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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단독] 늘품체조에 차은택 개입, 문체부 거짓말했다

[취재파일][단독] 늘품체조에 차은택 개입, 문체부 거짓말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둘러싼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에 이어 이번에는 ‘문화계 황태자’로 불리는 차은택 씨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지난 10월 4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소위 ‘청와대 비선 실세’로 불리는 CF 감독 차은택 씨가 <늘품체조> 선정에 개입됐다는 의혹이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으로부터 제기됐습니다.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스포츠개발원이 정성을 들여 개발한 <코리아체조>를 제치고 <늘품체조>가 사실상 국민체조 반열에 오르게 된 배경과 의문점을 저는 2015년 1월13일 취재파일 ‘납득되지 않는 국민건강 체조 선정’을 통해 국내 언론사 가운데 가장 먼저 보도했습니다. 이후 <늘품체조>와 관련된 의혹과 논란은 지금까지 국회와 언론에서 줄기차게 이어져 왔습니다.

관련 취재파일

<코리아체조>를 만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취재를 한 결과 저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시범 공연단의 한 사람인 A씨는 한 달 만에 급조된 <늘품체조>가 1년간 공을 들여 완성한 <코리아체조>를 밀어내자 개인 블로그를 통해 “권력과 대한민국 사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며 억울한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코리아체조> 관계자 가운데 한 명인 B씨는 당시 저에게 “늘품체조 뒤에는 유명 CF 감독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그 때 저는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국민건강 체조와 CF 감독과의 연관성을 언뜻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차은택 감독이 <늘품체조> 동영상을 제작했고, 그의 스승이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고, 그의 외삼촌이 김상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고, 그가 <늘품체조>를 만든 유명 피트니스 강사 정 모 씨와 친분이 있다는 점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2014년 11월 26일 ‘문화가 있는 날’ 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해 직접 따라 한 <늘품체조>의 개발을 문체부가 차은택 감독과 유명 피트니스 강사인 정 모 씨에게 먼저 의뢰했는지, 아니면 차은택 감독과 정 모 씨가 먼저 문체부에게 <늘품체조>를 제안했는지 여부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이 사건의 진상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당시 문체부 체육국장이자 현 예술정책관인 우상일 씨입니다. 그가 <코리아체조>는 물론 <늘품체조> 개발의 핵심 책임자이기 때문입니다. 2015년 1월 우상일 체육국장은 SBS와의 전화 통화에서 분명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권력 실세가 개입됐다는 것은 완전히 소설이다. 스포츠개발원이 만든 <코리아체조>가 어느 정도 완성됐을 때 중간 점검을 해보니 ‘Fun' 즉 재미가 없었다. 스트레칭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국군도수체조처럼 너무 딱딱하다. 아무리 운동 효과가 있으면 무엇 하나? 체조는 온 국민이 즐겁게 따라해야 한다. 그래서 또 다른 체조를 급히 만든 것이다. <늘품체조>는 에어로빅이 가미돼 빠르고 경쾌하다.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둘 중의 하나를 시연해야 하는데 TV 뉴스를 생각할 때 아무래도 흥겨운 <늘품체조>를 선택한 것이다. 앞으로 <코리아체조>는 학교를 통해, <늘품체조>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각각 보급할 것이다.”    

이로부터 약 석 달 뒤인 2015년 4월 9일 KBS는 문체부 문건을 입수해 관련 의혹을 보도했는데 이 문건에 따르면 피트니스 강사 정 모 씨가 2014년 10월 20일에 문체부 체육진흥과장에게 먼저 <늘품체조>를 제의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김종덕 문체부 장관도 바로 다음 날인 2015년 4월 10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출석해 분명히 "정 모 씨가 문체부에 먼저 제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코리아체조>가 재미 없어 문체부가 먼저 정 모 씨에게 요청해 <늘품체조>를 만들었다는 우상일 체육국장의 말과 배치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김종덕 장관 아니면 우상일 체육국장, 두 명 가운데 1명은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저는 사실 여부를 가리기 위해 최근 우상일 체육국장에게 어떤 것이 진실인지를 물었지만 그는 지금까지 그 어떤 답변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피트니스 강사 정 모 씨는 2015년 1월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문체부가 먼저 요청해서 <늘품체조>를 시연한 것뿐”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만약 김종덕 장관의 해명이 맞는다고 하면 의문은 더욱 증폭됩니다. 재미 없는 <코리아체조> 때문에 문체부 체육국장이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1명의 피트니스 강사가 어떻게 알고 때마침 체육진흥과장에게 전화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타이밍이 절묘해도 이렇게 절묘하기는 무척 힘들기 때문입니다.

또 문체부가 정 모 씨 1명으로부터 제의를 받은 지 겨우 10일만에 <늘품체조>가 사실상 '국민체조'가 됐고 대통령이 직접 따라하는 체조가 됐는지도 불가사의합니다. 초고속도 이런 초고속은 유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문체부가 ‘문화계 황태자’로 불리는 차은택 씨의 힘이 두려워 <코리아체조>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늘품체조>를 선택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안민석의원은 지난 4일 국정감사에서 "차은택 씨가 <늘품체조>를 김종 문체부 제2차관에게 소개한 것 아니냐?"고 질의했고 이에 대해 조영호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은 "틀린 얘기는 아니다"며 시인했다가 몇 시간 뒤에 번복하기도 했습니다. 조영호 사무총장과 김종 제2차관은 한양대 선후배 사이이고, 한양대 체육대학에서 나란히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분명한 점은 <늘품체조> 개발 과정을 둘러싸고 문체부장관과 직속 부하인 체육국장의 사후 해명이 서로 달랐다는 것입니다. 또 수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국민 혈세를 낭비한 것도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 국민 중에 일상생활에서 <코리아체조>와 <늘품체조>를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결국 박 대통령에게 한 번 보여주기 위해 그 많은 비용을 들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가장 몹쓸 짓은 문체부가 <늘품체조>의 수정과 보완을 <코리아체조>를 만든 <한국스포츠개발원> 담당자에게 지시한 점입니다. 1년간 고생해 만든 <코리아체조>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 것도 억울한 상황에서 문체부가 급조된 <늘품체조>의 문제점 수정까지 요구한 것은 ‘병 주고 약 주고’를 넘어 <코리아체조> 담당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권력의 횡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늘품체조> 사태에서 ‘스포츠 대통령’으로 평가되는 김종 문체부 제2차관과 우상일 당시 체육국장(현 예술정책관)은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늘품체조> 시연 행사에는 12일동안 4번이나 참석할만큼 열성을 보인 김종 차관은 거의 2년 동안 <늘품체조> 의혹과 관련해 납득할만한 해명은 전혀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5천만 명의 국민보다 1명의 CF감독을 더 무서워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각종 의혹이 제기될때마다 문체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내놓는 '우연의 일치' 타령은 이제 군색한 변명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보유한 채 대한민국에서 ‘슈퍼 갑’으로 건재하기만 합니다. 승마 선수인 최순실 씨 딸 사건을 사실대로 보고했다가 대통령에 의해 ‘나쁜 사람’으로 찍혀 좌천 끝에 지난 6월 문체부를 떠난 노태강 전 체육국장과 매우 대비되는 대목입니다. 이를 두고 현 정부의 공직기강과 ‘신상필벌’ 원칙이 실종된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들리고 있습니다.   

2012년 12월 제18대 대통령선거를 눈앞에 두고 한 유명 대학교수는 “박근혜 후보가 집권하면 우리는 MB(이명박 전 대통령)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고 단언했습니다. 4년 전에는 당파적으로 보였던 이 예측에 공감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간다면 국민과 현 대통령 모두에게 불행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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