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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주거래은행 하려면 돈 내"…서울시만 1,300억 원

2년 반 동안 행정기관, 대학, 병원 등에 4천240억 원 줬다

[취재파일] "주거래은행 하려면 돈 내"…서울시만 1,300억 원
2년 전인 2014년 3월25일 서울시는 차기 시 금고 운영 대상자로 우리은행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서울시의 수입과 지출, 보유 현금 운용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주거래 은행이다. 

서울시는 "금융기관의 대내외적 신용도 및 재무구조의 안정성", "시에 대한 대출 및 예금금리", "시민의 이용 편의성", "금고업무 관리능력", "지역사회 기여 및 시와의 협력사업" 등 5개 분야 18개 세부항목에 대하여 심사한 결과, 우리은행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중 은행들은 평가 항목 가운데 제일 마지막 항목인 “지역사회 기여 및 시와의 협력사업”에 주목한다. 말이 기여와 협력이지 간단히 얘기하면 금고 업무를 수주하는 대신 지급해야 하는 ‘시정 협력 사업비’, 돈의 규모라는 얘기다.

우리은행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 동안 서울시의 금고 운영업무를 위탁받는 대가로 모두 1천3백억 원을 내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선정 당해인 2014년 7월에 4백억 원을 지급했고, 올해 7월에 4백억 원을 냈다. 그리고 아직 5백억 원을 더 내야 한다.

우리은행이 서울시 금고 선정 대가로 지급하는 1천3백억 원은 올해 우리은행의 예상 순이익 1조 2천억 원의 10%가 넘는 금액이다. 우리은행은 1백 년째 서울시 금고를 운영하고 있으니 그동안 서울시에 낸 협력기금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서울시뿐이 아니다. IBK기업은행은 지난 9일 수원시청의 금고업무 관련 출연금으로 95억 원을 지급했다고 전국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 공시했다. 부산은행은 지난 7월 부산시 금고 협력 사업비로 163억 원을 냈다고 밝혔다. 부산은행이 4년 동안 약속한 출연금은 233억 원 이다.

은행들이 주거래 은행 선정 대가로 이른바 협력 사업비를 주는 대상은 지방자치단체 외에 각종 행정기관과 교육기관, 병원, 연기금, 공제업 등 가지가지다. 대형 거래처에는 대부분 돈을 주고 업무 수주를 하는 셈이다. 

규모가 큰 종합병원이나 대학의 경우 지급하는 협력 사업비 규모는 지방 자체단체와 비슷한 규모다. 우리은행의 경우 지난해 연세대학교와 연세대 병원에 주거래 은행 선정 대가로 1백억 원의 협력 사업비를 냈다.

은행들이 지난 2년 6개월 동안 주거래 은행 선정 대가로 지급한 전체 협력 사업비는 공시된 것만 4천240억 원에 달한다. 금융감독원이 2014년 3월 이후 지급한 10억 원 이상 규모의 협력 사업비 내역을 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 게시하도록 했고, 이를 모두 합한 수치다.
17개 시중은행 가운데 1곳에 10억 원 이상의 협력 사업비를 냈다고 공시한 은행은 9개 은행이다. 우리은행이 1천375억 원으로 제일 많았고, 그 다음이 NH농협으로 1천140억 원, 신한은행 795억 원 순 이었다.

협력 사업비 지급 대상 유형별 사업비 지급 규모는 행정기관이 3천473억 원으로 제일 많았다. 대학이 390억 원, 종합병원이 178억 원이었다. 

금융감독원은 16개 국내 은행이 지급한 연도별 전체 협력 사업비는 2013년 2천90억 원, 2014년 2천160억 원, 2015년 2천200억 원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주거래 은행 선정 과정에서 받는 돈이 커지자 각 기관들은 더 많은 사업비를 받기 위해 입찰 과정에서 대놓고 협력 사업비를 평가 항목에 포함시키고 있다. 서울시가 적용한 행정자치부의 예규는 1백점 만점에 10점을 지역 사회 기여 및 협력 사업에 배정하도록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협력 사업비 항목이 업체 선정 기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아 큰 영향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은행 관계자들은 “주거래 은행 선정 입찰에서 협력 사업비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밝히고 있다. 

“은행 간에 신용도나, 금리, 임직원 서비스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결국 협력 사업비 규모에 따라 평가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은행의 수지를 따져 최대한 지급할 수 있는 상한액을 정하고, 치열하게 눈치를 보며 협력 사업비 베팅 규모를 정한다.”라고 한 은행의 관계자는 설명했다.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은 “주거래 은행을 수의 계약으로 선정했던 예전과 달리, 이제 각 기관들은 공개 입찰을 통해 주거래 은행을 선정하고 있다. 협력 사업비로 들어오는 돈도 이제 일반 회계로 편입해 사용하는 만큼, 기관장이 마음대로 쓰는 쌈짓돈 역할을 할 우려도 없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협력 사업비 규모가 주거래 은행 선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면서 각종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은행 간의 과당 경쟁이 벌어지면서 협력 사업비가 대형화되고, 이는 은행의 경영 수지에 나쁜 영향을 미쳐 결국 소규모 선량한 기업이나 개인 고객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분석이다.

주거래 은행 선정이 은행 본연의 경쟁력보다는 지자체나 대학 등에 주는 돈의 규모에 따라 결정됨에 따라 뒷거래 등 각종 불공정 거래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은행 관계자는 “3년 전만 해도 은행의 순이자 마진이 2.8%를 넘었는데 이제 1.4%도 되지 않는다. 손익 추정을 해보면 이익이 잘 안 나온다.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지만 대규모 거래처를 놓칠 수는 없는 상황이라 고민이 크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금융감독원은 일부 은행들이 지자체, 대학 등의 주거래은행 선정 등과 관련해 거래상대방에 과도한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고 있다며 규제에 나섰다. 

금감원은 “은행들의 과도한 이익제공은 비용증가를 초래하여 은행의 경영건전성을 저해하고, 궁극적으로 선량한 금융소비자의 부담으로 전가될 우려가 있는 만큼, 사회 통념을 벗어나는 과도한 이익제공을 규제하고 은행의 내부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학총장이나 지방자치단체장 등이 각종 출연금이나 기부금 유치 경쟁을 벌이면서 주거래 은행 선정을 둘러싼 협력 사업비 규모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고 은행업계 관계자들은 밝히고 있다. 

금감원이 사회통념을 벗어난 이익제공을 규제하겠다고 밝혔지만, 어느 정도가 사회통념을 벗어나지 않은 규모인지도 불확실하다. ‘돈 놓고 거래처 따먹기‘가 아니라 은행 본연의 경쟁력에 따라 주거래 은행을 선정할 수 있도록 아예 주거래은행 선정 기준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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