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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비리와 피의 역사'…안가(安家)는 어떤 곳?

[리포트+] '비리와 피의 역사'…안가(安家)는 어떤 곳?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맞은 편. 이른바 '번지 없는 집'이라 불리는 집이 있습니다.

겉보기엔 200㎡(60평) 정도의 평범한 2층 양옥주택입니다.

하지만 이 집이 보이지도 않는 곳부터 경찰이 배치되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습니다. 민간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는 곳,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이곳은 내부 통로로 청와대와 이어진다는 '청와대 삼청동 별관', 청와대 '안가(安家, 안전가옥)'입니다.

안과의 벽과 유리는 모두 방탄으로 되어 있고, 시설 곳곳엔 도청방지 시설과 폐쇄회로 TV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지하층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경호원들이 대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청와대 안가 주변은 경호원들이 에워싸고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어 일반인은 그 실물을 볼 수 없습니다.

■ 이슈로 떠오른 '안가'…이곳이 시작인가

최근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단초가 된 미르 · K스포츠재단의 탄생지는 바로 안가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7월 24일과 25일 이틀에 걸쳐 이곳 삼청동 안가에서 이재용 삼성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을 비롯한 7개 그룹 총수들과 독대했습니다. 그리고 "문화·체육 관련 재단 설립을 적극 지원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기업 총수들에게서 모두 774억 원의 돈이 모였습니다.
지난해 7월 박근혜 대통령은 7개 그룹 총수들을 안가로 불러들여 미르. K스포츠재단의 설립을 위한 774억원의 돈을 모았습니다.
박 대통령이 기업 총수들을 청와대 본관이 아닌 안가로 불러들인 이유는 뭘까요?

'은밀한 만남'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청와대는 출입부터 상세한 기록이 남습니다. 보는 눈도 많죠. 하지만 안가에서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는 그들만 알 수 있습니다. 출입 기록도 남지 않고, 청와대에서 공식적인 만남을 가질 때 하는 대화 녹음도 남지 않습니다. 검찰과 이어진 특검, 국회 국정조사단이 이 안가에서 이뤄진 은밀한 일에 대해 큰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이런 모습을 두고 '안가 정치의 부활'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박정희 시대 시작된 '안가 정치'

사실 안가는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때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1960년대 말 3선 개헌 직전, 중앙정보부의 제안에 따라 안가를 만들었습니다. 박 대통령이 대를 이어 '안가 정치'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입니다.

안가 정치는 은밀합니다. 은밀한 만큼 그 역사도 어둡습니다. 권력자들의 유흥 장소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격당한 10.26의 현장도 궁정동 안가였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살 당한 10.26의 현장은 궁정동 안가로, 당시 삼청동, 효자동, 청운동 일대에 존재했던 12개 안가 중 한 곳입니다.

박 전 대통령 피살로 궁정동 안가가 흉흉해지면서 전두환 정부가 지은 것이 바로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삼청동 안가'이기도 합니다.

안가는 또 권위주의 정권의 유산으로 군·안기부·검찰 등 권력기관 관계자들이 언론에 노출되지 않고 시국 대책을 논의하는 '밀실 정치'의 장소로도 이용됐습니다. 무엇보다 역대 정권에서 줄곧 '정치 헌금'의 장소로 애용된 곳도 안가입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기금 강제 모금도 안가에서 이뤄졌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역시 경영인들로부터 비자금을 걷을 때 안가를 애용했습니다.

■ '안가 정치' 청산의 노력, 하지만….

지난 1993년 3월,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문민정부의 출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리고 '군사정권의 잔재를 청산한다'면서 삼청동 안가 한 곳을 제외한 다른 안가를 모두 철거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 / 1993년 3월 4일 : 안가라고 해서 3공화국 때부터 역대 군사정권이 애용하고 이용해왔던 장소입니다. 여기에서 밀실정치가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에서 여러 가지 불행한 일들이 생겼습니다. 이 안전가옥이라고 하는 안가를 완전히 개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땅에는 공원을 조성해서 우리 시민들이 휴일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을 우리 청와대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삼청동 안가 한 곳을 제외한 다른 안가를 모두 철거하고 공원 등의 시민공간으로 조성했습니다.

당시 철거된 안가는 궁정동, 효자동, 삼청동 일대에 모두 12동으로 약 3300㎡(1천여 평)에 이르렀습니다. 유일하게 남은 곳이 지금의 삼청동 안가입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안가를 좀처럼 찾지 않았다고 합니다.

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부터 종종 안가를 이용했습니다. 서울 가회동 자택 앞 골목이 좁아 경호에 어려움이 있었던 겁니다. 취임 후에도 이 전 대통령은 주말마다 안가에서 테니스 치는 것을 즐겼고, 정계나 언론계 관계자 등을 초청해 함께 식사를 하며 민심을 듣기도 했습니다.

검찰 수사를 통해 박 대통령이 안가에서 대기업 총수들을 만난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렇게 별다른 주목을 받지 않던 '안가'는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또 최순실 씨 자매가 평소 다닌 차움병원 진료기록부에 '안가'가 등장하기도 했죠.

사실 박근혜 정부의 '안가 정치' 부활은 이미 지난 2013년 정권 초기부터 예상됐던 것이기도 합니다. 인수위 시절부터 새누리당 의원들과 연일 오찬과 만찬 회동을 하는 장소가 바로 안가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안가의 은밀한 뒷거래' 의혹이 제기되는 모습에 우리는 정권 초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안가 정치'를 우려했던 것인지 너무나도 안타깝도록 이해하게 됩니다.

(기획·구성 : 김도균, 정윤교 / 디자인 : 정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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