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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두 직원 이야기, 두 기업 이야기

● 한 직원이 있습니다.

직원 A는 취업난을 뚫고 유명 대기업에 입사했습니다. 지역 출신으로 서울에 취업한 그는 가족과 친척들의 자랑입니다. 그가 다니는 회사는 높은 연봉만큼 복지도 좋습니다. 평일에는 출근버스가 집근처까지 데리러 옵니다.
입사 4년차인 그는 지난 주말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식이 있는 날 회사에서 전세버스를 보내 지역에 있는 가족과 친척들을 서울로 데려왔습니다. 회사 로고가 멋지게 박힌 버스가 고향까지 내려오자 그의 부모님은 뿌듯해했습니다. 결혼식 전세버스를 빌리려면 비용이 많이 들텐데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복지를 제공해주니 고마운 마음이었습니다. 지난 주말 A는 행복한 결혼식을 끝내고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회사 일이 쉽지만은 않지만 대우가 좋으니 이 부부에게는 장밋빛 미래가 있을 겁니다.

● 또 다른 직원이 있습니다.

직원 B는 버스기사입니다. 유명 대기업의 로고가 박힌 차를 몰고 평일과 주말에 항상 대기업 직원들을 실어 나릅니다. 하지만 대기업 소속은 아닙니다. 대기업과 계약을 맺은 버스업체 소속입니다. 아침에는 직원들을 출근시키고 낮에는 셔틀버스나 워크샵을 위한 운행을 합니다. 직원 경조사에도 버스가 이용돼 장례식이 있으면 대구에 있는 직원 가족들을 서울의 장례식장으로 실어 나릅니다. 밤중에 대구를 왔다갔다 했어도 다음날 새벽에 나가 다시 직원들 출근버스를 운행합니다. 주말에는 직원 결혼식 버스를 맡습니다. 4월이나 5월처럼 성수기에는 토요일, 일요일에 결혼식 없는 날이 없습니다. 금요일에 평일운행을 마치고 토요일 결혼식 전세버스를 위해 여수로 내려갑니다. 토요일에 여수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여수로 하객들을 실어 나른 뒤 일요일에는 충청도를 오르내립니다.
주말도 쉬지 않고 장거리를 운행하다 보니 피로가 쌓이고 잠은 부족합니다. 밤중에 운행을 한 뒤에는 시간이 모자라 버스 의자에서 자거나 트렁크에 장판을 깔고 자기도 합니다. 이렇게 일했지만 주휴수당이나 야간수당은 바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도로에 불법 주차를 하다가 단속에 걸리면 한 번에 20만원 씩 날아갑니다. 대기업 안에는 그의 버스를 주차할 데가 없고, 버스업체에서는 알아서 도로변에 세워놓으라고 합니다. 버스 차고지가 경기도에 있지만 빈 차로 왔다갔다 하면 기름 값이 낭비되기 때문에 업체가 일부러 서울에 있는 버스기사를 채용해 집근처 도로에 주차를 하도록 한 겁니다.  

● 한 기업이 있습니다. 

직원 B가 다니는 기업입니다. 이 기업은 10여년 된 버스업체인데 여러 대기업과 계약을 맺어 출근버스나 셔틀버스를 지원해줍니다. 버스 기사들의 노동환경에 대해 질문을 하자 기업 관계자는 평일운행을 하고 주말에 연속으로 지방 운행을 한 것은 인정했지만, 위험하지 않게 스케줄 조정을 하고 대체인력을 투입한다고 답했습니다. 

이 업체에 소속된 버스기사들에게 물어보니 “바쁠 때는 살인적인 스케줄로 일한다. 운전기사도 승객도 위험하다”는 이도 있었지만 “버스기사가 다 그렇다. 다른 곳도 성수기 때는 쉬지 못하고 제대로 못자고 한다.”며 체념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 또 다른 기업이 있습니다.

직원 A가 다니는 기업입니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인 이 기업은 버스업체에 전세버스를 빌려 사용하고 있습니다. 출근부터 경조사까지 직원들이 매일 전세버스를 이용하지만 기업 관계자는 버스의 운행과 관련된 것은 직접 개입하지 못한다고 답했습니다. 전세버스 2대만 빌렸을 뿐, 기사 몇 명을 고용하고 월급을 얼마나 주는지는 소관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버스기사에 대한 취재가 시작되자 이 기업은 버스업체와 새롭게 특약사항을 문서화했습니다. 새벽운행을 하면 다음날에는 대체기사를 투입하고, 주말에 연달아 장거리 운행을 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내용입니다.
● 반복되는 이야기들

두 직원 이야기, 두 회사 이야기는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행히 어느 정도 개선되는 방향으로 마무리가 됐지만 시간이 지나도 고쳐지지 않는 이야기가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대기업은 방관하고 하청업체는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일을 시키고, 일하는 이들은 계속 고통 받는 패턴이 반복된 지 오랩니다. 각각 다른 기업에서 같은 처지에 놓인 직원들의 이야기가 “다른 곳도 다 똑같아. 경제가 좋지 않으니 다들 힘들지 뭐...”라는 말 뒤에 숨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 "2시간 자고 버스 운전" 한탄…살인적 스케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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