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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우물 안 서비스 된 우버 차이나

[취재파일] 우물 안 서비스 된 우버 차이나
해외여행이나 출장 갔다가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 써보신 분들 있으시죠? 저는 중국에 살면서 우버를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아는 중국인 친구들도 우버가 택시보다 훨씬 편하고 싸다고 했습니다. 우버는 중국의 택시 예약 앱인 ‘디디추싱’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중국 토종 서비스인 ‘디디추싱’은 택시 예약 앱이면서 우버처럼 택시 아닌 일반 차량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합니다. 디디추싱이 중국 차량 예약 서비스 시장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했고, 2위인 우버는 10퍼센트 미만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었는데, 두 회사의 경쟁은 굉장히 치열했습니다. 양사 모두 출혈경쟁으로 1년 적자폭이 1조원을 훌쩍 넘었다 하니까요.

처음 디디추싱과 우버 양쪽을 사용해 보니, 우버가 좀 더 낫더라고요. 디디추싱보다는 우버 쪽이 차량 상태가 대체로 깨끗하고 좋았고, 요금도 더 저렴했습니다. 다만 우버는 차가 좀 늦게 오는 경향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우버를, 좀 급할 때는 디디추싱을 이용하곤 했죠.

그런데 지난 8월, 갑자기 우버의 중국 사업 부문이었던 ‘우버 차이나’와 디디추싱이 합병을 발표했습니다. 사실상 디디추싱이 우버 차이나를 인수한 거였죠. 우버는 대신 합병 기업의 지분 20퍼센트 정도를 가져갔어요. 출혈경쟁을 안 해도 되는 상황이 되어 디디추싱은 시장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우버는 지분을 확보했으니 양쪽 다 윈윈이라고들 했습니다. 합병 기업의 가치는 엄청나게 올라갔고요.

사실은 글로벌 IT 서비스 기업인 우버가, 물론 지분을 확보하긴 했지만, 중국 시장에서 발을 뺀 셈입니다. 합병 발표 며칠 전 중국 정부는 차량 예약 서비스 ‘합법화’ 방침을 발표했는데요, ‘합법화’가 좋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본격적으로 중국 정부의 관리 규제 하에 들어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버가 중국 시장에서 직접 영업하는 것을 포기하게 된 중요한 계기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합병 이후 저는 우버를 예전만큼 자주 이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경쟁이 없어졌으니 판촉활동도 줄었고 요금이 많이 올랐습니다. 예전에는 택시 요금보다 확실히 쌌는데, 더 이상 저렴하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심지어 어떤 때에는 더 많이 나오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동안 우버를 이용하지 않다가 어제, 오랜만에 써보려고 앱을 열었는데, 이전의 앱은 사용 기간이 끝났으니 새로운 앱을 다운받으라 하더라고요. 새로운 앱을 다운 받아서 열어보니, 이전하고는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우버는 ‘글로벌’한 서비스를 표방하죠. 우버가 진출한 나라라면 어디서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 다운받은 앱을 보니 더 이상 ‘글로벌’이 아니었어요. 일단 영어로 된 인터페이스가 없어졌습니다. 이제 영어는 UBER라는 상호 외에는 단 한 글자도 안 나옵니다. 앞으로는 UBER라는 영어 상호보다는 ?步(‘요우부’로 읽습니다)라는 중국 이름이 많이 쓰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물론 예전에도 주소를 입력하거나 기사와 소통할 때 중국어를 못하면 서비스를 이용하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영어 인터페이스가 있어서 지금 같지는 않았거든요.

설사 중국어를 잘 안다 해도 중국 이동전화가 없고 중국 결제수단이 없다면 이용자로 등록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해외에서 발행한 신용카드로도 결제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중국은행 발행 카드나 지푸바오 같은 중국시장에서 통용되는 결제수단으로만 결제가 가능합니다. 그러니 외국인에게는 엄청나게 장벽이 높은 서비스가 되어버렸습니다.

중국 밖에서 다운 받은 우버 앱은 중국 국내에서 쓸 수 없고, 거꾸로 우버 차이나 이용고객은 중국 밖에서 이 앱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글로벌 ‘우버’와 중국의 ‘우버’는 완벽하게 분리된 겁니다. ‘우버’라는 상호만 남았을 뿐 중국 국내시장 전용 서비스가 되어버린 거죠.

디디추싱 측은 디디추싱과 우버 등록 차주를 통합하면서 더 많은 차량을 보유하게 되어 소비자들이 더 빠르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홍보하고 있는데, 외국인한테는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디디추싱 측은 영어 인터페이스나 해외 신용카드 사용 문제가 제기되자 개선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는 했습니다만, 구체적인 일정은 제시하지 않아서 과연 언제 된다는 건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우버’는 중국 시장에서 직접 경쟁에 뛰어들었던 몇 안 되는 글로벌 IT 서비스 기업이었지만, 결국 이렇게 되었네요. 저는 외국인이지만 비교적 장기 거주자라 중국 결제수단과 중국 이동전화가 있으니 여전히 우버를 사용할 수 있기는 합니다만, 예전처럼 자주 이용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디디추싱과 우버가 같은 회사가 되어버린 이상 특별히 우버를 선호할 이유가 없어진 거죠.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중국에선 페이스북과 유튜브, 구글, 트위터 같은 글로벌 IT 서비스를 차단하고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대신 그에 상응하는 수많은 중국 서비스를 이용합니다. 검색은 바이두, SNS로는 웨이보, 메신저와 페이스북을 합쳐놓은 듯한 웨이신, 그리고 유튜브를 대체하는 수많은 동영상 서비스가 있죠. 중국 밖에서도 중국의 IT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으니 뭔가 불균형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우버 차이나
예를 들면, 메신저 앱인 웨이신(위챗)은 한국에서도 점점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더라고요. 중국에 친구가 있거나 중국인과 연락해야 하는 경우 웨이신이 단연 편리하거든요. 하지만 카카오톡이나 라인은 중국 내에서 사용하기 힘듭니다.

외국인들에게 악명 높은 중국의 인터넷 통제 시스템은 ‘만리 방화벽(Great firewall)’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중국 내 외국인들은 대개 중국 밖에서 접속하는 것처럼 만들어주는 사설 VPN을 이용해 만리 방화벽을 뚫고 페이스북이나 구글 등을 사용하지만, VPN조차도 중국 정부의 통제가 심해지면 무용지물입니다. 그러니 중국에서 인터넷 이용하다 보면 답답해질 때가 많습니다. 최근 뉴스를 보니 러시아도 중국의 만리 방화벽 시스템을 도입해서 자국 인터넷 통제를 강화할 예정이라 하네요.

중국은 만리 방화벽을 세워놓고 벽 안쪽에 자기들만의 인터넷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 같지만, 그 우물이 워낙 거대해서 바다처럼 느껴집니다. 우물 바깥을 보지 못한 사람들한테는 이게 온 세상인 거고요. 우버 차이나의 변화도 약간 결은 다르지만 저에게는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다가왔습니다. 바뀐 우버 앱을 열어보고,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중국이 어떤 곳인지 다시한번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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