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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 뉴스브리핑] '여군 1만시대' 전투병과 첫 여성장군 송명순…"여군 더욱 충원되어야"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SBS <3시 뉴스브리핑>'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SBS에 있습니다.

■ 방송 : SBS <3시 뉴스브리핑> 월~금 (15:00~16:30)
■ 진행 : 주영진 앵커
■ 대담 : 송명순 예비역 준장

"여성장군 되던 날, 가족들에게 고맙다는 차원에서 큰절"
"군을 떠나 있어도 아직 마음은 군에 있어"
"할 수 있다는 신뢰와 기대로 입대…군에 온 후에야 국가관-인생관 정립"
"적정비율의 여군 충원돼야…군은 남성만 필요한 조직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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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영진/앵커: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나라 전투병과 첫 여성 장군이십니다. 송명순 전 준장 모시고 이야기를 난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준장님 어서 오십시오.
 
▶ 송명순/예비역 준장: 안녕하십니까.
 
▷ 주영진/앵커: 준장이면 장군님이라고 제가 불러드려야 되는데 지금은 예편을 하신 거죠?
 
▶ 송명순/예비역 준장: 네. 예편을 했습니다.
 
▷ 주영진/앵커: 언제 전역하셨습니까?

▶ 송명순/예비역 준장: 2012년에 했습니다.
 
▷ 주영진/앵커: 그러면 장군으로 진급하신 게?
 
▶ 송명순/예비역 준장: 2010년입니다.
 
▷ 주영진/앵커: 6년 전 일이네요.
 
▶ 송명순/예비역 준장: 네.
 
▷ 주영진/앵커: 6년 전에 우리나라 전투병과에 첫 여성 장군이 되셨다.
 
▶ 송명순/예비역 준장: 네.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그런데 2년 만에 옷을 벗게 되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요?
 
▶ 송명순/예비역 준장: 저희가 지금까지도 임기제라는 진급 제도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직위에 진급이 되면 2년간 복무를 하고 전역을 하는 제도입니다.
 
▷ 주영진/앵커: 진급을 하면서 이렇게 조건을 다는 겁니까?
 
▶ 송명순/예비역 준장: 네.
 
▷ 주영진/앵커: 2년만 해라 그리고 2년 뒤에는 옷을 벗어야 한다?
 
▶ 송명순/예비역 준장: 네. 아직은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여군에게만 적용되는 규정입니까? 아니면 우리 군 대부분?
 
▶ 송명순/예비역 준장: 남군들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특수직위라든지 또는 전문가 활용이라는 차원에서 남군들에게도 적용을 하는데 남군들 같은 경우는 사실 큰 의미가 없죠. 임기제 진급이라는 것이.
 
▷ 주영진/앵커: 우리 장군님께서 우리나라 최초의 전투병과 여성 장군이셨다고 제가 소개를 해드렸는데 그렇다면 그 전에는 아예 여성 장군이 없었던 건 아니죠? 그 전에.
 
▶ 송명순/예비역 준장: 네. 2001년에 간호병과에서 처음으로 여성 장군이 탄생을 했고 일반 병과는 2010년에 제가 처음이었습니다.
 
▷ 주영진/앵커: 상당히 전투병과에 여성 장군이 나오기가 어려웠다, 이런 생각이 드네요. 저도 간호병과에서 장군님 나오셨다는 얘기는 저도 뉴스에서 접했던 기억이 나는데.
 
▶ 송명순/예비역 준장: 네.
 
▷ 주영진/앵커: 2010년에 첫 전투병과 여성 장군이 되셨을 때 그때 기분이 어떠셨을까 궁금합니다.
 
▶ 송명순/예비역 준장: 개인적으로는 말할 수 없는 영광이었고 또 저희 여군이 탄생을 한지 60년 되던 해였기 때문에 선배들의 오랫동안의 노력 또 숙원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가 있죠.
 
▷ 주영진/앵커: 여성 장군 되신 날 집에서 자제분들에게 큰절을 했다, 이런 기사도 제가 본 적이 있는데 정말 그렇게 하신 건가요?
 
▶ 송명순/예비역 준장: 네. 그렇게 했습니다.
 
▷ 주영진/앵커: 왜 자제분들에게 절을 하셨습니까?

▶ 송명순/예비역 준장: 군 생활이라는 것이 사실은 바깥에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고 복잡하고 그런 것을 우리 아이들이 잘 이해를 해줬기 때문에 고맙다는 차원에서 큰절을 했습니다.
 
▷ 주영진/앵커: 여성 장군 전투병과에 여성 장군이 나오기까지 60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 이후에 장군님 이후에 더 있으십니까? 전투병과 여성 장군이.
 
▶ 송명순/예비역 준장: 지금 제 뒤를 이어서 1명.
 
▷ 주영진/앵커: 1명이 더?
 
▶ 송명순/예비역 준장: 네. 복무하고 있습니다.
 
▷ 주영진/앵커: 정말 어쨌든 간에 아직은 대단히 희소한 그런 상황인데요.
 
▶ 송명순/예비역 준장: 네.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왜 이렇게 여성 전투병과. 간호병과 말고 일반 병과에서 여성 장군이 나오기가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 송명순/예비역 준장: 간호병과의 경우는 진급이 되면 보직을 시킬 수 있는 직위가 정해져 있지만 저희 일반 병과는 사실은 직위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자유경쟁의 틀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자유경쟁의 이면이라고 볼 수 있는데 활용 확대도 굉장히 증가가 됐고 또 활용에 대한 평가도 굉장히 긍정적인데도 불구하고 사실은 그런 면에서는 굉장히 좀 미흡하죠. 인색하다고 할 수가 있죠.
 
▷ 주영진/앵커: 장군님 30년간의 군 생활 거쳐서 장군이 처음 되셨을 때 그 당시에 저희가 화면을 한 번 준비를 해봤습니다. 한 번 보시고 이야기를 계속 한 번 이어가죠.
 
▷ 주영진/앵커: 기쁘기보다는 책임감이 먼저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헤어스타일은 저때나 군에 계실 때나 지금 전역하실 때나 크게 차이는 없으신 것 같습니다.
 
▶ 송명순/예비역 준장: 네. 군문을 떠나 있어도 아직도 마음은 군에 있는 것 같습니다.
 
▷ 주영진/앵커: 저 당시 화면 보셨는데 정말 저때 임기제라고 하는 전제조건이 달려있긴 합니다마는 첫 전투병과 여성 장군이 됐을 때 동료 여군들에게나 후배 여군들에게 하셨던 말씀 기억나는 장면 있으세요?
 
▶ 송명순/예비역 준장: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모티브를 제가 제공은 했지만 그 모티브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것들은 후배들의 몫이다. 그러니까 이게 이제 처음이 아니고 이제 시작이 아니고 지금으로부터 더 많은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을 하고 열심히 같이 한 번 해보자는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 주영진/앵커: 우리 장군님이 어떻게 군인의 길을 걸어가시게 됐는지를 이제부터 여쭤봐야 될 것 같아요. 그게 참 궁금하거든요. 여성으로서 더군다나 연배를 생각하면 그 시절에 1980년대 초반에 아마 군에.
 
▶ 송명순/예비역 준장: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그 당시만 해도 여군 많지 않았던 시절이거든요. 그래서 우리 장군님 예전에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사진으로 영상으로 저희가 한 번 또 준비를 해봤습니다.
 
▶ 송명순/예비역 준장: 네.
 
▷ 주영진/앵커: 대학을 졸업하시던 해에 여군에 지원하시게 된 여군 장교에 지원하시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 송명순/예비역 준장: 글쎄요. 20대 초반의 꽃다운 여대생이 투철한 국가관이나 안보관을 가지고 군문에 들어섰다고 얘기는 사실은 못하죠. 솔직하게는. 그러나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본인에 대한 신뢰 그리고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군문에 들어와서 이 군인의 길을 걸으면서 국가관이나 안보관도 정립이 되고 또 이게 천직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새롭게 또 인생관을 확립을 해가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죠.
 
▷ 주영진/앵커: 당시 서류 접수하실 때 병무청 직원이 상당히 정말 열정적으로 우리 장군님을 설득을 했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뭐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그때.
 
▶ 송명순/예비역 준장: 그때 아마 저를 그 분이 뭐 눈여겨봐서 그렇다기보다는 말씀하신 대로 여군에 대한 인식이라든지 여군 모병이 그렇게 흔하지도 않고 희소가치가 있을 때 한 사람이라도 좀 더 자원을 확보를 하겠다는 그런 의지가 아니었었나, 지금 생각이 듭니다.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 분한테는.
 
▷ 주영진/앵커: 그렇습니까?
 
▶ 송명순/예비역 준장: 네.
 
▷ 주영진/앵커: 그 병무청 직원의 눈빛이 상당히 간절했다, 이렇게 말씀하셨던 기억도 나는데.
 
▶ 송명순/예비역 준장: 네.
 
▷ 주영진/앵커: 꼭 좀 응시해주십시오, 이런 겁니까?

▶ 송명순/예비역 준장: 네.
 
▷ 주영진/앵커: 그런데 또 하나는 이제 여군이 됐는데 또 하나의 큰 고비가 부모님 특히 어머님의 반대가 심하셨다, 여군이 되셨다는 얘기 듣고 혼절하셨다, 이런 얘기도 있던데요?
 
▶ 송명순/예비역 준장: 네. 그 당시에 군에 대한 기억이라는 게 우리 여성들보다는 남성들한테는 상당히 어두운 기억이 많죠. 그래서 지금도 자식을 군에 보내는 아버님들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가 당신의 옛날 군 생활을 생각해서 그랬을 수도 있거든요. 근데 그런 험한 사지와 마찬가지인 곳에 곱게 키운 딸이 간다 그리고 선친께서도 군 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그 내부를 너무 잘 알고 계시다 보니 험한 길을 보내지 않으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 주영진/앵커: 처음에 우리 장군님께서 군에 입대하셨을 때만 해도 여성 군인이 맡을 수 있는 보직 자체가 대단히 제한 돼 있었고 간호병과가 대다수였고
 
▶ 송명순/예비역 준장: 네.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그렇다고 한다면 그러한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 나가셨는지가 궁금해요. 여성 대대를 해체를 처음 건의하셨다고 하는데 그건 또 어떤 내용인지도 궁금하고요.
 
▶ 송명순/예비역 준장: 이제 그게 지금 말씀하신 맥락하고 같은데 사실은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만의 직위에서 활용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저는 굉장히 반감이 많았었습니다. 그래서 본인들의 역량을 군의 구성 요소로서 여성이 아니고 구성요소로서 발휘할 수 있는 어떤 여건을 만들어줘야 된다는 생각에서 별도의 독립 부대를 가지고 있던 여군 대대를 직위에 맡게끔 해체를 하면 더 큰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을 그때 했었던 겁니다.
 
▷ 주영진/앵커: 여군 대대가 해체가 되고 나서는 많은 여군들이 모든 각 부대로 다 흩어지게 된 건가요?
 
▶ 송명순/예비역 준장: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전방 지역에도 여군이 그때부터 배치가 되기 시작한 건가요?
 
▶ 송명순/예비역 준장: 처음 출발할 때는 조금 어려웠겠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단초가 돼서 지금은 전후방 각지에 여군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말단 대대에까지.
 
▷ 주영진/앵커: 그게 우리 송명순 장군님께서 그때 처음 건의하셨던 여군 대대. 여군들로만 이루어진 대대를 해체하면서 바로 그게 중요한 계기가 돼서 이렇게 됐다?

▶ 송명순/예비역 준장: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주영진/앵커: 여군 창설된 게 별 다신 때가 60년이었다고 하니까 이제는 한 66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70년이 다 되어 가는데.
 
▶ 송명순/예비역 준장: 그렇습니다. 네.
 
▷ 주영진/앵커: 그 동안 우리나라 여군들 얼마큼 많이 변했는지 예전에 한 1년쯤 전에 저희 정치부의 이경원 기자가 취재했던 기억이 나요. 제가 데스크도 보고. 당시 리포트 한 번 보고 나서 또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 주영진/앵커: 저런 후배 군인들 보시면 좀 자랑스러우실 것 같아요?
 
▶ 송명순/예비역 준장: 네.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장군님께서 걸어오신 길이 저 후배들에게는 중요한 본보기가 되고 그리고 후배들이 또 다른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제가 시작할 때 말씀드렸습니다만 우리나라 여군이 가야할 길은 아직 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들이 바뀌어야 된다고 보십니까?
 
▶ 송명순/예비역 준장: 지금 수적으로는 사실 1만 명 시대라는 그 타이틀만으로 굉장히 크게 확대가 됐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는. 그러나 수적인 확대가 전부를 대변해줄 수는 없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우리 국가의 위상에 맞게끔 선진국 같은 그런 비율의 적정 규모의 인력이 확보가 돼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요.
 
▷ 주영진/앵커: 더 충원돼야 한다?
 
▶ 송명순/예비역 준장: 그렇죠. 왜냐하면 여성들이 이 남성 위주 공간에 들어와서 해야 될 일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남성 위주이기 때문에 남성만이 필요한 조직이 아니거든요. 그 다음에 여러 가지 지금 많은 제도들이 개선은 되고 있지만 그런 것들이 좀 내실을 기여하는 차원에서 좀 더 발전이 필요하다고 저는 봅니다.
 
▷ 주영진/앵커: 여군으로 30년 이상 군에 복무하시면서 일과 가정을 병행해서 해나가기가 참 어려우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돌이켜보면 어떠세요?
 
▶ 송명순/예비역 준장: 그때는 사실은 군복을 입고 있는 여성으로서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습니다. 농담으로 군하고 결혼을 했다고 하는 선배들도 많았기 때문에. 그래서 일과 가정을 병행해야 되는 입장에서는 항상 모범이 돼야 되고 희생을 감수해야 되고 그래야만 후배들이 좀 더 나은 조건에서 또 일과 가정을 병행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참 어려움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잘 극복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주영진/앵커: 남편 분도 군인이셨고 이제 예편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남편 분, 자제분들의 도움이 상당히 컸겠습니까?
 
▶ 송명순/예비역 준장: 그렇죠. 그 도움이 없었으면 절대로 이룰 수 없었던 영광이었습니다.
 
▷ 주영진/앵커: 그래서 별을 다시는 날 자제분들에게 큰절을 하시고
 
▶ 송명순/예비역 준장: 네.
 
▷ 주영진/앵커: 뭐라고 그때 말씀하셨어요? 큰절하시고
 
▶ 송명순/예비역 준장: 너무 고맙다. 이 영광은 엄마 것이 아니고 너희들 것이야.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 주영진/앵커: 우리 송명순 우리나라 여군 최초의 전투병과 장군이 되신 송명순 장군님과 얘기하다 보니까 한 사람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역시 가정. 배우자와 자제분들의 도움도 상당히 큰 도움이 됐다.
 
▶ 송명순/예비역 준장: 네.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본인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앞으로 우리나라 여군 발전을 위해서 물론 군 밖에 계시지만 또 계속해서 노력해주시기를 바라고요. 오늘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 송명순/예비역 준장: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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