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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4.16'에 대한 기억을 저장하다…서울대 이현정 교수 인터뷰 ①

* 당사자들의 증언을 통해 4.16에 대한 기억을 저장하는 노력이 2년 가까이 진행 중이다. 지난 21일, ‘416 가족협의회 기억저장소’ 측이 진행중인 '구술증언 사업'의 책임자 이현정 교수(서울대 인류학과)를 만났다.
'구술증언 사업'의 책임자 이현정 교수
Q. ‘4.16 기억저장소’가 진행 중인 구술증언 사업의 책임자이시죠

네, 피해자 관점에서 구술 기록을 수집하고 하고 있어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언제 제대로 밝혀질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언제 되더라도 제대로 된 역사적인 기록은 반드시 필요하니까요. 국가정책 차원의 기록 사업도 있어요. 그런데 국가에 의해 피해를 받은 가족 분들이 (그에 응하길) 원하지 않으시죠. 자료들이 제대로 사용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 힘드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독자적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Q. 그럼 봉사 형태인가요?

네, 맞아요. 

Q. 주로 어떤 분들이 면담자로 참여하고 계시는지

모두 구술 연구자들이에요. 구술 방법을 통해 자료를 모으는 여러 학문 분과가 있어요. 저희 인류학도 있고, 기록학, 역사학, 여성학 하시는 분들도 있고. 각 분야 교수님들이나 석사 이상 연구자들이세요. ‘아름다운 가게’와 '역사문제연구소'에서 도와주셔서 최근엔 일부 교통비 정도는 지원할 수 있게 됐어요. 면담자 가운데는 학생 분들도 꽤 되는데, 사실 보수도 없이 꾸준히 시간을 내서 참여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죠.

Q. 구술 증언이라는 게 일반인 입장에선 낯선 개념이라서요,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나요

구술자 각자의 경험이 다르다 보니, 딱딱하게 정해진 포맷으로 이루어지기가 힘들어요. 그렇지만 면담자가 여러 분이다보니 각자 알아서 하라고 하기에도 무리가 있고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공통적으로 묻는 질문 목록을 만들었어요. 면담자는 공동 질문 목록의 큰 틀 안에서 조금씩 바꿔가며 질문을 하죠. 구술 전 과정은 영상으로 촬영을 하고 있고요. 섭외를 한 후 취지를 설명해 드리고 동의를 받으면, 보통 한 분을 3차에 걸쳐 만나 매번 2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죠. 지금까지는 주로 유가족 분들 중심으로 진행했어요. 그 외에도 참사와 관련해 활동하신 시민운동가, 변호사, 잠수사, 취재하셨던 기자 분도 만나 왔고요. 이제 생존 학생들도 성인이 됐기 때문에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고요. 팽목에 계셨던 어민 분들도 진행하려 해요. 그 모든 분들께 "4.16 이전의 삶", "참사 당시의 경험", 그리고 "참사 이후 본인의 삶의 변화"라는 부분으로 나누어 구술증언을 받고 있어요. 지난 1년 반 정도의 기간 동안 70~80분 정도를 상대로 진행했습니다.

Q. 4.16을 기록한다’는 게 굉장히 광범위합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엇을 기록하고 계시나요

우선 참사 당일과 그 이후 과정에 대한 '진실'을 알아내려는 노력이 중요하죠. 참사 이후 초기 대응 과정에 관해서는 아직 정확한 사실이 우리 사회에 알려지지 않았어요. 언론 보도가 되지 않은 부분도 있고요. 그 과정을 직접 겪었던 사람들의 입을 통해, 언론이나 국가를 통해 '공식화'되지 않았지만, 분명히 겪어온 생생한 경험담을 수집하는 작업은 중요해요. 그렇지만, 당시에 대한 사실 기록을 넘어,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무엇이었는가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봐요. 유가족들과 생존자 가족들 뿐 아니라, 각 분야에서, 그게 공무원이든 기자이든 학자이든 정치인이든, 또 일반 시민들도, 이 모든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 속에서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 또 세월호 참사가 각자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를 기록하는 거죠.

'우리가 뭘 했는가’만큼 잘 기록해야 하는 게 ‘우리가 뭘 하지 않았던가’에 대한 것이에요. 예컨대 제가 지금도 정말 놀랍다고 생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우리 교육계의 대응이에요.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어라'라고 지시했던 것이 문제가 되어서, 초기엔 이런저런 반성이 있었는데 그 후 무엇이 바뀌었나요. 다시 돌아왔죠. 그대로죠.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다시 또 살던대로 살고 있는 거예요. 우리의 한계가 드러난 사건이니만큼 면면이 기억해야만 앞으로 같은 일이 일어날 때, 물론 그런 일이 또 있어선 안 되겠지만, 그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번과는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 알 수 있겠죠.

Q. 개인적으로 ‘4.16 기억저장소’라는 단체를 참사 1주기 때 알았어요. ‘세월호를 어떻게 추모할 것인가’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었는데, '추모를 위해선 희생자 개개인에 대한 기록 작업이 우선해야 한다'는 주제였어요. 기사에 유족 분들의 목소리를 담으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가족 분들이 세월호를 추모하는 분위기로 흘러가는 걸 그 당시만 해도 굉장히 힘들어하셨거든요. 추모라는 주제를 성급하게 꺼냈구나, 반성했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사실 추모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은 가족 분들도 추모에 대해 상당히 공감하세요. 말씀하신대로 초기엔 너무 '한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었죠. 안타까운 점은, 가족 분들이 추모하는 분위기를 원치 않으셨던 게 아니에요, 제가 볼 땐. 그땐 그 당시에 가족 분들은 너무나 많은 것들, 거대한 것들과 싸우고 계셨기 때문에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거예요.

사실 가족 분들이 그러한 상황이니 다른 사람들이, 그러니까 이웃과 시민사회가 묵묵히 추모를 이어갔어야 했다고 봐요. 개인적으로 혹은 동네에서 추모를 하시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온 국민과 지역 사회가, 이 문제로 서로 편을 가를 것이 아니라, 함께 슬퍼하고 잘못을 통감하고 그걸 마음으로 같이 새겼어야 했다고 봐요. 지금까지의 잘못을 되새겨, 앞으로는 그럼 우리가 어떤 좀 더 단단한 공동체를 이룰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성숙한 자리가 있었어야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게 없었어요. 정치적으로 양분해 내 편이니, 니 편이니 나누고 분열하고. 그러니 사람들은 마음 속으로 ‘이 사회는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져도 함께 슬퍼하지 않는구나. 단지 나만의 못남이고 불행일 뿐이구나’ 같은 불신, 불안을 느꼈죠. '그럼 나는 평소에 어떻게 살아야 하지?', '어느 편을 들고 사는 게 유리하지?'같은, 끊임없이 처세에만 신경 쓰게 됐고요. 모두가 상식으로 공유했던 아주 기본적인 도덕의 기준선마저 붕괴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추모는 사회적으로 점점 확산하고 더 큰 단위로 번졌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는 게 저는 또 하나의 참사다, 이번 사건으로 발견된 우리의 민낯이다. 저는 그렇게 봐요.

Q. 교수님은 어떻게 이 활동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저는 사회적 고통을 연구하는 사람이에요. 쉽게 이야기하면,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제로 인해서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정신적으로 ,또는 신체적으로 과도하게 고통받는 상황에 대해 연구하죠. 원래는 중국 연구자로, 중국 농민들의 우울증과 자살, 노인 치매 등을 연구해왔어요. 몇 년 전부터는 한국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고요. 제가 하는 분야를 '의료인류학’이라고 하죠.

제가 왜 4.16 구술증언 활동을 시작하게 됐나 돌아보면... 세월호 참사 당시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 일로 제 정체성이 모조리 붕괴되는 경험을 했거든요. 우선 피해자 대부분이 학생이었잖아요. 아이들이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그 말을 들었기 때문에 희생됐다는 점. 그날 제가 강의가 있었는데 수업에 들어가 학생들에게 정신 나간 사람처럼 ’앞으로 나를 비롯해 어른들이 말하는 것을 절대 믿지 마라, 미안하다‘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나요. 기성세대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40대를 넘어가면서, 제가 이 사회의 젊은이들에게 대안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답답해 하고 있던 차였어요. 그런데 세월호로 인해 어른으로서, 선생으로서 자격에 대해 보다 더 깊게 고민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한국 사회의 말하자면 엘리트, 엘리트로서 정체성. 교수뿐만 아니라 법관, 정치인, 관료, 기자. 모두 많이 알고 배운 힘을 가진 사람들인데 그 동안 뭘 했던 건가. 나라가 이런 식으로 돌아가도록 다들 뭘했나. 충격, 절망, 죄책감, 그런 걸 느꼈어요.

마지막으로 아이의 엄마로서 갖는 정체성도 와르르 무너졌죠. 크게 나쁜 짓 하지 않고 권력이나 금전에 영합하지 않고 연구를 열심히 하면 나름대로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겠거니 막연하게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사회적 약자와 빈농에 대해 연구하다 보니까 사회의 진보와 세상의 형평성, 공정성에 어느 정도 기여하고 살고 있지 않나, 어떻게 보면 저 스스로 오만함도 있었던 것 같고요.

그런데 아니었던 거죠.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이렇게 무지하고 무책임할 수가 있나. 당장 이 일이 내 학생들에게 일어났다면... 무방비였던 거죠. 그러다가 아무 준비 없이 5월 3일, 안산으로 내려갔어요. 그 후로 학교 수업과 병행해가며 일주일에 2~3일 씩 안산의 트라우마센터에 머물며 관찰과 면담을 중심으로 기록 작업을 시작했어요. 트라우마센터에서 진행되는 개인적인 치료라든지 의료적인 내용을 들을 순 없어요. 다만 활동가들, 의료진들, 안산이라는 지역사회의 움직임, 전체적 정황들. 그런 걸 지켜본 거죠. 한국 사회에 이처럼 대규모로 반응이 일어나게 된 사건이 처음이니, 당시 상황을 기록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가족들이 정치적 주체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쭉 지켜본 것 같아요.

Q. 정치적 주체라면, 유가족대표 분들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뇨, 꼭 그런 협의체대표로서 유족들 뿐만 아니라, 수동적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유족들이 정치적으로, 독자적인 주체로 성장해가는 모습이요. 이분들도 사실 그 전엔 정치에 관심가질 일이 별로 없었어요. 꼬박꼬박 세금 잘 냈고, 정치인들이나 대통령이나 어쨌든 우리가 투표해 뽑았고, 아이를 가르쳐주시는 학교 선생님은 늘 감사하고 어렵고. 하루하루 열심히 돈 벌고 아이 학교 보내고, 그렇게 남들처럼 바쁘게 살던 아버지, 어머니들인데 아이를 잃고 국가의 배신을 보고 나선 삶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 거죠.

유족들은 끝까지 이 나라를 믿으려 했어요. 팽목항에서 해경의 말을 믿었고, 장관의 말을 믿었고, 대통령도 그렇고. 지금이야 완전한 불신의 관계가 되었지만 말이에요. 물론 전부가 그랬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제가 관찰하기로 가족들은 상당히 오랫동안 '적어도 대통령은 우리를 배신하지는 않으리라' 믿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어느 순간부터 아니란 걸 알게 된 거죠.

Q. 어느 순간부터였나요?

2014년 11월 청운동에서 만나달라고 요청했는데 계속 거절당했을 때, 그때부터인 것 같아요. 대통령이 전에 유가족 열일곱 분을 청와대에 모시고 ‘여한이 남지 않게 해주겠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찾아갔는데 ‘언제든지 나를 만나러 오라’던 대통령이 만나기는 커녕 가족들을 적대시했어요. 그때부터 가족들이 서서히 깨닫게 된 거예요 

(다음 회에 이어짐)

* 참고
<‘4.16 구술증언’ 사업 / 4.16 가족협의회 기억저장소>
‘4.16 구술증언’ 사업/  4.16 가족협의회 기억저장소
* 사업개요
- 구술증언은 소외된 집단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사회운동이자, 밑으로부터 역사쓰기의 주된 방법. 4.16 관련 기억을 소환하고 기록하여, 이후 진상규명 및 역사기술 작업에 기여하려는 목적. 아름다운 가게와 역사문제연구소의 예산 지원 하에 필요 공감대에 기초한 자발적 참여 방식. 다양한 분야 구술 연구자들의 학제 간 협업 형태로 진행. 구술증언 자료는 4.16 가족협의회 기억저장소 기록관리 보존 원칙에 따라 보존 열람될 예정. 현재로서 콘텐츠 제작 및 활용에 대한 특별한 계획이 없으며 추후 발생 시 추가로 동의절차 밟을 것임.

* 사업 진행방식
기간: 2015년 5월~
대상: 안산 유가족, 생존자 및 주요활동가들, 잠수사들 (개별동의하에 진행)
진행방식: 매회 1.5~2시간씩 총 3차에 걸쳐 구술증언에 대한 영상촬영과 녹취를 동시 진행
자료정리 방식: 영상자료는 파일로, 녹취자료는 파일 및 문서 형태로 보관

* 수집내용
1차: 4.16 이전의 삶, 팽목항과 진도에서의 경험, 아이에 관한 기억
2차: 4.16 이후 2년 간 가족들의 투쟁 및 공동체 활동 경험
3차: 지난 2년 개인과 가족 삶의 변화, 깨달음, 아이의 현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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