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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충격의 '김영한 비망록'…법적 효력 있을까?

[리포트+] 충격의 '김영한 비망록'…법적 효력 있을까?
올 여름, 박근혜 정부의 3대 민정수석이었던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5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인은 급성간암. 8개월간의 청와대 생활을 마치고 스트레스로 매일 술을 마시다가 돌연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김 전 수석의 어머니는 아들의 책장에서 비망록을 발견했습니다. 고인이 2014년 6월부터 2015년 1월까지 기록한 160쪽 분량의 비망록엔 그의 청와대 생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습니다.
김 전 수석이 남긴 비망록의 2014년 6월 14일 자엔 '야간의 주간화, 휴일의 평일화, 가정의 초토화, 라면의 상식화'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날은 김 전 수석의 청와대 첫 출근날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업무지침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게이트’ 2차 청문회장. 이 비망록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국정농단 실상을 드러낼 '열쇠'로 부상했습니다.

비망록엔 김 전 실장이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과 단체, 인사 등을 압박하도록 지시한 정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에 대한 세무조사 강행, 부산국제영화제 <다이빙벨> 상영에 대한 대처,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관련한 조처,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에 대한 검찰 기소, 대통령 풍자 전단을 살포한 팝아티스트 이하씨에 대한 처리방안 등, 굵직한 사건들에 청와대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들이 담겨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김기춘 전 실장이 '세월호 시신 인양을 포기할 것'을 지시한 기록도 있습니다.
지난 8일 국회 '최순실 게이트' 2차 청문회에서 김기춘 전 실장은 김 전 수석의 비망록에 적힌 대로 '세월호의 시신 인양을 하지 말 것'을 지시한 것이 아니냐는 김경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추궁에 "제 지시가 아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김기춘 전 실장은 비망록에 적힌 내용에 대해 "작성한 사람의 주관적인 생각이 가미된 것"이라면서 대부분 자신의 지시가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

그의 이런 답에는 일종의 노림수가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특검수사를 염두에 둔 김 전 실장이, 비망록의 증거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데 주력한 것 아니냐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비망록의 증거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려 한다는 걸까요? 비망록이 사실로 인정되면 김 전 실장을 국가권력 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하는 데 증거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관건은 이 비망록이 재판에서 ‘증거력’을 인정받느냐 아니냐에 있는 겁니다.

어떤 자료가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된다는 것은 먼저 이 자료를 강압이나 다른 의도를 갖고 쓴 것이 아니라 사실대로 작성된 것이라는 점이 당사자의 법정 진술이나 객관적 자료를 통해 입증돼야 하고(증거능력), 그 내용이 신빙성이 있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증명력).
비망록이 법정에서 증거능력과 증명력을 인정받게 될 경우, 김 전 실장이 국가권력 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하는 데 증거가 됩니다.
김영한 전 수석이 법정에 나와 비망록 작성 경위를 증언하면 그걸 보고 증거로 채택할 것인지 결정하면 되는데, 김 전 수석은 이미 숨졌기 때문에 법정 증언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경우는 당사자의 법정 증언이 없더라도 그 비망록의 상태, 내용, 주변 사람들의 증언 등을 갖고도 이 비망록이 특별히 왜곡이나 조작됐다고 볼만한 이유가 없다고 판사가 인정하면 증거로 쓰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법률 용어로는 ‘특별히 신빙성을 부여할 수 있는 상태’, 즉 ‘특신상태’라고 합니다.

김기춘 전 실장은 증언 과정에서 김 전 수석의 비망록이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신빙성을 깎아내렸는데, 그건 나중에 자신이 기소됐을 경우 비망록이 증거로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사전 포석인 셈입니다.
비망록 하나로 김 전 실장을 처벌하기는 쉽지 않지만, 추후 재판에서 비망록의 가치가 충분히 인정된다면 김 전 실장의 혐의를 가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김 전 수석의 비망록은 취임 직전부터 수석에서 물러나기 직전까지 일관 되게 공적 업무를 기록한 것인데다, 상당 부분이 사후의 객관적 사실들과 부합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어서 증거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비망록 하나만 갖고 김 전 실장을 형사처벌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검이 앞으로 비망록에 나타난 김 전 실장의 여러 혐의를 입증할 근거들을 얼마나 찾아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기획, 구성 : 김도균, 정윤교 / 디자인 : 정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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