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리포트+] 육아휴직 했을 뿐인데…제가 '용자'라고요?

[리포트+] 육아휴직 했을 뿐인데…제가 '용자'라고요?
“왜 저더러 용감한 아빠라고들 할까요?”

K씨는 평범한 30대 가장이었습니다. 불의를 못 참는다든가, 신념에 가득 찬 성격은 아니었습니다. ‘용감하다’라는 수식어와 거리가 멀었죠. 단지 산후 우울증을 겪는 아내 대신 육아를 맡으려고 직장에 육아휴직을 신청한 것 말곤 말입니다.
 
[ K 씨 / 육아휴직 아빠 ]
“아내가 출산한 직후에 우울증이 찾아왔어요. 속으로는 참고 이겨 내보자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게 잘 안 됐죠. 대신 제가 퇴사까지 마음먹고 육아휴직을 신청했습니다.”

다행히 육아휴직이 받아들여져 K씨는 난생처음 1년간 아이를 직접 키웠습니다. 육아 과정에서 실수도 잦았고, 힘든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손수 키우며 보람도 느꼈고 커가는 아이와 함께 본인도 성장했다고 말합니다.
 
[ K 씨 / 육아휴직 아빠 ]
"아이랑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았습니다. 처음에는 아이가 낯가림도 많았는데,친구들이랑 잘 노는 모습을 볼 때가 제일 행복했습니다.”


지난 21일 고용노동부가 집계해 밝힌 올해 상반기 남성 육아 휴직자 수는 3,353명. 하지만 전체 육아휴직자 4만 5,217명과 비교하면 남성 육아휴직 수는 100명 중 7명꼴에 불과합니다. 남성에게 육아 휴직은 여전히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정부는 남성 육아 휴직자를 늘리기 위해 내년부터 ‘아빠의 달’을 지정하고, 남성의 육아휴직 수당을 늘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 정책에도 육아휴직을 고민하는 아빠들은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 '퇴근 인사 금지' 가 육아휴직 대책?

그렇다면 남성이 육아휴직을 내는 데,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2014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를 보면 남성 직장인 대다수가 육아휴직을 고민할 때, 경제적 부담을 가장 많이 걱정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남성 육아휴직 시 가장 큰 부담 ]
① 소득 감소 (41.9%)
② 직장 내 경쟁력 저하 (19.4%)
③ 동료의 업무 부담 (13.4%)
④ 부정적인 시선 (11.5%) 
 
정부는 지난 6월 ‘일·가정 양립’이라는 구호 아래 다양한 지원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소득 손실을 보전해주기 위해 내년 7월 이후 태어나는 둘째 자녀부터는 남성 육아휴직 수당을 150만 원에서 200만 원으로 올려주기로 했습니다.

아빠들이 선뜻 육아 휴직을 신청할 수 없는 기업 문화를 바꿔보자는 캠페인도 벌이고 있습니다. ‘일家양득 캠페인’을 벌이고 육아휴직을 권장하거나 저해하는 단어 공모전도 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지원 강화 방안과 캠페인에도 남성 직장인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보다는 의문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 40대 남성 직장인 ]
“퇴근할 때 인사를 하지 말라고 한다고 부하 직원들이 진짜 인사를 안 할지는 의문입니다. 법이 정한 일·가정 양립 제도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상황인 걸요?”

● 여성 육아휴직제도부터라도…

전문가들은 육아휴직 문화를 독려하는 일회성 캠페인 부류의 정책보다 제도가 법대로 운영되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사업주가 육아휴직과 관련한 법을 위반했을 때 이를 제대로 지키도록 관리하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현행 육아휴직 제도를 보면 육아 휴직을 기업이 거부하면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거나, 해고 등 부당한 처우를 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올해 3월부터는 여성의 경우 ‘임신 기간 근로시간 단축 제도’도 운영 중이지만, 단축제도가 활성화되기는커녕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 제도는 임신 12주 이내나 36주 이후의 여성 근로자가 급여 삭감 없이 하루 2시간 근무를 줄여서 일할 수 있는 것으로, 위반한 사업체는 과태료 500만 원을 물게 됩니다. 하지만, 여성 근로자 대다수는 직장 내 분위기상 단축제도를 마음 편하게 이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법적으로 고용보험에 가입한 근로자는 사업장 규모나 형태에 상관없이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에 따라 육아 휴직제도를 마련한 회사는 전체 사업체의 58.2% 정도입니다. 그중에서 실제 육아휴직을 한 사람이 있는 사업장은 10곳 중 3곳(29.9%)꼴에 불과했습니다
 
[ 박종서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
“일·가정 양립 정책은 제도가 잘 갖춰진 데 비해 실행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제도를 제대로 작동시키려면 무엇보다 감독을 강화하고 개선해야 할 필요가 큽니다.”

정부는 저출산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OECD가 발표한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24명으로 37개 회원국 가운데 36위입니다. 육아휴직을 내기 위해 ‘용기’를 내야 하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다면, 출산율 꼴찌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도 그만큼 힘들어질 것입니다.

(기획·구성 : 임태우·김미화 / 디자인: 임수연)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