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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맹자도 울고 갈 박근혜와 최순실

[취재파일] 맹자도 울고 갈 박근혜와 최순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지금까지 모두 3차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지지율 4% 짜리 지도자의 형식적인 사과는 오히려 역효과를 냈습니다. 상처받은 국민의 마음을 진정시키기는커녕 사과를 할 때마다 ‘촛불 민심’이 더 활활 타올랐기 때문입니다.인간의 의사 표현 수단은 언어입니다.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사과문은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사과문이 한마디로 상상 이상의 ‘둔사’(遁辭)였기 때문입니다.

중국 제자백가 가운데 말을 가장 잘했던 사람으로 맹자, 반대로 가장 눌변(訥辯)이었던 인물로는 한비자를 꼽습니다. 논리정연하기로 유명했던 맹자에게 그의 제자인 공손추가 “말을 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합니다. 맹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편파적인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그가 무언가 감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무 과장된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그가 무언가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악한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그가 정도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러대고 회피하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그가 궁지에 몰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정치를 해치게 되고, 그런 정치가 계속되면 일 전체를 망치게 된다. 비록 성인이 다시 태어난다 해도 내 말이 옳다고 할 것이다.”

"(言+皮)辭 知其所蔽, 淫辭 知其所陷, 邪辭 知其所離, 遁辭 知其所窮.
生於其心, 害於其政, 發於其政, 害於其事, 聖人復起, 必從吾言矣."

맹자에 따르면 ‘둔사’(遁辭)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둘러대는 말입니다. 맹자는 어떤 사람이 ‘둔사’를 하는 이유는 그가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사과문을 보면 맹자가 언급한 ‘둔사’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대국민 담화에 의하면 박 대통령의 잘못은 오직 주변 관리를 못한 것뿐입니다. 자신이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최순실 씨에 대한 경계심을 늦춘 게 특정 개인이 이권을 탐하고 위법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박 대통령의 주장이 맞는다면 스스로 임기 단축 문제를 국회에 맡길 필요가 없습니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주변 관리를 못한 대통령이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은 크든 작든 측근 관리에 모두 실패한 지도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이들에 대해서 주변 관리를 잘못했다는 이유로 탄핵이나 하야를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박 대통령은 스스로 조기 퇴진할 뜻을 밝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의 3차례 사과문은 사실 관계를 호도하는 것은 물론 논리 전개에서도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씨에게 도움을 받았다고만 했지, 자신이 최순실 씨에게 어떤 도움을 줬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입에 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밤잠을 이루기 힘들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나는 자괴감이 든다”는 최루성 언어로 과거 자신에게 표를 던졌던 지지층을 향해 구차하게 동정을 구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사실이라면 대한민국 검찰은 무엄하게도(?) 구체적 범죄 혐의가 없는 국가원수를 피의자로 만든 셈이 됩니다. 쉽게 말해 대통령을 ‘무고’(誣告)한 것입니다. 박 대통령 측은 검찰의 수사 결과에 대해 ‘소설’이라고 일축했습니다. 검찰의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검찰 수사에 끝내 불응했습니다. 검찰의 수사 결과가 ‘사상누각’ 또는 ‘소설’이라면 왜 검찰의 수장인 검찰총장과 해당 수사검사들을 해임하거나 어떤 처벌을 내리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문을 3번이나 발표하면서도 청와대 기자들의 질문은 단 1개도 받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지금까지도 온갖 의혹에 대해 실체적 사실을 소상히 해명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 대신 대통령의 담화라고 하기에는 믿기 힘들 만큼 함량미달의 어휘 선택, 앞뒤도 안 맞는 문장 구성과 논리 전개로 국민들의 분노와 원성만 더 부채질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과 사를 구별 못한 대통령을 농락한 최순실 씨도 맹자가 울고 갈 만큼의 국정농단을 범했습니다. ‘농단’이란 말은 원래 <맹자>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맹자>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옛날 시장에서는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가지고 와서 자기에게 없는 물건으로 바꾸었다. 시장을 다스리는 관리는 세금을 걷지 않고 관리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한 천한 남자가 반드시 농단에 올라가 시장 좌우를 살핀 뒤에 이익을 싹쓸이했다. 사람들이 모두 그를 천하게 여겨 그에게 세금을 징수했다. 상인에게 세금을 징수를 하는 것이 바로 이 천한 남자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古之爲市也,以其所有易其所無者,有司者治之.
有賤丈夫焉,必求龍斷而登之,以左右望而罔市利.
人皆以爲賤,故從而征之. 征商,自此賤丈夫始矣."

<맹자> 원문에는 ‘용단’(龍斷)으로 돼 있는데 ‘농단’(壟斷)과 같습니다. ‘농단’은 원래 깎아지른 듯이 높은 언덕을 뜻합니다. 옛날의 어떤 천한 남자가 혼자 이렇게 높은 언덕에 올라가 시장 상황을 살핀 뒤에 폭리를 취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농단’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온갖 짓을 저지르다’는 의미로 바뀌었습니다. 최순실 씨의 범죄는 맹자가 생각했던 ‘농단’이란 단어가 오히려 부족할 정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천4백 년 전에 살았던 맹자가 지금의 사태를 직접 봤으면 어떤 촌철살인의 어휘를 구사했을 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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