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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말(馬)에서 시작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 모든 일들은 말(馬) 이야기와 함께 세상에 그 민낯을 드러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그 게이트로 통하는 게이트(門)의 하나가 된 K스포츠재단은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승마' 지원을 위한 사금고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이화여대 입시비리 의혹은 정유라를 합격시키기 위해서 '승마'를 체육특기자 전형에 새로 추가한 것 아니냐는 세간의 의구심으로 요약된다. 삼성은 정유라가 탈 '말'을 사줬고, 전지훈련비 등의 명목으로 최순실 측에 수십억 원의 돈을 송금했다. 이런 사실이 '뇌물죄' 적용으로 이어질 것인지, 이번 게이트의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가운데 '승마'와 관련한 의혹을 연속으로 보도한다.

2013년 4월, 경북 상주에서 한국마사회컵 승마대회가 열렸다. 당시 서울 청담고 2학년이던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도 고교부 대회에 참가했다. 결과는 2위였다. 그런데 이후 당시 대회 심판위원장 등이 경북 상주경찰서의 조사를 받게 된다. 경찰은 심판들이 의도적으로 정 씨에게 점수를 낮게 준 것이 아니냐고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경찰이 심판 판정에 대해 조사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승마 마장마술 종목은 심판이 동작 하나하나를 채점하는데, 경찰은 이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다는 점에서 조사 자체를 두고 뒷말이 쏟아졌다. 결국 경찰은 심사위원 등에 대한 당시 내사를 종결했다. 당시 조사를 받은 사람들은 "대체 경찰 조사의 이유가 뭐냐, 누가 민원이라도 넣은 것이냐"라고 경찰 측에 수차례 따져 물었지만, 경찰에서 돌아온 답은 '인지 사건일 뿐'이란 것이었다.

경찰의 이례적인 조사 이후, 한 승마협회 관계자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 "경찰 조사를 받고 난 뒤부터 심판들이 정유라 씨에게 후한 점수를 몰아줬다"는 주장을 내놨다. 경찰 조사가 심판들에게 압박으로 작용했다는 주장인 셈이다. 2013년 4월 대회 때 유일하게 정 씨에게 2위의 점수를 줬던 심판은, 이후 3년 동안 아예 심판에서 배제되고 말았다는 소문도 돌았다.

● ‘살생부’를 근거로 한 승마협회 감사…‘나쁜 사람’의 탄생

2013년 4월 대회 이후 승마계 내에서 이른바 ‘살생부’가 등장했다. 승마계에서 내쳐야 하는 사람이라며 8명의 이름을 적은 괴문서였다. 그런데, 이 살생부를 작성한 사람이 바로 최순실 씨 모녀의 독일 생활을 도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이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전무는 2009년 승마협회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실형이 확정돼 그 뒤론 승마협회에선 ‘공식 직함’조차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른바 '박원오 살생부'가 돌고난 뒤, 문화체육관광부가 승마협회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감사 지시는 청와대에서 내려온 것으로 확인됐는데, 특정 단체에 대해 문체부가 표적 감사를 벌이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시 감사는 문체부 노태강 체육국장과 진재수 체육정책과장이 맡았다. 그런데, 감사 결과는 이른바 '살생부'에 명시된 인사들과 '살생부'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박원오 전 전무이사 측 인사들, 양측 모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승마협회에 대한 감사 결과가 청와대에 보고된 이후인 2013년 8월, 박근혜 대통령이 유진룡 당시 문체부 장관을 청와대 집무실로 불러 들었다. 박 대통령은 승마협회 감사를 담당했던 노태강 국장과 진재수 과장의 이름을 가리키며 '나쁜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보도됐는데, 이에 대해 유진룡 당시 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대충 정확한 정황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왜 당시 감사 결과를 두고 노 국장과 진 과장을 '나쁜 사람'이라고 불렀을까. 문체부와 승마협회 관계자들은 상주경찰서의 이례적인 조사, 최순실 씨 모녀와 가까운 박원오 전 전무의 '살생부', 그리고 문체부 감사 결과를 질책한 것으로 보이는 박 대통령의 발언은 모두 '정유라'라는 하나 키워드를 중심으로 묶여 있다고 보고 있다.

문체부에서 잘나가던 노 국장과 진 과장은 '박 대통령의 유진룡 장관 초치' 이후 문체부 외곽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올해 다시 박 대통령은 "이 사람들이 아직도 있어요?"라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이들은 아예 명예퇴직해 공직을 떠났다. 최근 국회 상임위에 출석한 조윤선 문체부 장관은 두 사람의 좌천과 명예퇴직 과정에 외압이 있었다면 "복직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는 선화예중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성악을 전공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승마를 어린 시절 시작하긴 했지만, 취미 수준이었다"고 승마 관계자들은 말한다. 그런데 정 씨에게 처음 승마를 가르친 사람이 바로 앞서 소개된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라고 승마계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정유라 씨는 중학교 3학년 때 갑자기 성악에서 승마로 진로를 바꾼다. 역시 승마선수였던 사촌언니 장시호 씨가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이 설립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공금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상태인 장 씨는 승마특기생으로 연세대에 입학했다. 승마 쪽으로 방향을 튼 이후 정 씨는 청담고에 승마특기생으로 입학했다. 정유라 씨 입학 직전인 2011년 승마를 체육특기생 종목에 포함 시킨 청담고는 정유라씨 졸업 이후인 2015년부턴 승마를 체육특기생 종목에서 제외했다. 정유라 씨를 위한 '맞춤형 특기생 전형'을 운영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 2년 전에도 또아리 틀고 있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당시 새누리당의 엄호

검찰 수사로 이어진 정유라 씨 관련 의혹은 2년 전 이미 제기된 바 있다. 2014년 4월 8일,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대정부질문을 통해 국가대표로 선발된 정유라 씨 관련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안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이라 불리는 정윤회 씨 딸의 승마 국가대표 선발에 특혜 의혹이 있다. 그리고 마사회 훈련장 마방을 사용하는 특혜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정윤회 씨와 연관돼 작성된 '살생부'가 청와대까지 전달돼 특별 감사가 이뤄지고 해당 인사들의 사퇴가 종용됐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는 "표적 감사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곧바로 반박했다. 그리고 사흘 뒤인 4월 1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선 새누리당 의원들이 안 의원을 공격하는 한편, 정유라 씨를 적극 엄호하고 나섰다. 김희정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유망한 선수를 의혹 제기로 사기를 꺾어 놓으면 장래를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고 정유라 씨 방어에 나섰다. 강은희, 김장실, 박인숙, 박윤옥, 염동열, 이에리사 당시 의원도 정유라 감싸기에 동참했다. 이후 김희정 의원과 강은희 의원이 잇따라 여성가족부장관에 임명되면서 "정 씨를 엄호한 대가"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국회 교육문회위가 열리고 3일 뒤에는 '체육계 대통령'으로 불리던 김종 문제부 2차관이 나섰다. 기자회견을 자처한 김 전 차관은 "(정유라는) 정정당당한 실력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고 밝혔다. 특정 선수와 관련해 문체부 차관이 기자회견을 연 것을 두고 부적절하다는 내부 비판이 있었지만, 김 전 차관은 기자회견을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김 전 차관은 정유라 씨의 친척인 장시호 씨가 실소유 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대한 후원금 모금 과정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상태다. 2014년 4월, 잠깐 수면 위로 떠올랐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빙산은 그렇게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장동호
디자인/개발: 임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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