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성공단 폐쇄 후폭풍 가운데 대통령의 특별지시…'최순실 회사를 도와주라'
지난 2월 10일, 정부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대응차원으로 개성공단을 전격 폐쇄했다. 사전 예고도 없이 남북관계의 최후의 보루인 개성공단 폐쇄되면서, 개성공단에서 공장을 운영 중이던 100여 개 우리 기업들은 설비와 자산이 북한에 묶이면서 도산 위기에 처했다.
개성공단 폐쇄 발표 5일 후인 2월 15일,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특별지시를 내렸다. 공단 폐쇄로 도산 위기에 처한 기업을 위한 방안 모색이 아니었다. 대통령은 자료 하나를 안종범 수석에게 건네며 현대자동차에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자료는 '플레이그라운드'라는 회사의 소개 자료였다.
'플레이그라운드'는 최순실 씨가 실소유한 광고회사로 대통령의 지시는 최 씨 회사가 현대자동차의 광고를 수주할 수 있게 압력을 행사하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안종범 전 수석은 같은 날 박 대통령이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 및 김용환 부회장과 독대를 마치고 나오자, 김용환 부회장에게 플레이그라운드 소개자료를 건네며 '현대자동차 광고를 할 수 있도록 잘 살펴봐 달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안종범 전 수석이 못 미더웠는지 기업 총수들과 독대하는 자리에서도 직접 최 씨 소유의 '플레이그라운드'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국가 경제를 얘기해도 부족할 시간에 기업 총수와 독대해 최순실 씨 회사에 대한 지원을 부탁한 셈이다. 독대 이후 '플레이그라운드'는 현대자동차 그룹으로부터 70억 원 상당의 광고를 수주했다.
● 차은택 측근을 기업 광고 담당자로…창조적으로 이권 챙기기
플레이그라운드에 광고 물량을 챙겨주기 위한 창조적인 방법도 동원됐다. 기업을 압박해 광고를 받아오는 것이 아니라, 기업 광고 책임자로 최순실 씨와 관련된 사람을 심어 자연스럽게 플레이그라운드에 광고 물량을 몰아주는 방법이었다. 이 역시 최 씨가 대통령에게 요구하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실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검찰은 밝혔다.
최 씨는 지난 2015년 1월부터 7월 사이에 차은택 씨 등으로부터 대기업에 채용될 후보로 차 씨의 지인 이동수 씨와 신혜성 씨를 추천받았다. 그러자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1월과 2015년 8월쯤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이동수 씨와 신혜성 씨가 KT에 채용될 수 있도록 KT 회장에게 연락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실제로 이 씨와 신 씨는 2015년 2월 16일과 12월에 각각 KT에 채용된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일사천리로 임원까지 채용시켰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최순실 씨는 두 사람을 KT 광고 담당자에 앉혀서 자신 소유 광고회사에 광고 물량을 가져올 목적이었는데, KT에 채용된 두 사람의 보직이 광고 관련 보직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동수 씨는 전무급인 'KT 브랜드지원센터장', 신혜성 씨는 'IMC본부 그룹브랜드지원 담당'으로 채용됐다.
그러자 박 대통령이 다시 나섰다. 2015년 10월과 2016년 2월, 박근혜 대통령은 이동수 씨와 신혜성 씨를 거론하며 안종범 수석에게 "두 사람의 보직을 KT의 광고 업무를 총괄하거나 담당하는 직책으로 변경해 주라"고 지시한 것이다. 이후 이동수 씨는 KT의 광고 업무를 총괄하는 'IMC 본부장'으로, 신혜성 씨는 'IMC 본부 상무보'로 각각 보직이 변경됐다.
박 대통령의 민원 해결은 비단 최 씨와 직접 연관된 회사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사건과 전세값 폭등, 수능 출제 오류 파문 등으로 뒤숭숭하던 2014년 11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은 안종범 전 수석에게 한 중소기업의 지원을 지시했다. "흡착제 기술을 갖고 있는 한 훌륭한 회사가 외국 기업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으니, 현대자동차에서 그 기술을 채택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는 내용이었다.
대통령 언급한 '훌륭한 회사'는 'KD 코퍼레이션'이었다. 실제로 'KD 코퍼레이션'은 뛰어난 기술력을 자랑하지만, 부당한 대우를 받는 기업이 맞았을까. 하지만, 이 기업은 최순실의 딸 정유라 씨의 초등학교 친구의 부모가 운영하는 회사로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해당 부모에게 대기업 납품 청탁을 받은 최순실 씨는 한 달 전 사업 소개서를 받아둔 상태였다. 안종범 전 수석은 대통령과 정몽구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과의 독대 자리가 끝난 뒤,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KD 코퍼레이션의 기술을 현대자동차가 채택해 줄 것을 청탁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납품 계약은 성사됐다. KD 코퍼레이션은 현대차에 10억 원 상당의 오토바이용 흡착제를 납품했고, 최 씨는 그 대가로 3차례에 걸쳐 천 만원이 넘는 샤넬백과 현금 4천만 원을 받아 챙겼다고 검찰은 밝혔다. 해당업체는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도 동행했다. 최 씨와의 친분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 것이다.
● 전방위로 이뤄진 대통령의 최 씨 챙기기…'더블루케이' 이권
박 대통령의 최 씨 지원은 여기서 그 치지 않았다. 최 씨는 '더블루케이'라는 회사도 실소유하고 있었다. 문제의 K스포츠 재단의 기금을 빼돌리기 위해 설립한 회사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곳이다. '더블루케이'의 주요 구성원은 K스포츠 재단 직원으로 등록돼 있기도 하다.
최 씨는 '더블루케이'를 이용한 수익 창출 방안을 강구했고, 그 결과 스포츠팀 매니지먼트 사업을 시작했다. 문제는 실적이나 실력도 없는 더블루케이에 매지니먼트를 맡길 스포츠팀이 없다는 것이었다. 기존 스포츠팀 대부분은 자체적으로 매지니먼트를 하고 있거나, 대행하는 업체가 있는 상황이었다. 최 씨는 또 다시 손쉬운 길을 택했다. 대통령을 통해 대기업이 스포츠팀을 창단하도록 하고, 해당 스포츠팀의 매지니먼트를 더블루케이가 맡는 방법이었다.
최순실 씨는 2014년 2월 경 '포스코에게 배드민턴팀을 창단하도록 하고 더블루케이가 그 선수단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한다'는 기획안을 마련했다. 다음 차례는 박 대통령이 나서는 것으로, 예정된 수순이었다. 박 대통령은 권오준 포스코그룹 회장과의 독대 자리에서 "포스코에서 여자 배드민턴팀을 창단해 주면 좋겠다. 더블루케이가 거기에 자문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이후 배드민턴팀 창단은 포스코와 더블루케이 간의 이견 끝에 2017년부터 펜싱팀을 창단하는 것으로 바뀌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등이 제기되면서 흐지부지됐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 1월 23일 안종범 수석에게 "GKL에서 장애인 스포츠단을 설립하는데 컨설팅 할 기업으로 더블루케이가 있다. GKL에 더블루케이를 소개해줘라. GKL의 대표이사와 더블루케이 대표이사를 서로 연결해 주라"고 꼼꼼하게 지시하며, 더블루케이 대표자의 연락처도 전달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장동호
디자인/개발: 임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