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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박근혜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 '최순실'

‘박근혜 대통령-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지점 중 하나는 대통령의 연설문과 국가 기밀 문서들이 사인(私人)인 최순실에게 사전에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국정을 운영하는 대통령의 말과 글이 최순실에 의해 수정됐고, 고위공직자의 인사안, 국가 기밀인 외교 문서가 최순실 씨에게 전달된 것이 드러나면서 국가의 공적 시스템은 철저히 붕괴됐음이 확인됐다. ‘이게 나라냐’, ‘진짜 대통령은 최순실이냐’는 국민들의 분노가 터져 나오고 있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최순실 게이트'가 국민의 분노를 넘어, 하야 촉구까지 이어진 결정적인 계기는 대통령 연설문이 최순실씨 측에 사전에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최순실 씨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태블릿 PC'에서 대통령 신년사와 이번 정부 대북 정책의 골자가 담긴 '드레스덴 선언문' 등이 발표 하루 전, 많게는 수일 전에 전달된 것이 확인됐다.

국정을 운영하는 대통령의 생각과 말이 최순실 씨라는 개인에 의해 좌지우지 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동안 이해하기 힘들었던 대통령의 말이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넣으니 이해가 된다는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했다. 이 의혹을 기점으로 이번 게이트의 성격은 최 씨가 개인 이권을 챙기기 위해 권력을 팔고 다녔다는 것에서 '국정 농단'으로 전환됐다. 게이트의 명칭도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이 더해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다시 명명됐다.

●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 관련 도움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월 25일, 1차 대국민 담화를 가졌다. 사전에 녹화된 1분 40초 짜리 대국민 담화에서 박 대통령은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의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며 최순실 씨에게 연설문 등을 사전에 건네줬음을 인정했다. 다만, 최 씨에게 건넨 것은 연설문이나 홍보물에 국한된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이 거짓이라는 게 곧 드러났다. 대통령의 사과 직후, '태블릿 PC'에는 장관 및 청와대 수석 인사안과 국가 기밀인 외교 관련 문서 등도 저장되어 있음이 드러났다. 검찰도 지난 11월 20일, 최순실 씨 등을 기소하며 "최 씨에게 전달된 문건은 연설문에 국한되지 않고 공무상 비밀 내용을 담고 있는 문건 47건도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국가 기밀 문건을 최순실 씨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한 사람은 다름 아닌 '대통령'이라고 강조했다.

검찰 수사 결과를 통해 "연설문과 홍보물 표현과 관련해 자문을 구했다"는 대통령의 공식 해명은 궁색해졌다. 2년 전 '정윤회 비선 개입 문건 파동'과 관련해 "청와대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 행위"라고 일갈했던 대통령이 스스로 국기를 문란하게 만들었다는 국민적 비판에 직면했다.
● 검찰 공소장에 드러난 대통령의 거짓말

최 씨에게 연설문 등을 건넨 기간에 대한 대통령의 해명도 검찰 수사 결과와 달랐다. 박근혜 대통령은 1차 대국민 담화에서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물은 적도 있으나 청와대의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 두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 연설문과 국가 기밀 문건 등이 최순실 씨에게 전달된 시기는 대통령 후보 시절인 2012년부터 올해 4월까지다. 구체적으로 2012년 30건 , 2013년 138건, 2014년 2건, 2015년 4건, 2016년 6건이다. 이는 검찰 수사로 확인된 것일 뿐, 실제로는 더 많은 기밀 문건이 더 오랜 기간 전달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 장관 대면보고는 기피하던 박근혜 대통령, 최순실 씨와는 장시간 대면 회의

박근혜 대통령이 대면 보고를 꺼리는 건 익히 알려져 있다. 2015년 1월 신년 기자회견 당시 박 대통령은 대면 보고가 부족한 거 아니냐고 묻는 질문에 "대면 보고가 꼭 필요하다고 보냐"며 청와대 수석과 국무위원들에게 되묻기도 했다. 조윤선 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11개 월 동안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재직하면서 대통령에게 독대 보고를 한번도 한 적이 없다고 밝힌 바 있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가라앉고 있는 그 긴박하고 비통한 시간들 중에도 대통령은 단 한 차례도 대면 보고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에게 최순실 씨는 예외였다. 검찰이 압수한 정호선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휴대전화에는 정호성 전 비서관이 박 대통령 및 최 씨와 통화한 내역이 포함돼 있다. 여기엔 대통령과 최 씨, 정 전 비서관이 취임식과 취임사를 논의한 대화 녹음 파일도 있다. 모두 11건 5시간 분량으로, 1건이 1시간 이상 되는 것도 있다고 검찰은 밝혔다. 장관과 청와대 수석 등 참모들의 대면 보고도 꺼리는 박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가장 중요한 취임사를 최 씨와 대면해 1시간 이상 논의했다는 말이다. 국가원수로서 국민에게 전하는 첫 메시지를 최 씨라는 사인(私人)과 상의했다는 점 외에도, 정권 출범부터 비선의 입김이 작용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정호성 전 비서관은 누구의 비서인가?

박 대통령과 최 씨와의 대화에 참석해 녹음한 사람, 그리고 대통령 연설문 등을 최순실 씨에게 전달한 사람은 정호성 전 비서관이다. 정 전 비서관은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 속칭 부속실장으로 일했다. 대통령을 초선 의원 시절부터 18년 동안 곁에서 보좌한 정호성 전 비서관은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과 함께 이른바 '문고리 3인방' 중의 하나로 불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 씨에게 문건을 전달한 메신저로 왜 정호성 전 비서관을 선택한 것일까?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업무는 '대통령 일정 관리, 관저 및 일반행정 업무,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각종 문건의 접수 및 보고와 이에 따른 대통령의 지시사항, 메시지 전달 등'이다. 즉, 부속비서관은 연설물과 인사안, 국가기밀 등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모든 문서의 보고 통로가 되는 사람이다. 또, 대통령의 일정을 관리하고, 대통령의 관저 업무를 관리하는 사람으로서 물리적으로 대통령의 지근 거리에 있다. 18년 동안 자신의 곁을 보좌했고, 대통령의 사생활까지 관리하는 사람이 정호성 전 비서관이기 때문에, 박 대통령은 자신의 40년 지기인 최순실 씨에게 국가 기밀문서 등을 전달할 사람으로 정 전 비서관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 결과에서 드러난 문건 전달 방법을 보면, 정호성 전 비서관과 최순실 씨는 공동 운명체였다. 이메일 계정을 함께 쓰며, 국가 기밀 등을 공유했다. 즉, 정 전 비서관이 국가 기밀 문건을 첨부해 자신의 이메일 계정으로 보내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유하고 있는 최 씨가 로그인해 기밀 문건을 열람하는 방식이었다. 최 씨가 이런 식으로 이메일 계정에 접속한 건 237번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정 전 비서관은 최 씨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직전부터 2014년 12월까지만 900번 가까이 전화 통화를 주고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문자를 주고 받은 것은 이보다 많은 1200번에 달한다. 하루에 한 번 꼴로 전화하고, 1.5번 꼴로 문자를 주고 받은 것이다.

최 씨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는 점에서 사실상 정 전 비서관이 최 씨의 지시를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실제로 이 같은 정황은 검찰이 압수한 정 전 비서관과 최 씨와의 통화 녹음 내용에서 사실로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대통령 취임 이후 정 전 비서관과 최 씨와의 통화 내용 상당수는 유출된 문건과 관련해 최 씨가 자신의 의견을 정 전 비서관에게 전달하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장동호
디자인/개발: 임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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