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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살균제 화장품' 재고품은 어쩔 수 없다?…식약처 이해 못 할 해명

정부·기업 도덕적 해이,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태' 부를라

● "재고 상품은 소진될 때까지 기다린다"?

식약처 관계자의 답변에 숨이 턱 막혔습니다. '지난해 8월부터 화장품에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쓰였던 CMIT/MIT를 사용하지 말라는 고시가 시행됐는데, 왜 지금도 해당 제품들이 판매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지난해 8월 이후 생산되는 제품부터 CMIT/MIT를 사용하지 않으면 되고, 재고품은 소진될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 해외에서도 통용되는 '관행'이라는 겁니다.

인체 유해성 때문에 사용 금지 조치를 해 놓고는, 이미 만들어진 제품은 그냥 소비자가 써 없애라는 논리입니다. 소비자의 건강보다는 기업의 손실을 더 걱정하는 태도입니다. 이런 논리를 어느 소비자가 납득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같았습니다. 만일 해외에서 비슷한 관행이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우리와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사람이 죽어나가진 않았다는 겁니다.

정부가 이런 태도로 일관하니, 기업도 적극 나설 이유가 없습니다. 해당 화장품을 제조한 중소업체 관계자는 "식약처에서 몇 차례 경고를 받아서 새로 만든 제품에 CMIT/MIT를 제외했는데, 재고 물품이 판매되고 있는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왜 재고품을 수거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제품을 사 간 도매상들에게 수거 요청을 했지만 이미 제품이 (팔려서) 없다고만 해 어쩔 수 없었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거래 장부가 다 남아있는데 의지만 있다면 제품을 회수하는 일이 그리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게다가 지난해 7월 이후엔 CMIT/MIT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해명도 거짓이었습니다. 이 업체에서 생산한 제품의 제조일자를 보니 식약처 고시 시행 이후에 생산된 것들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올해 생산된 제품도 있었습니다. 또 화장품의 경우엔 제조일자 표기가 의무 사항은 아니기 때문에, 유통기한만 적힌 제품들도 상당수였습니다. 하지만 화장품 유통 기간이 보통 2~3년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유통기한이 2019년까지로 적힌 제품들도 고시 이후 제조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야말로 업체는 정부의 고시를 무시하고, 정부가 이를 감시하지도 못하는 '무정부 상태'나 다름 없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부른 구조적 악순환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습니다.
● '살균제 화장품' 16종 확인…더 있을 수도

정부도, 기업도 챙겨주지 않는 생명과 안전은 누가 챙겨야 할까요. 정부의 체질 개선은 계속 요구하더라도, 소비자 입장에서 우선은 최소한의 자기 방어 차원에서 화장품 성분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지난해 8월 이전까지 화장품에서 가습기 살균제 원료가 사용돼 왔다는 사실도 소비자에게는 알려진 적이 없습니다. 지난해 식약처의 '사용 금지 고시'라도 소비자들이 알았더라면, "재고 상품은 소진되도록 놔둔다"는 어이 없는 대처는 하지 않았을 겁니다.

사실 이번 취재는 한 의원실의 꼼꼼한 확인에서 시작됐습니다. 식약처 고시 이전 CMIT/MIT가 사용됐던 화장품, 의약외품 목록을 모두 받은 다음, 대형마트 등 각종 유통매장에 직접 나가서 동일 제품의 성분을 하나하나 확인한 겁니다. 그래서 발견한 것이 바로 16종의 화장품들이었습니다.

지난해 8월부터 시행된 고시에는 씻어내는 제품에만 극소량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그외 화장품에는 일절 사용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예를 들면 샴푸나 클렌징 폼 같은 금방 씻어내는 제품에는 0.0015% 이하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마저도 화장품 업계에는 되도록 쓰지 말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집안 샴푸 성분 보고 너무 놀랄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씻어내는 제품이 아닌 뿌리거나 바르는 형태의 화장품입니다. 특히 분무 형태로 뿌리는 화장품 같은 경우는 가습기처럼 호흡기로 유입될 수 있는 제품이어서 특히 위험해 보였습니다. 또 뿌리는 화장품보다는 덜하겠지만 '아기와 함께 바르는 로션' 형태도 있었습니다. 식약처가 지난 2011년 성균관대 약대에 의뢰한 실험 결과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중 CMIT/MIT가 가장 피부 독성이 강했다는 결과도 있기 때문에 흡입하지 않는다고 안심할 일은 아닙니다.

문제는 CMIT/MIT가 함유된 화장품이 16종보다 더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아까 언급한 것처럼 몇 사람이 하나하나 확인한 것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저희가 확인한 16종이 무엇인지는 실제 방송 리포트를 자세히 보면 아실 수 있지만, 취재파일에서 굳이 밝히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16종만 피하면 되는 것도 아니고, 또 같은 제품이라도 해당 성분이 빠진 것도 있습니다. 그러면 화장품을 어떻게 사야 하느냐고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화장품은 모든 성분을 표시하는 것이 의무화돼 있다는 점입니다.

● 화장품 살 때 성분 표시 꼭 확인해야

화장품 용기에는 모든 성분이 표시돼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기 쉬운 CMIT/MIT 같은 줄임말로 되어 있는 게 아니라 화학물질 이름이 그대로 표기됩니다. 우리가 오늘 지적한 CMIT/MIT는 '메틸클로로이소티아졸리논, 메틸이소티아졸리논'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소 복잡하더라도 휴대폰에 저장해놓고 화장품 살 때마다 확인해야 합니다.
정부에서는 CMIT/MIT의 유해성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할지 모릅니다. 근거는 쥐 실험에서 CMIT/MIT의 독성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뱀 독이 사람에게는 독이지만 뱀에겐 독성이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쥐에게 독성이 안 나타난다고 사람에게 안전하란 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 명백하게 CMIT/MIT 때문에 사망한 사람까지 나왔습니다. 때문에 주저하던 정부도 이미 2명의 사망자를 포함한 5명의 CMIT/MIT 피해자를 어쩔 수 없이 인정했던 겁니다. 이렇게 독성과 피해 인정을 주저하는 데에는 곧 다가오는 공소시효 등 여러 배경이 있다고 추정되지만 여기서 논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더 확실한 위협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화장품이 아니지만 이와 비슷한 의약외품에 대한 것입니다. 의약외품은 신체에 대한 작용이 아주 작은 의약품이라고 간단히 정의할 수 있습니다. 탈모제나 가글액, 치약, 손소독제 같은 것들입니다. 화장품 만큼이나 신체에 닿을 가능성이 큰 것들입니다.

식약처는 의약외품에 대해서도 CMIT/MIT 사용을 금지하는 고시를 지난 3월에 시행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유예 기간을 1년이나 뒀습니다. 내년 3월까지는 CMIT/MIT를 써도 법적으로 문제삼을 수 없는 겁니다. 화장품이 지난해 7월 고시를 발표해서 한 달만 유예 기간을 둔 것과 대조적입니다. 또 의약외품의 경우 모든 성분을 표시할 의무가 없습니다. 주요 성분만 표시하면 됩니다. 즉, CMIT/MIT를 사용했더라도 표기하지 않으면 화장품처럼 걸러낼 방법도 없는 겁니다.

따라서 의약외품도 모든 성분 표기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의 지적은 타당해 보입니다. 권 의원은 "CMIT/MIT로 사람이 죽었고, 이를 정부가 인정했는데도 식약처의 태도가 소극적"이라면서 "식품 외에도, 이제 바르고 뿌리는 다양한 화학 제품의 안전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털어놓을 것이 하나 있습니다. CMIT/MIT 함유 화장품을 생산한 중소업체 관계자와의 통화 내용입니다. 이 관계자는 "보도가 나가면 우리 같은 중소업체에는 타격이 너무 크다"고 얘기했습니다. 때문에 저희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도, 기업도 소비자의 건강을 최우선시하지 않는 상황에서 해당 제품들을 공개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부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당장 얼굴 모르는 소비자보다는, 자주 얼굴도 보고 통화도 하게 되는 기업들이 더 눈앞에 아른거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소비자에 더 편향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경험상 그래야 기업과 소비자 사이에 최소한의 균형감이 생길 거라고 봅니다.       

▶ 아기 로션에도 버젓이…'살균제 화장품' 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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