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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모른다" 녹음기 김기춘…특검, "인정한다" 대답 받아낼까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과 14대 대선 직전 선거법 위반, 성완종 리스트로 크게 세 번의 위기를 겪었지만, 모두 무사히 빠져나갔다. 3번의 위기는 도리어 그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기회였다. 그런 그에게 올해 또 한번 위기가 찾아왔다. 국정농단 사건의 '배후세력'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직후 김 전 실장은 이번 사건과 무관한 듯 보였다. 김 전 실장이 비서실장에서 물러난 시점은 지난해 2월. 1년 넘게 지난 뒤 이번 사건이 불거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통령 연설문 등 청와대 기밀 유출을 비롯해 인사전횡 등 국정농단이 2012년 대선 직후부터 최근까지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가 비서실장으로 재직했던 때와 겹쳤고, 그가 직접 개입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김 전 실장은 "나는 최순실 씨를 모르고,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국회 국정조사에 출석해서도 고장난 라디오처럼 "모릅니다"라는 답만을 되풀이하며 국정농단과 무관하다고 거듭 밝혔다. 그러나 그의 주장과는 다른 증거들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최 씨의 측근인 차은택 씨가 "최순실 씨의 소개로 지난 2014년 6, 7월쯤 김기춘 당시 실장을 비서실장 공관에서 만났고, 그 자리엔 김종 전 문체부 차관,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자가 같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최 씨를 모른다던 김 전 실장의 주장과 배치되는 대목이다. 특히 당시 참석자인 차 씨와 김 전 차관 모두 국정농단의 핵심들로 혐의가 인정돼 구속기소된 상태다. 김 전 실장이 이들을 막후에서 도운 것 아니냐고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최순실 씨의 문화계 장악 작업 중 하나인 문체부 고위공무원 퇴출에도 김 전 실정이 개입됐다는 진술이 나오면서, 김 전 실장은 막후 조력자 수준을 넘어 '몸통'이라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김기춘 전 실장이 김희범 문체부 차관을 불러 (문체부) 공무원 명단을 주며 자르라고 했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에 앞서 말을 듣지 않는 공무원에 대해 '솎아내기' 작업을 벌였다는 의혹이다. 유 전 장관은 "문체부 학살로 학습효과가 생기면서 공무원들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고, (미르) 재단 등록이 하루 만에 이뤄지는 것처럼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고 증언하고 있다. 문제의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을 위한 포석을 김 전 실장이 깔아줬다는 주장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 "김기춘은 2013년 이미 최순실을 알고 있었다"

김기춘 전 실장은 국정농단과 자신을 연결 시키는 주장과 진술에 대해 '음해'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2014년 11월 정윤회 비선 실세 의혹을 상기해보면 이미 그 이전부터 최순실 씨와의 관계를 짐작해볼 수 있다.

검찰은 '정윤회 비선 개입 의혹'이 담긴 청와대 문건에 대해 지난 2014년 말 수사에 착수했다. 해당 문건은 지난 2013년 청와대에서 생산된 것으로, 최 씨의 전 남편 정윤회 씨와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해 청와대 행정관들의 국정농단 의혹이 담겨 있다. 이 외에도 '대한민국 권력 서열 1위 최순실, 2위 정윤회, 3위 박근혜'라는 구절도 명시돼 있다. 하지만 당시 사법당국은 해당 문건 내용을 허위로 결론 내리고, 이 문건의 유출만을 문제 삼아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관천 경정을 처벌했다.

최근 국정농단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2년 전 검찰의 수사가 부실 수사였다는 게 확인됐고, 김 전 실장의 역할도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 조 전 비서관에 대한 법원의 판결문을 보면, 해당 문건의 작성을 지시한 사람이 김기춘 전 실장이었던 것으로 돼 있다. 이런 유형의 동향 보고는 대통령령인 '대통령비서실 직제령'에 따라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아니라 청와대 특별감찰반에서 이뤄져야 했다.

그러나 김기춘 전 실장의 지시로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수행했다고 법원은 인정했다. 즉, 김 전 실장이 비선 개입에 대한 동향 파악에 나섰고, 문건 내용을 당연히 보고 받았다고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최순실을 몰랐다. 국정 개입을 몰랐다"던 그의 말이 설득력이 낮은 이유다.

지난 국회 청문회에서 2007년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검증 청문회 때 김기춘 전 실장이 박근혜 후보 측 법률지원단장으로 활동했는데, 당시 최태민 씨와 최순실 씨 관련 의혹이 공개적으로 제기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최순실을 모른다"는 김기춘 전 실장의 말은 더욱 신뢰를 잃었다. 이런 증거와 정황을 종합할 때 김기춘 전 실장이 비선의 국정개입을 묵인했다는 걸 넘어 최 씨를 도와 인사전횡 등 국정농단에 가담했다는 의혹이 힘을 얻고 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둘러싼 구체적 정황들이 나오고 있지만, 검찰은 김 전 실장에 대한 소환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2년 전 정윤회 비선 개입 사건을 덮은 원죄가 있는 검찰 입장에서 수사 의지를 가지고 있긴 어렵다. 김 전 실장이 검찰 수사를 피하면서 4번째 위기도 지나가는 듯 보였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박영수 특별검찰이 출범했고, 특검법에 따라 김 전 실장도 수사 대상이 되면서 그에 대한 소환 조사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장동호
디자인/개발: 임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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