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월드리포트] 일본 언론상 휩쓴 '난징대학살' 다큐의 의미

오늘은 중국 정부가 정한 난징 대학살 국가추모일입니다. 중국 정부는 오늘 오전 10시 난징시내에 사이렌을 울리며 1분간 묵념을 하는 행사를 갖습니다. 이후 중국 전역에서 각종 학술대회와 집회 등이 열립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주 일본에선 최대 민영방송사인 닛테레(NTV)의 다큐멘터리 '난징사건-병사들의 유언'이 일본의 유력 언론상 '와세다 저널리즘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앞서 지난 6월에는 일본 최고 방송상인 '방송비평간담회 갤럭시상' TV부분 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최근 일본 TV다큐멘터리 가운데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난징대학살은 중일전쟁 당시 1937년 12월13일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들이 이후 약 6주간 저지른 대량 학살사건을 말합니다. 지난해 10월 유네스코는 중국이 제출한 난징대학살 관련자료를 세계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했습니다. 같은해 12월 중국은 난징대학살 기념관을 대거 확장 개관합니다. 일본은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특히 희생자 수 30만명이 너무 과장됐다고 주장했습니다. (2014년 2월 NHK 경영위원이던 극우작가 햐쿠타 나오키는 "난징대학살 자체가 없었다"고 발언하기도 했죠.)
난징대학살 희생자 수
'난징사건-병사들의 유언'은 이즈음이던 지난해 10월 방송됐습니다. 특히 그 희생자 수를 추정해봅니다. 시작은 도쿄 전범재판 이야기였습니다. 다큐는 우선 도쿄 전범재판에서 난징대학살의 희생자가 20만명으로 규정됐으며 중국 주둔 일본군 총사령관이었던 마쓰이 이와네 등이 교수형에 처해졌다고 전합니다. 외무성도 사건 자체는 인정한다고 설명합니다. 
난징대학살 최고 전문가 오노 겐지
제작진은 이어 일본 내 난징대학살 최고 전문가인 오노 겐지 씨를 찾습니다. 오노 겐지 씨는 난징 작전에 참가했던 병사 200여 명을 일일이 만나 인터뷰하고, 진중일기 24권을 수집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이 자료들을 토대로 1996년 '난징대학살을 기록했던 황군병사들'이라는 책을 발표해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습니다. 첫 발표 당시 병사 대부분은 이미 80대 후반이었습니다. 제작진은 오노 겐지 씨의 자료들을 조사해 대규모 학살 지역들과 희생자 규모를 조사합니다. 이렇게 확인된 포로 총살 지역은 아래 세 곳입니다.
포로 총살 지역 세 곳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는 1937년 12월16일(점령 사흘 뒤) 포로 총살 상황은 CG로 보여줍니다.(아래 화면 참고) 일본군들은 막사 건물에 구멍을 내고, 기관총을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포로들을 양자강변에 끌고 와 일제 사격을 했다고 합니다. 한 병사는 일기에서 "포로 5천명을 끌고 와 사살했다. 어른들뿐 아니라 어린이도 있었다. 산처럼 쌓인 시체 위를 오르자 중국인들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총에 검을 끼고, 나도 30명 정도를 직접 찌르며 확인 사살했다."
포로 총살 상황
또 다른 진중일기와 자료 등에서 확인한 12월17일 현장 상황은 아래와 같습니다. 희생자 규모는 알 수 없습니다. 이밖에 다큐 제작진은 오사카에 거주하는 96살의 참전병사를 찾아냅니다. 그는 12월18일 이후 또 다른 장소에서도 매일 총살이 있었다고 증언합니다.(위 지도 총살 장소 세 곳)
기관총에 둘러싸인 포로들
기관총을 잡았던 한 병사는 1990년 오노 겐지 씨와의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우린 포로들을 '손님'이라고 불렀어. '오늘밤 손님들이 온다', '손님들을 처리한다'고...장교가 호루라기를 '삐-'하고 불면 일제 사격. 다다다다다다다...."
오노 겐지 인터뷰
아래는 한 병사가 갖고 있던 사진입니다. 팔을 뒤로 묶인 채 끌려가는 중국군 병사들입니다. 12월 한 겨울이지만, 맨발입니다. 이들을 연행하는 일본군은 이미 총에 칼을 끼고 있습니다. 이 중국군 병사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알았을까요?
팔을 뒤로 묶인 채 끌려가는 중국군 병사들

다큐 제작팀은 아래에 있는 또 다른 사진 한 장에도 주목합니다. 그리고, 이 사진에 찍힌 '산등성이' 모습과 거의 일치하는 장소를 찾아냅니다. 이 곳은 위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았던 제4의 장소입니다.
난징대학살 희생자들
[월드리포트] 난징대학살
제작진이 추적한 참전 부대는 전체 난징 점령부대 가운데 일부입니다. 여기에 만약 6주 동안 매일 수십, 수백 명 씩 이런 총살이 있었다면 과연 희생자 규모는 어느 정도가 될까요?

다큐는 이런 나레이션으로 끝납니다. "전쟁을 되돌아 볼 때 일본인은 자기 자신을 희생자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는 측면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역사를 딛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지금 (일본은) 이런 질문을 받고 있습니다."

다큐를 보고 중국인들은 부족하다고 말할 겁니다. 자신들의 난징대학살 자료들을 함께 검증해야 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일본 방송사로서 최선을 다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경화된 일본 사회 속에서 이런 취재와 보도에 나섰다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실제 극우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지난 10월 다큐가 갤럭시 상을 받으며 주목받자 곧바로 공격 기사를 냈습니다. '총살인지 아사인지 모를 사진을 총살 사진으로 단정했다', '포로들이 저항해 어쩔 수 없이 발포했다는 설도 있다'는 등의 내용을 보도한 겁니다.

위 다큐는 일본 사회의 두 가지 측면을 보여줍니다. 일본 안에도 역사를 직시하려는 목소리가 분명히 있다는 것, 그리고 극우 세력에게 반격당하지 않으려면 철저히 자료와 증언에 근거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이 다큐는 독도, 위안부, 문화재 등의 이슈로 일본과 역사 갈등을 빚고 있는 우리나라에게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