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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원가 2천 원짜리 약이 70만 원?…제약사의 횡포

위 사진에 나오는 귀여운 아이들은 미국 오클라호마 주에 사는 커프 남매입니다. 아이들이 하나같이 밝고 건강해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치명적인 병을 갖고 있습니다. 모두 음식 알레르기를 갖고 있어서 우유와 호두, 땅콩과 참깨, 그리고 코코넛을 먹으면 쇼크 상태에 빠지게 되고 심하면 목숨까지 위태로워집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은 항상 집을 벗어날 때 항 알레르기 약을 지니고 다녀야 합니다.
바로 이 사진에 나오는 ‘에피펜’ (Epipen)이라는 약입니다. 에피네프린 성분이 든 이 주사약은 알레르기에 의한 쇼크가 오면 허벅지에 찌르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밀란 (Mylan/ 미국식 발음으로 마일런)이라는 제약사가 독점 공급 권을 갖고 있는 이 주사약은 두 개들이 한 상자가 6백달러 (약 70만 원)나 합니다.
 
이 네 아이를 키우는 커프 씨는 한 아이당 주사약 하나씩 아이들에게 들려 보내야 하는 만큼 1천 2백달러 (140만 원)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됩니다. 게다가 이 약은 1년 이상 지나면 약효가 떨어져 새로 구입해야 합니다.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여성 캣 브레싱도 역시 음식 알레르기를 갖고 있습니다. 언제 어떤 음식을 먹고 쇼크에 빠질지 몰라 침실과 화장실, 거실과 주방 등에 이 에피펜을 하나씩 놔두고 있습니다. 밖에 외출할 때도 한 세트씩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닙니다. 이렇게 6개만 상비한다고 해도 210만 원인 셈입니다. 비싸다고 해서 한 두 개로 줄일 수도 없는 것이 브레싱 씨의 경우만 하더라도 이 주사약 덕분에 지난 5년간 10여 차례나 목숨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미국에서는 커프 남매나 브레싱 씨 같은 알레르기 환자가 무려 4천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밀란은 2007년 에피펜의 독점 공급권을 획득했습니다. 당시 두 개 들이 한 상자에 1백달러 정도 했지만 그 이후 야금야금 가격을 올려 9년새 6배 이상 올렸습니다. 가격 폭등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연방 상 하원 의원들까지 나서서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하는 미국 연방거래 위원회 (FTC)의 조사를 촉구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습니다.
밀란의 CEO 헤더 브레시
밀란은 원가 공개를 끝내 거부했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볼 때 한 상자에 2달러 정도 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원가 2달러 (2천3백 원)짜리 약을 6백 달러 (70만 원)에 팔면서 3백 배에 달하는 폭리를 취하는 셈입니다. 밀란 측은 약 값만 따져서 원가를 계산하면 안 된다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주삿바늘’ 등 제품 개선에 수천만 달러의 투자비가 들어갔다는 겁니다.
이 주장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약을 개발하기까지의 투자비용과 이후 지속적인 개선에 들어간 비용, 그리고 광고비와 중간 유통 마진 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3백배 폭리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엄청난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 없어 보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심한 알레르기 환자들이 있습니다. 각종 환경 호르몬의 영향 등으로 땅콩이나 우유 등을 먹으면 심한 쇼크가 오는 어린이도 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봤더니 국내에서도 이 에피펜이 팔리고 있는데 병원 응급실에는 상비약으로 구비돼 있으며, 개인이 필요할 경우에는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가격은 10만원가량으로 왜 미국보다 싼 지는 알 수 없으나 상당히 부담스러운 가격인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여하튼 에피펜 가격 문제가 미국 전체의 이슈가 되고 상 하원 의원들까지 나서서 가격 조사에 나서겠다고 벼르자 밀란은 최근 여론 달래기에 나섰습니다. 가격을 낮추는 조치 대신에 에피펜의 대체 약을 조만간 개발해 내놓겠다는 것입니다. 기존 두 개 들이 한 세트가 6백 달러였지만 앞으로 3백달러 대의 대체 약을 출시하겠다는 겁니다.
이 말 많고 탈 많은 에피펜 폭리 논란과 관련해 흥미로운 사실은 민주당의 두 상원의원이 서로 상반된 입장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는 겁니다. 에이미 클로버샤 의원 (딸이 땅콩 알레르기를 갖고 있음)은 밀란 폭리를 강도 높게 비난하면서 반 독점 규제차원에서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면 같은 당 소속의 조 맨친 의원은 바로 제약사 밀란의 여성 CEO 헤더 브레시의 아버지입니다. 이런 이유로 두 사람간에 묘한 갈등 기류가 형성돼 있는데, 공화당이 조 맨친 의원을 비난하고 나서면서 이 알레르기 약값 폭리 논란은 정치권 정쟁으로까지 번져가는 양상입니다.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좌)  조 맨친 상원의원 (우)
밀란이 반 값 대체 약 개발을 공언하고 나서면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비난 여론과 정치권의 조사 압력은 다소 누그러지는 양상입니다. 하지만 대체 약이 나오더라도 소비자 가격을 결정하는 ‘의약품 이익관리업체’ PBM이 최종 소비자가격을 어떻게 책정할지도 변수로 남아 있어 알레르기 주사약 에피펜을 둘러싼 논란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 폭탄으로 수면 아래에 잠시 잠복해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사진 =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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