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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생태보물섬 유부도 (충남 서천)

개발 위기 벗어나 생태 거점으로 우뚝…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취재파일] 생태보물섬 유부도 (충남 서천)
불과 10년 전, 2006년 고 노무현 대통령 임기 후반까지도 유부도(有父島)는 지도에서 사라질 운명이었다. 일제시대부터 제련소 굴뚝으로 유명한 충남 서천 장항 부두에서 보면 바다 한 가운데 봉긋 솟은 동산 주변으로 편평하게 누운 섬이 바로 유부도다.

면적 0.77㎢에 해안선 둘레가 4km 정도로 조그맣다. 금강이 실어다 바다에 뿌려놓는 흙과 모래를 유부도는 온 몸으로 받아 거느려 지금의 모양을 이뤘다. 썰물 때면 섬 주변으로 드넓은 갯벌이 드러난다. 지자체와 개발업자들이 메워서 땅 만들자고 앞장섰다.
유부도 모래언덕 해안
FTA다 뭐다 해서 해외 농산물이 밀려들어와 돈도 안 되고, 갯벌도 썩어 고기잡이도 조개 캐기도 글렀다고 목청을 높였다. 건너편 전북 군산은 진즉 산업단지 개발로 공장을 끌어들여 일자리도 늘고 돈도 돌지 않느냐, 밤에 휘황한 불빛을 보면 부럽기 짝이 없다, 군산-장항 이어서 ‘군장산단’ 만들어라, 개발 찬성파는 목청을 높였다.
유부도 염생식물 자라는 모래언덕과 폐염전
갯벌이 썩다니, 무슨 황당한 주장이냐, 한겨울에 호미 하나 달랑 들고 갯벌에 나가 백합 바지락 캐면 서너 시간에 하루 벌이 너끈한 데가 세상에 또 어디 있다고? 바다는 마르지 않는 저금통장인데 메워서 땅 장사하면 그 돈은 누가 다 먹고, 우리는 바다 잃고 고향 잃고 어디로 간단 말이냐? 어민들과 환경을 생각하는 주민들은 반박했다. 갈등은 팽팽했고 지역은 갈려서 흉흉했다. 

전북 서해안 새만금 방조제 건설로 갯벌 생태계가 파괴된 마당에 북쪽으로 인접한 서천 지역 갯벌까지 훼손된다는 건 아무래도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설 자리는 현장, 2006년 2월에 실태를 확인하러 나섰다. 바다 메워 만든 군산 산단은 한겨울 삭풍에 회색 흙먼지만 날렸다.
유부도 갯벌생태조사 (사진=국립해양생물자원관 제공)
공장 입주는커녕 분양도 다 마치지 못했는데 바다 건너 장항까지 갯벌 메울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일었다. 군산 쪽 새만금 방조제에 가로막힌 갯마을에서 더는 바다에 나갈 수 없게 된 어민들은 토목 현장 날품 노동자로 나서야 했다.

갯벌에서 신나게 조개 캐던 아낙네들은 쓰레기 매립장에서 페트병 깡통을 골라냈다. 팔 벌려 갯내음 호흡하던 시절은 영영 끝나고 먼지와 악취를 참아야 하루 일당을 손에 쥐는 신세가 됐다. 개발 찬성파 주장처럼 장항 갯벌은 썩었을까? 어촌계 주민들은 겨울철에도 조개잡이로 쏠쏠하게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바다가, 갯벌이 저금통장’이라는 말은 어디서나 들을 수 있었다.  SBS뉴스와 ‘물은 생명이다’ 프로그램은 사실을 전했다.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2006년 10월 갈등의 땅 서천을 방문해서 갯벌을 직접 삽으로 파서 살펴보기까지 했다.

자연을 파괴하는 개발 대신 자연 환경을 보전하며 지역이 발전할 수 있는 대안으로 당시 정부가 제시한 것이 바로 지금 서천에 들어선 국립생태원과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이다. 서천군도 회색 개발 깃발을 던지고 초록빛 생명의 기를 들어올렸다. 유부도를 중심으로 서천갯벌 습지보호지역과 람사르 습지 지정도 이뤄졌다.

‘군장산업단지’의 일부로 자취를 감출 뻔했던 유부도엔 지금 갈수록 생명의 기운이 넘쳐난다.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 ‘검은머리물떼새’의 국내 최대 서식지로 자리잡았다.
유부도 멸종위기 검은머리물떼새
지구 남반구의 호주 뉴질랜드에서 겨울을 나고 봄에 북반구 극동 시베리아, 알래스카로 번식하러 이동하는 도요 물떼새들이 지친 날개 접고 쉬어가는 생태 거점이기도 하다. 특히 전북 지역 갯벌이 새만금 사업으로 말라붙으면서 철새 중간 기착지로서 유부도의 존재는 거의 절대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중요해졌다.
유부도 알락꼬리마도요
지난 주 유부도 해변에서 마주친 알락꼬리 마도요는 깃털이 푸석하고 꺼칠한 모습으로 측은해 보였다. 북쪽 시베리아 번식지에서 남행길에 지쳐 내려앉은 모양이다. 보름에서 한 달 쯤 유부도에 머물며 이동 과정에서 소모한 체력을 보충해야 다시 겨울을 나러 남반구로 날아갈 수 있다.

한때 소금을 생산하던 염전 자리는 사람이 떠나자 자연의 습지로 돌아가는 중이다. 갯잔디, 갈대, 해홍나물, 칠면초, 나문재, 갯질경 같은 식물이 펄밭을 채워간다. 거뭇한 펄 바닥에 하얀 조개껍데기 조각 같은 것이 널리 고르게 흩어져 있다.

쌍안경으로 살펴보니 엄지손가락만한 작은 게가 하얀 집게발을 주먹처럼 위 아래로 흔드는 모습이 들어온다. 예사 게가 아니라 멸종위기2급으로 지정해 보호대상인 ‘흰발농게’란다. 아직 바깥으로 알려지지 않은 국내 최대 규모 서식지로 보인다고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연구기반구축본부장 한동욱 박사는 의미를 붙인다.

이런 사실을 모르면 누구라도 밟으며 지나가 서식지를 훼손하거나, 개발 행위로 돌이킬 수 없게 파괴할 수도 있다. 계절별 유부도 생태 조사의 성과로서 기억할 부분이다.
유부도 멸종위기 흰발농게 대규모 서식
생태조사에 동행한 소감으로 ‘유부도는 생태 보물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박사는 공감한다면서 사람과 다양한 동, 식물이 어우러져 살면서 각자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 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소중하고 꼭 지켜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천군이 한 걸음 더 나섰다.

앞으로 3년 뒤 오는 2019년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총회에서 세계유산에 등재되도록 추진 중이다. 폐염전 터에 바닷물이 드나들도록 하고 물새 쉼터를 꾸며서 밀물 때 갯벌이 잠기더라도 새들이 앉을 곳을 찾아  에너지를 잃어가며 멀리 헤매지 않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서천과 유부도에 모여드는 다양한 야생 조류를 관찰하는 국제 탐조대회를 오는 2023년에 열 계획도 갖고 있다. 서천군 문화관광과 홍지용 생태관광팀장은 자신도 한때 생태 가치를 잘 모르고 장항개벌 매립 개발에 찬성했지만, 지금은 고향의 자연이 아름답고 생태가 우수하다는 데 긍지를 갖고 지키는 데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유부도 해안쓰레기 처리 시급
당장 바닷물에 밀려온 쓰레기 처리가 급하다면서 유부도를 사랑하는 전국의 시민을 대상으로 ‘클린 봉사단’을 꾸리겠다고 아이디어를 밝혔다. 예산도 절약하면서 유부도에 대한 국민의 관심, 성원을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사명감과 열정에 찬 현장 공무원의 노력이 돋보인다.

인간이 자연을 지켜주면 반드시 보답을 받는다.  ‘생태보물섬’ 유부도에서 충남 서천군민들은 어떤 보물을 얻게 될 것인가, 상상하고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고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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