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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부모님 소득은 얼마?"…이해 안 되는 이력서 항목

[리포트+] "부모님 소득은 얼마?"…이해 안 되는 이력서 항목
“부모님께서 반찬가게 하시는데, 취업 이력서에 직업과 직위를 쓰라고 해서요. 직업은 자영업, 근무처는 XX시장, 직위는 사장이라고 적으면 될까요?”

취업 관련 모 커뮤니티에 올라온 고민 글입니다.

취업 준비생들이 쓰는 이력서 중 어떻게, 왜 쓰는지 갸우뚱하게 하는 대목이 바로 부모님 직업을 묻는 항목입니다. 부모님 직업과 신상명세를 묻는 배경에 늘 궁금증이 남습니다.
 
“일하는 건 나인데, 왜 부모님 직업을 궁금해 하는 걸까요?”
“부모님 생신을 챙겨 드리려는 걸까요? 왜 생년월일까지 적으라고 할까요?”

실제로 지난달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구직자 1,68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했더니 입사 지원서에 기재했던 개인정보는 주민번호(60.9%)가 제일 많았고, 가족사항(60.3%)이 취미와 더불어 2번째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전체 응답자 중 10중 4명꼴로, 부모님 직업까지 기재한 경험이 있다(45.4%)고 답했습니다. 부모님 직업 기재란을 의아해하면서도, 빈칸으로 내버려두면 입사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우려해서 적어 넣는 게 현실입니다.

● 아버지 직업 묻는 사회

내로라하는 대기업 상당수가 여전히 입사 지원서에 부모 직업을 쓰도록 하고 있습니다.

30대 대기업 중에서 올해 상반기 공채를 실시했던 26개 기업 가운데 8곳이 부모 직업 기재란을 두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모 기업에서는 부모의 월수입과 주거, 재산 상황까지 요구했습니다.
기업들은 왜 부모 직업을 물어보는 것일까요? 그들의 공식 입장은 한결같습니다. 참고만 할 뿐, 취업의 성패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죠.
 
[ 인사팀 관계자 ]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일 뿐입니다. 취업 당락이나 불이익을 결정하는 건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취업 준비생들은 당락 결정에 아무 영향이 없다면서도 부모님 직업을 기재하라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부모님 직업을 묻는 분야는 취업 시장뿐만이 아닙니다.
“아버지나 친척 중에 대기업 임원이나 군 영관급, 국회의원 등 소위 높은 분이 있으면 손 들어봐.”

신병 훈련소에 입소한 많은 훈련병이 경험해왔고, 또 지금도 경험하는 질문입니다. 이때 손을 들고 앞으로 나간 훈련병이 어떤 대우를 받을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직업이 화려할수록 군 생활이 편해진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죠.

평균 경쟁률이 20대 1이 넘는 의무경찰에 복무하는 고위 인사의 자제만 봐도 그런 의혹은 여전합니다. 의경 중에서도 특히 국회공관이나 관공서에 근무하는 이른바 ‘꽃 보직’에 고위 인사의 자제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아들도 복무 두 달 만에 선호하는 근무지인 서울지방경찰청 운전병으로 전출돼 보직 특혜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 부모 직업 물어도 막을 근거는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03년 ‘입사지원서 차별항목 개선안’을 발표했습니다. 가족의 성명과 나이, 직위, 월수입 등 가족 관계를 포함해 차별 논란이 있는 36개 사항을 입사지원서 항목에서 제외하라고 권고했죠.

지난 2007년에는 고용노동부가 가족 사항을 묻는 항목 등을 없앤 ‘표준이력서’를 만들어 보급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지원자가 부모 직업 등으로 차별받지 않고 오로지 실력을 통해 선발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방침은 모두 권고에 그칠 뿐이어서 법적 강제성이 없습니다.

‘현대판 음서제’ 논란이 계속되자 정치권조차 부모 직업에 따른 채용 차별을 막으려는 법안을 내놨습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이력서에 신체적 조건과 출신지역, 부모 직업 등을 기재하도록 요구할 경우 과태료 부과’라는 법안을 발의했죠. 발의까진 좋았으나 그 이후 흐지부지 시간이 흐르면서 자동 폐기됐습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부모 직업 기재란을 없애는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출세한 아버지를 둔 지원자는 오히려 주어진 기회(?)를 백분 활용하고자 자기소개서 등에 아버지 직업을 일부러 노출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원자들에게 골고루 공평한 기회를 주려면 가족사항 기재란을 없애는 건 물론이고, 일부러 아버지 직업을 노출하는 행위에 대해 불이익을 주려는 문화가 정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반기 공채가 시작됐습니다. 가뜩이나 경쟁으로 힘든 취업 준비생들의 마음을 더 힘들게 하는 ‘금수저’ 논란. 공정하게 뽑으려는 기업의 의지와 실천이 청년이 느끼는 마음의 짐을 한결 덜어줄 수 있습니다.

(기획·구성 : 임태우·김다혜 / 디자인 :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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