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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최순실은 대역"…누가 루머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어뜨렸나?

[취재파일] "최순실은 대역"…누가 루머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어뜨렸나?
이번 주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검색어 중 하나는 ‘최순실 대역’이었습니다. 10월 31일 처음 검찰에 나올 때 찍힌 사진 속 최순실 씨의 모습과 그 이후 찍힌 사진들 속 최 씨의 모습이 너무 달라 보인다며, 누리꾼들 사이에 “최순실이 검찰 조사 중 대역으로 바꿔치기 됐다”는 음모론이 빠르게 퍼져나간 겁니다. 급기야는 검찰이 지문검사를 해서 현재 구치소에 있는 인물이 최 씨 본인임을 확인했다는 발표까지 했을 정도였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앞서 최 씨가 체포된 뒤 식사로 곰탕을 먹었다는 검찰의 브리핑 내용이 알려지자 인터넷에선 ‘곰탕’이 외부에 보내는 비밀 암호라는 황당한 얘기도 나왔습니다. 미르재단 압수수색 때는 검찰이 빈 상자들을 가지고 나왔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실제 일부 상자는 안에 뭐가 들었는지 무척 가벼워 보이기는 하더군요.

이런 누리꾼들의 속내는 한마디로 검찰을 못 믿겠다는 겁니다. 떠밀리듯 수사에 착수한 뒤 검찰은 내내 ‘뒷북수사’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최순실 씨에 대한 늑장소환도 구속영장에 기재한 부실한 혐의들도 뒤늦은 압수수색과 선별적인 계좌추적도 다 이유가 있었다고 말하지만, 검찰의 그런 해명보다는 인터넷에 떠다니는 소문이 ‘더 그럴 듯하다’고 많은 이들이 믿고 있습니다.

의심을 받는 게 검찰뿐이겠습니까? 이번 게이트에 연루된 청와대와 정부부처 관계자들의 해명은 이제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쉽게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모르는 일’이라며 딱 잡아떼던 이들의 말 바꾸기에 질린 결과일 겁니다. 

도피중인 최순실 씨를 만나 취재한 언론은 “독일에서 인터뷰를 했다”고 밝혔지만, 인터넷에선 사진 속 콘센트의 위치를 근거로 인터뷰 장소가 덴마크라는 설이 퍼졌습니다. 최순실 씨의 해외도피 과정이나 의혹 핵심인물들의 순차적인 귀국과 입장 변화의 이면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을 거란 설은 의혹을 넘어 ‘으레 그럴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음모론인지 쉽게 말하기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그럴 듯해 보이는 풍문이라 할지라도 ‘일을 꾸몄다고 알려진 이(들)에게 충분한 동기(이익-위험)가 있는가?’라는 의심을 해보며 음모론을 잘 믿지 않는 저도 때론 혼란스러울 정도입니다.

최근 우리사회 구성원들은 “설마...” 했던 일이 하나둘 사실로 드러나는 걸 목도해왔습니다. 권력형 비리가 처음은 아니지만, 그 중심인물들을 묘사하는 데 유흥업소니 사이비 교주니 하는 선정적인 단어들이 동원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을 겁니다. 대통령이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이라던, 대통령 비서실장이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던 의혹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사실로 드러났으니 시민들이 혼란스러운 건 당연합니다.

어쩌면 음모론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사실과 구분하기 어려운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음모론의 시대> 저자인 서강대 전상진 교수(사회학과)는 떠돌아다니는 풍문을 쉽게 음모론으로 낙인찍는 행위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공권력에 의한 조작이 반복돼온 우리 근현대사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음모론이라는 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통치를 위한 음모론, 그리고 저항을 위한 음모론. 통치를 위한 음모론은 음모론이라고 불리지 않아요. 반대로 저항의 음모론은 음모론이라고 불리죠. 왜냐하면 음모론 낙인을 찍을 수 있는 (권력을 쥔) 사람들의 심기를 거스르기 때문에. 그런데 정권이 바뀌거나 세상이 변하면 저항의 음모론 중 일부는 현실이 되고, 기존 통치의 음모론을 쓰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조작으로 드러나기도 하죠. 때문에 음모론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내적인 특성에 의해서 규정되기보다는 누가 권력을 쥐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론 ‘그건 너무하다’ 싶은 터무니없는 음모론도 많은 게 사실입니다. 그런 이야기에 부화뇌동하는 이들은 ‘이상한 사람’ 쯤으로 취급받기 쉽습니다. 그러나 정 교수는 그런 경우에조차 개인에게 탓을 돌리기에 앞서 사회적 원인을 찾아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명령에 따르기만을 요구하는 권위주의 정부는 불신과 소외와 무기력과 냉소를 키우는 가장 중요한 요인입니다. 그리고 이 네 가지가 음모와 음모론을 키우는 가장 비옥한 토양이 될 겁니다.”

음모와 음모론, 루머와 현실이 뒤엉켜버린 요즘, 그 경계의 둑을 허물어뜨린 건 누구일까요? 누군가는 이번 비리의 주동자들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검찰, 나아가 공권력도 공범이라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행정부와 국회, 언론이 다 포함됐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우리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격언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어디까지가 합리적인 의심이고 어디부터가 음모론인지 선을 긋는 게 어려운 것처럼 현재 우리사회가 겪고 있는 불신과 혼란의 책임이 누구에게 얼마만큼 있는지 잘라 말하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다만 분명한 건 불신을 받고 있는 권력자 혹은 권력기관이라면 “터무니없는 얘기를 믿는다.”며 음모론자들을 탓하기 전에 불신을 자초한 자신의 과오부터 되돌아봐야 한다는 겁니다. 미국의 석학 노암 촘스키는 음모론이 횡행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음모가 많기 때문"이라고 답했는데, 여기서 '음모'는 '거짓'으로 바꿔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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