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송민순 "1차 핵실험 때 한국 독자핵무장·무력행사 테이블에 있었다"

2006년 북한의 제1차 핵실험을 앞두고 한국 정부가 이른바 '포괄적 북핵 해법'을 준비하면서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독자적인 핵무장이나 대북 무력행사에 나서는 방안까지 구상했던 정황이 당시 외교라인 핵심 인사의 저서를 통해 소개됐습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외교통상부 장관 등을 지낸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최근 발간한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에서 2006년 10월 9일 이뤄진 북한의 제1차 핵실험 전후 긴박했던 외교 협상의 '막전막후'를 소개했습니다.

2006년 10월 3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핵실험을 예고하는 성명을 발표한 지 사흘 뒤인 10월 6일 미국이 안보리 제재 결의안 초안을 회람하자 당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 정책실장이었던 저자는 한국 정부 입장을 작성해 미국에 전달했습니다.

송 총장은 이 책에서 "미국이 회람중인 결의안 내용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한미 정상이 (2006년 9월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한미 공동의 광범위한 접근 방안을 북한에 제시하자. 이 제안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강력한 제재에 들어갈 수 있다. 또 한국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무효화시킬 수 밖에 없다"는 정부 입장을 미측에 통보했다고 소개했습니다.

1991년 12월 31일 남북간에 채택한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은 핵무기의 시험·생산·접수·보유·저장·대비·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무효화하겠다는 말은 한국도 북한 핵실험에 대응해 독자 핵개발에 나서거나 미국의 전술 핵무기를 재배치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저자는 또 "그와 동시에 나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면 한미 공동으로 군사력을 포함한 물리적 행동을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 가능성을 짚어봤다"고 소개했습니다.

중동에 묶여있는 미국이 군사력을 사용할 정치적 의지가 있는지, 중국의 반발을 감안할 때 한미가 일방적으로 대북 군사행동을 취할 조건이 되는지, 한국민들이 군사충돌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지 등을 검토했었다고 저자는 밝혔습니다.

송 전 장관은 또 2007년 9월 이스라엘 공군이 '북한의 도움을 받아 건설한 핵시설'이라는 판단 아래 시리아 북부 사막의 지하시설을 폭격하기에 앞서 조지 W.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제안했던 3가지 방안 중 '선(先) 외교-후(後) 군사행동 검토'가 2006년 9월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가 틀을 마련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에 가장 가깝다고 소개했습니다.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에 대한 반발로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나온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은 북한이 원하는 안전보장상의 요구와 북미관계 정상화, 금융제재 해제, 에너지 지원 등과 비핵화를 맞바꾸는 '빅딜'을 시도하되,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강력한 대북 압박에 나선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송 전 장관은 "당시 나는 중국도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인 범위에서 북한의 요구를 충족시켜주고, 그래도 북한이 핵폐기를 거부할 때는 불가피한 물리적 행동의 명분을 축적할 수 있다고 봤다"고 적었습니다.

또 북한이 기어이 2006년 10월 9일 핵실험을 단행한지 열흘후인 2006년 10월 19일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방한해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만났을 때 북핵과 관련한 '우선순위'를 놓고 두 사람이 충돌했던 상황도 저서에 소개됐습니다.

책에 의하면 라이스는 노 대통령에게 "미국이 한국을 방어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북한이 누군가를 향해 먼저 핵무기를 발사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그보다는 제3국이나 테러 조직으로 핵을 이전할 가능성을 우려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표정이 심각해지기 시작하더니 곧바로 북한의 핵폐기 자체보다는 핵 이전을 방지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문제임을 지적했다고 저자는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한국이 단호하지 못해서 또는 대북 제재가 충분치 못해서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고 보지는 않는다"며 "이제 (미국은) 한국의 의견에도 더 귀를 기울여주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송 전 장관은 미국발 대북 금융제재의 '성공사례'로 평가되는 방코 델타 아시아(BDA) 사례에 대해 "미국의 네오콘(신 보수주의자 그룹)과 재무부 및 법무부의 관료들이 대북 금융 제재의 효과를 과대평가해 BDA 문제 해결이 필요 이상으로 지연된 측면도 있다"며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9·19 공동선언(2005년 6자회담 비핵화 합의서) 이행이 무려 21개월 동안이나 지체됨으로써 북한의 핵폐기를 진전시킬 동력이 떨어졌다"며 "나를 포함한 한국 정부에서는 북한에 금융제재를 가할수록 북한이 더 폐쇄적으로 되고, 핵무기 개발에 집착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적었습니다.

BDA 사례는 미국 정부가 2005년 북한 수뇌부의 비자금 창구로 알려진 마카오 소재 은행 BDA를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하고, 미국 은행과 BDA간 거래를 금지한 일을 말합니다.

송 전 장관은 저서의 에필로그에서 과거 실패한 북핵 프로세스가 주는 교훈이라며 "북한은 체제와 정권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한 핵무기 옵션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미국과 중국 모두 독자적으로나 합작으로나 북핵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만약 미국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북한의 핵무기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지난 사반세기의 적절한 시점에서 북한과 중국에 분명하게 통보하고 실천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우선 북한 핵활동 중지와 장거리 로켓 발사 유예 등을 목표로 북핵 6자회담을 재개하고, 북한의 핵폐기와 북미관계 정상화 및 대북 경제지원 등 9·19 공동성명의 골격을 이행하면서 핵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