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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울 핏자국으로 사건현장 '쉽고 빨리' 재구성한다

강력사건 현장의 핏자국으로 사건 당시 현장을 쉽고 빠르게 재구성할 수 있는 과학수사 기법이 개발됐습니다. 특히 비과학수사 요원도 단 몇 분 만에, 별도의 특수 장비 없이 피가 어디서 어떻게 튀었는지 파악할 수 있을 만큼 편리해 수사 편의성이 한층 높아질 전망입니다.

기대를 모으는 이 방법은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김영삼 검시관이 개발한 '혈흔 형태분석 기법'. 

외력이 신체에 가해졌을 때 뿜어져 나와 벽이나 바닥에 튀어 형성된 '비산 혈흔'은 한 방울의 핏자국으로도 사건 당시를 보여주는 단서가 됩니다.

피가 뿜어져 나온 각도와 높이 등에 따라 원형, 타원형 등 모양과 크기가 달라져 이를 분석하면 현장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범행이 이뤄졌는지 재구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기법을 활용하는 데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이름만으로도 많은 이의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삼각함수입니다.

핏자국의 길이와 폭을 측정해 가상의 직각삼각형을 만든 뒤 삼각함수표를 통해 역삼각함수 값을 구해 피가 날아온 각도, 높이 등을 구할 수 있습니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수학 원리에 형사들은 통상 직접 분석을 꺼립니다.

과학수사 요원들도 별도의 공학용 계산기를 들고 다니며 머릿속에 직각삼각형을 그렸다 지웠다 하며 골머리를 썩여야 해 활용도가 낮았습니다.

김 검시관은 현장을 다니며 이런 상황이 안타까웠습니다.

"특히 직접 수사를 담당하는 형사들이 현장에서 직접 혈흔 분석을 할 수 있다면 머릿속에 현장이 재구성되면서 수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때문에 김 검시관은 근무 외 시간이 날 때마다 혈흔 형태분석 관련 논문과 피타고라스 정리 등 도형 원리를 다룬 수학책을 사 탐독했다고 했습니다.

그런 결과 지난달 쉽고 편리한 혈흔분석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새로운 분석 원리는 혈흔을 직각삼각형으로 만들고, 삼각함수 기법으로 혈흔이 날아온 각도와 높이를 구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데 중점을 뒀습니다.

이 기법을 이용하면 현장에서 할 일은 혈흔의 길이와 폭을 재는 것뿐입니다.

측정한 값을 대입하면 복잡한 삼각함수를 이해할 필요 없이 피가 튄 각도를 파악할 수 있고, 사칙연산만 할 수 있으면 몇 차례 계산만으로 높이도 파악이 가능해 사건의 3차원 재연이 가능합니다.

김 검시관은 "시신이 유기돼 현장과 시신이 분리된 살인사건에서 피의자의 진술이 거짓인지 파악하는데 유용하고, 특히 과학수사 인력이 부족한 지역에서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검시관은 기법의 원리를 현장에서 바로 들고 다니며 사용할 수 있도록 최종본 완성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업무 속에서도 틈만 나면 새로운 과학 수사기법을 연구하는 김 검시관은 이전에도 기발한 수사 기법을 소개해 과학수사계의 '발명왕'으로 통합니다.

지난 7월 모기혈흔을 닦은 면봉으로 남성의 유전자를 확인하는 수사 기법을 담은 논문을 낸 김 검시관은 2014년 동물 뼈와 사람 뼈를 구분하는 도감을 만들었고, 최근에는 사람의 뼈 일부의 길이를 측정하면 실제 키를 가늠할 수 있는 틀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김 검시관은 현재 서울대 수의대와 함께 동물 뼈의 특성을 연구하며 외관만으로도 구분하는 수사기법을 개발,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사건 현장에서 뼈가 발견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작업이 사람과 동물의 뼈를 구분하는 일인데, 국과수에 유전자 감식을 의뢰하면 1주일 이상 걸려 수사가 더뎌지기 때문입니다.

김 검시관은 "사건 현장을 다니며 검시관 업무를 하느라 가끔 새로운 수사기법 연구가 힘겹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수사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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