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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나를 숭배하지 마라"…카스트로 그리고, 박근혜

[취재파일] "나를 숭배하지 마라"…카스트로 그리고,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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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것, ‘생로병사’는 지구 상 만물이 겪는 ‘자연의 이치’입니다. 하지만, 오직 인간만이 ‘죽음의 미학’을 만들어냅니다. 지난달 25일, 또 한 명의 역사적 인물이 이 자연의 이치에 따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쿠바 혁명의 영웅’,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입니다.
 
반세기란 긴 세월 동안, 그 누구보다 강력한 억압으로 국가를 통치해왔던 그였기에, 쿠바 국민이 받은 감정은 여러모로 충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쿠바 시민들은 “Yo soy fidel!(내가 피델이다!)”를 외치며 그를 추모했지만, 바다 건너 미국 플로리다에 정착한 쿠바 이민자들은 거리로 뛰어나와 샴페인을 터뜨리며 그의 죽음을 자축했습니다.
 
카스트로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발자취는 이제 역사의 평가를 기다리는 운명으로 남아 있습니다. 거친 긴 수염과 군복, 피를 토하는 듯 열정 가득한 연설. 그리고 한평생 계속된 암살 위협. 그가 창조할 ‘죽음의 미학’은 어떤 것일까요? 
쿠바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영면
● 무료 의료·교육 제도 등 '사회개혁 분야 개혁'

카스트로 통치기간 이룬 업적 중 높은 평가를 받는 건 전국 공통의 의료제도와 교육 등 ‘사회 개혁 부문’입니다. 국가가 모든 국민의 의료비를 전부 부담하며,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교육비를 책임지는, 문자 그대로 ‘파격적인 개혁’을 이뤄냈습니다. 미국보다 유아사망률이 낮은, 세계보건기구 사무국장이 보증한 의료대국. 의료시스템이 붕괴한 영국이 모델로 배우는 나라. 2006년 당시 런던의 '헝그리 시장'으로 유명했던 켄 리빙스턴은 “반세기 동안 미국의 경제 제재를 받던 나라가 국민에게 최고의 의료 제도와 훌륭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라며 카스트로를 극찬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존재감이 가장 두드러졌던 건 역시 ‘냉전 시대’였습니다. 세계가 편을 나눠 싸웠던 어두웠던 시절, 그는 그 어둠 속에서 가장 강렬하게 빛났습니다. '비동맹운동' 지도자로 두 번이나 선출된 그는 혁명에 대한 열정을 강조하며, 많은 개도국으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습니다. 특히, 1962년 옛 소련의 지원을 받아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한 뒤 핵미사일을 배치하려고 함으로써, 최고 군사 대국 미국에 ‘무력 대 무력’으로 맞섰습니다.
 
당시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군사력을 동원해 섬나라 쿠바를 봉쇄했고, 두 사람은 세계를 핵전쟁 공포로 몰고 갔던 '쿠바 미사일 위기' 한가운데에 섰습니다. (이후, 미국과 당시 소련은 미사일 배치계획을 철회하고,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기로 합의하면서 절체절명의 핵위기는 해소됐습니다.) 서방과 공산주의 진영이 팽팽하게 대치했던 그 시절, 그의 열정 가득했던 한마디는 ‘세계를 뒤흔드는’ 그런 무게감을 가졌습니다.
 
● 절대적인 복종 강요와 탄압…가족들까지 비판
 
하지만, 카스트로의 이 같은 ‘열정’은 역설적으로 '억압'에서도 절대적으로 발휘됐습니다. 그는 국민들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강요했습니다. 언론은 비판의 자유를 빼앗겼고, 사회주의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탄압받았습니다. 끊임없는 감시와 가택 연금, 기소, 해고. 카스트로가 투옥한 정치범도 반세기 동안 수천 명에 달했습니다. 무자비한 탄압을 피해 국민들은 목숨을 걸고 바다에 뛰어들었고, 그렇게 미국으로 넘어간 ‘보트 피플’만도 100만 명이 넘습니다. 630여 차례에 달하는 암살 시도는 그가 얼마나 무자비한 지도자였는지를 반증합니다.
 
특히 흥미로운 건 그에 대한 가족들의 부정적 평가입니다. 1960년대 일찌감치 쿠바를 탈출해 미국으로 망명한 여동생 후아니타 카스트로는 "오빠인 피델과 라울은 조국을 바다에 둘러싸인 거대한 감옥으로 바꿔 버렸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카스트로의 딸 아리아나 페르난데스는 “아버지가 남길 유산으로 "파괴된 국가와 가혹한 경험을 한 망명자들뿐"이란 말을 남기고 역시 쿠바를 떠났습니다.

‘깊은 슬픔에 잠긴 쿠바 수도 아바나’ 그리고 ‘축제로 떠들썩한 미국 플로리다’. 카스트로 사망 소식이 전해진 날 나타난 이 상반된 두 장면은 이제 시작될 카스트로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가 ‘극과 극’일 수밖에 없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피델 카스트로 영면
● 카스트로의 마지막 말 “나를 숭배하지 마라”
 
이처럼 폭풍 같은 삶을 삶았던 카스트로. 역사적 평가를 목전에 두고, 그는 무슨 말을 남겼을까요? 피를 토하듯 열정적인 연설로 대중을 사로잡았던 그였지만, 마지막 말은 우리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갑니다. “나를 숭배하지 마라.” 생의 마지막 순간, 카스트로는 자신을 기리는 유무형의 어떤 행동도, 어떤 자산도 거부했습니다.
 
카스트로의 동생이자 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인 라울 카스트로는 광장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혁명의 지도자가 어떤 형태의 숭배에도 반대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의 이름을 딴 기관이나 공원, 거리가 만들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라울은 그의 형 피델 카스트로의 유언을 따르기 위해, 쿠바 국민의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법안을 표결에 부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카스트로의 유언에 대해 한 역사학자는 이렇게 평했습니다. “그는 자신에 대한 극단적인 칭송과 극단적 비판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생전에 그는, 자신이 그토록 바랐던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선, 그만큼의 ‘희생’이 불가피했다고 확신했다. 아마 이젠 그 양극단 사이에서 지친 자신의 언어를 쉬게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에 대한 어떤 숭배도 거부한 채, 카스트로는 그렇게 표표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 산업화와 민주화가 맞섰던 ‘극단의 시대’
 
돌아보면, 우리에게 카스트로가 걸었던 길과 같은 ‘극단의 시대’가 존재했습니다. 1961년부터 1979년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통치한 18년 동안, 우리 사회는 ‘산업화’와 ‘민주화’가 공존하지 못했던 ‘극단의 시대’였습니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이 지긋지긋한 5,000년 대물림 가난을 극복해보자는 ‘산업화의 의지’와 “국가의 주인은 독재자가 아닌 국민이다.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라는 '민주화의 신념'이 치열하게 다퉜던 모순의 시간이었습니다. 산업화의 대척점에 민주화가 있었고, 박정희의 대척점엔 김영삼과 김대중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절대빈곤을 끊어보자는 산업화의 의지와 그에 맞선 인권과 민주주의의 외침이 순정했을 때,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내는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냈습니다. 박정희, 김영삼에 이어 청와대에 입성한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경제의 병행 발전’을 국정지표로 내세웠습니다.

‘민주주의 발전’과 ‘경제 발전’이 동일 선상에서 함께 이뤄가야 할 목표임을 천명한 겁니다. 많은 희생과 논란이 있었지만, 계승할 것과 청산할 것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철저히 분간했기에 가능했던 우리 역사의 발전적 선언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 “이 나라가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망할 수 있는가”
 
“저는 외환위기 사태를 당하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나라가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망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가만히 있어도 울컥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극단의 시대’를 살았던 정치인들이 역사의 부름을 받고, 그 뒤를 이어  40대 중반 뒤늦게 정치에 뛰어든 박근혜 대통령이 남긴 말입니다.
 
박 대통령이 말한 ‘이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일까요? ‘사심 없이, 소신껏, 오직 국익만을 바라보며, 불철주야 피땀 흘렸던’ 아버지를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아버지의 업적 중 가장 의미 있는 것은?’이란 질문에, ‘근면한 국민성 배양’이라고 답한 박 대통령. 어쩌면 그에게 국민은 우매해 위대한 아버지의 훈육을 받아야 하는 ‘자식’으로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연장 선에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과 ‘국정역사교과서’가 자리 잡고 있는 건 아닐까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념도 체제도 다른 쿠바. 하지만, “나를 숭배하지 마라.”라는 쿠바 지도자의 유언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이질적이지 않습니다. 계승할 것과 청산해야 할 것을 구분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숭배의 발걸음’은 분향소에 바쳐진 한 송이 국화꽃처럼 머지않아 처참하게 시들어 버릴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죽음’을 앞두고, 우리는 다시 ‘죽음의 미학’을 생각합니다.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그런 성숙한 지도자의 모습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오늘밤에도 무서리가 내리고, 국민들에겐 잠도 오지 않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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