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안전발판

[취재파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안전발판
● 지하철 내리다 틈새에 휠체어 빠져

 강한새 씨는 지난 8월 24일에 아픈 몸을 치료하러 병원으로 가던 중 휠체어 앞바퀴가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에 끼었습니다.

2016.09.21 8뉴스 리포트
휠체어가 갑자기 멈추면서 몸이 앞으로 쏠려 신체에 부착한 의료장비가 망가졌고, 동시에 스크린도어가 닫히면서 가방이 끼어 찢어졌습니다. 시민들의 도움으로 강 씨와 휠체어는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골밀도가 감소하는 병이 있어 작은 충격도 조심해야하는 강 씨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 차라리 집안에 있는 것이 제일 안전한 것 같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안전발판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해 지하철과 승강장 간격이 넓은 역사에는 휠체어의 승하차를 위한 이동식 안전발판이 비치돼 있습니다. 지하철역 사무실 안에 있는 안전발판을 휠체어 이용객이 요청하면 역무원이 들고와서 타고 내릴 때 놓아주는 방식으로 설치합니다. 하지만 강 씨에 따르면 내려야 할 때 역무원이 부족하다며 안전발판을 들고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시간에 맞춰 역무원이 나와 있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비장애인이 지하철 한 역을 지나쳤을 경우 금방 돌아가서 다시 타면 되지만, 휠체어를 타고 있는 승객은 한 역을 지나칠 경우 다시 안전발판을 요청해 시간에 맞춰 나오게 하려면 훨씬 더 많은 역을 지나쳐야 합니다.

● 휠체어 이용객과 동행해봤더니

 실제로 강 씨와 동행해보니 지하철을 이용할 때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계단으로 이용할 수 없어서 엘리베이터로 가다보니 승강장까지 가는 것만 한참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노약자 수에 비해 엘리베이터 숫자가 몇 개 없어서인지 줄 서있는 사람들을 몇 번 보내고 나서야 탈 수 있었습니다. 또 승차와 하차할 때 환승할 때마다 안전발판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이번 역은 승강장과 지하철 사이 간격이 넓으니 조심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오는 역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곡선구간에 지은 지하철역은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가 10cm보다 넓어지는데 서울시의 111개역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전체 역의 36%입니다. 지하철 한 번 타고 가는데 너무 불편하고 오래 걸린다고 비장애인인 저는 느꼈습니다. 강 씨는 오래 걸리는 것에 대해서는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안전하게만 타고 갈 수 있길 바랐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안전발판
  강 씨와 함께 안전발판을 요청해서 타고 갈 때의 일입니다. 합정역에서 타고 2호선 신촌역에서 하차를 하는데 안전발판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합정역에서는 신촌역에 말을 해두겠다고 했습니다. 신촌역도 간격이 10cm가 넘는 역 중 하나입니다. 안전발판이 준비 되지 않아 내리지도 그대로 가지도 못하는 사이 지하철 출입문이 닫혔고, 강 씨는 휠체어와 함께 끼었습니다. 지하철의 비상무전기를 사용해서 끼인 사실을 알린 뒤에야 강 씨는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신촌역 쪽에 이유를 들어보니 사회복무요원들끼리 연락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착오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지하철 역사마다 역무원이 서너 명 정도 있는데 인원이 부족해 안전발판 설치는 사회복무요원이 전담하고 있었습니다. 사회복무요원들이 하다보니 사무실에 따로 연락이 가지 않았고, 지하철을 운행하는 기관사도 휠체어 승객이 내린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안전발판은 다른 승객들의 승하차가 끝난 뒤 설치해서 휠체어가 내리게
해야하는데 기관사가 이 사실을 모르다보니 출입문은 평소처럼 금방 닫혔고, 강 씨가 문에 끼인 겁니다.

● 안전성 지적받아 자동안전발판 설치 보류

 서울시 지하철역 4곳중 1곳이 넓은 승강장 간격을 가지고 있다보니 사고도 잦습니다. 최근 3년간 지하철 승강장 발빠짐 사고는 234건이나 일어났습니다. 서울시는 사고를 줄이기 위해 2019년까지 46개역에 자동안전발판을 설치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자동안전발판을 설치하면 이동식 안전발판을 역무원이 설치할 필요 없이 지하철이 플랫폼에 멈춰서면 발판이 자동으로 설치됩니다.
자동안전발판 설치 예시

 우형찬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 양천3)에 따르면 감사원이 자동안전발판의 안전성 문제를 지적하면서 자동안전발판 설치 사업이 보류됐습니다. 서울메트로는 올해안에 7개 역에 설치하려던 계획을 전면 중단했고, 서울도시철도는 이미 설치가 진행중인 김포공항역 등 3개역을 시범운행해보고 확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지하철이 진입하기 전에 고장으로 안전발판이 튀어나오면 충돌의 위험이 있고, 승하차시 고장으로 안전발판이 내려가면 추락사고의 위험이 있다.”며 중단 이유를 밝혔습니다. 또 자동안전발판을 한 역에 설치하는 데만 3억에서 4억이 필요한 것으로 드러나 예산문제도 얽혀있습니다. 

  ● 시민의 발, 약자의 교통수단

 승강장에 발이 빠지고 바퀴가 빠져 다치는 사고는 주로 발이 작은 어린이, 몸을 민첩하게 움직이기 힘든 노인, 휠체어를 탄 장애인입니다. 이들은 법에서 규정한 교통약자입니다.(국토교통부령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이 법에는 대중교통을 운영하는 사업자와 국가가 교통약자들의 이동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책무가 규정돼 있습니다. 이동식 안전발판과 자동안전발판을 설치하려는 시도도 여기서 비롯된 것입니다.

 교통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은 사실 지하철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강한새 씨는 그나마 지하철이 이용하기 편해서 자주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장애인 전용 택시가 있지만 이용객에 비해 숫자가 턱없이 적어 2시간 넘게 기다려야하는 경우가 많고, 저상버스의 경우 바쁜 시간대는 버스기사에게 승하차 할 때 도움을 받기 힘든 상황입니다. 역무원이 여러명 있고 엘리베이터 등 휠체어를 위한 시설이 있는 지하철이 강 씨가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입니다. 

 지하철은 흔히 ‘시민의 발’이라고 불립니다. 특히 차를 사거나 운전할 수 없고, 택시를 탈 형편이 되지 않는 약자들의 교통수단입니다. 교통약자들이 안전하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하철에 더 큰 책임을 묻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