마찬가지로,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하려면 세월호가 꼭 필요해요.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같이 지혜를 모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저희도 집에 가고 싶습니다. 천 일이면 많이 기다린 거 아닐까요."

은화 어머니는 국민들이 함께 아파하고, 잊지 않겠다는 말하는 것 보다 참사를 해결하고 극복하는 데 함께 힘을 보태 달라고 간곡히 말했습니다.

● "여러분은 소중한 일상, 행복하게 사셨으면"

예수는 가장 소외된 이들을 찾아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반도 땅끝 팽목항에서 가장 소외되고 고통받고 있는 이들은 거꾸로 기자에게, 우리에게 삶의 희망을 건네고자 했습니다.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꼭 알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그것도 아주 여러 번 전했습니다. 

은화 어머니 "지금 은화가 살아있었다면... 좋아하는 음식 숟가락에 하나 하나 올려주고 싶어요. 같이 밥 먹고, 누워서 얘기하고, 팔짱 끼고 아이스크림 사먹고, 조잘조잘대면서 먹는 모습 보면서 "아, 우리 딸 참 예쁘구나" 얘기하고, 그러면서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지 않을까요. 만약 은화랑 같이 성탄절을 보냈다면... 아마 같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겠죠. 그리고 나서 신나게 놀았을 거예요.

우리 모두 이런 일 당하리라 생각 못했잖아요. 저는 아침에 가족과 밥 같이 먹고, 아이들에게 학교 다녀오라고 하고... 이런 일상생활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지, 이 자체가 행복인 걸 몰랐어요.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옆에 있을 때, 같이 밥 먹을 수 있을 때 밥 먹고, 서로를 안아줄 수 있을 때 안아주면서 말이에요."
촛불집회 이미지 컷
● "부디 가족의 죽음이 헛되지 않길"

100만 개의 촛불이 대한민국의 어둠을 밝힌 순간, 많은 이들은 세월호 참사 또한 떠올렸습니다. 우리 사회의 모순을 알고, 고통 받는 이들의 아픔을 느낄 줄 아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 순간 희망의 불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함께 만들어낸 촛불 정국은 마지막까지 남은 미수습자 가족들에게도 큰 감사와 위안이 돼 보였습니다. 

권오복 "촛불 정국으로 국민들이 세월호 참사에도 관심 많이 가져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세월호 참사가 잊혔다고 생각했는데, 촛불 정국으로 하나 둘 다시 찾아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많이 외로웠는데... 참 반갑고 고맙습니다." 

은화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성탄절 소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은화 어머니 "많은 국민들이 세월호 전과 후가 달라졌다고 느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언젠가 이렇게 얘기하면 좋겠어요. '그 일은 참 안 된 일이고, 아이들 죽음은 안 됐지만, 헛된 죽음은 아니었어. 아이들 때문에, 희생자들 때문에 이렇게 나라가 달려졌어. 이게 참 고마워' 이렇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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