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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나라꽃 '무궁화'…법으로 정해야 할까?

[취재파일] 나라꽃 '무궁화'…법으로 정해야 할까?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나라꽃’이 뭐냐는 질문에 답하지 못할 우리 국민은 별로 없을 듯 합니다. 답은 물론 ‘무궁화’입니다. 무궁화와 우리나라와의 인연은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 조상들은 무궁화를 고조선 이전부터 하늘 나라의 꽃으로 귀하게 여겼고, 신라는 스스로를 ‘근화향’(槿花鄕), 즉 무궁화 나라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중국에서도 우리나라를 오래 전부터 ‘무궁화가 피고 지는 군자의 나라’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궁화가 온 겨레의 나라꽃으로 인식된 건 구한말이었습니다. 구한말 개화기를 거치면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노랫말이 애국가에 삽입되면서부터 국민적 사랑을 받았고 나라를 빼앗긴 일제 강점기에도 무궁화 사랑은 면면히 이어졌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광복 후 무궁화는 자연스럽게 나라꽃으로 자리잡게 됐습니다.
 
너무 당연한 듯 보이는 이런 역사적 맥락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하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무궁화가 나라꽃이라는 아무런 법적, 제도적 근거가 없다는 점입니다. 이 사실은 저의 8월 15일 <8시 뉴스>(나라꽃 무궁화?…10년째 말만 요란한 정치권) 기사에서 이미 소개해 드렸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더,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만드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애국가 역시 사실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광복절을 포함해 모든 국가 행사 때마다 불리지만 애국가 역시 그냥 관습일 뿐입니다.
 
● '나라꽃', 법으로 정해야 할까?
 
나라꽃을 꼭 법으로 정해야 할까? 제가 이 기사를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또 가장 많이 접한 질문입니다. 사실 규격이 통일돼야 하는 국기와 달리 많은 나라에서 국화는 법으로 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관습적으로 특정 꽃을 국화로 여길 뿐입니다. 프랑스와 캐나다, 영국, 일본 등 많은 나라가 국화를 법제화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의 <8시 뉴스> 기사에서 외국의 국화로 미국은 장미, 일본은 벚꽃을 예로 든 부분이 있었는데 뉴스가 나간 뒤 적지 않은 분들이 일본의 국화(國花)는 벚꽃이 아니라 국화(菊花)라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일본 왕실의 꽃이 국화인 점을 감안하면 국화도 일본의 나라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벚꽃 역시 분명한 일본의 나라꽃이라는데 별다른 이견이 없습니다.

일본 출신의 세종대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의 식자층 내에서는 일본 왕실 꽃인 국화를 나라꽃으로 보기도 하지만 일반 대중들이 생각하는 나라꽃은 역시 벚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정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일본 역시 나라꽃을 법으로 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본 문화원 역시 나라꽃을 묻는 질문에는 "정해져 있지 않다"는 대답으로 일관했습니다. 국화를 법제화하지 않은 것, 이것이 왕실의 꽃과 국민적 꽃, 두 꽃 모두를 국화로 가져갈 수 있는 묘수가 된 셈입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미국이 국화를 장미로 법제화한 사례를 빼면 국화까지 법으로 규정한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무궁화를 국화로 법제화하자는 법안이 지난 16대 국회 때부터 10년 넘게 계속 꾸준히 제출되고 있습니다. 법안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국민적 자부심을 높이고 국가를 알리는 수단으로서 그 위상을 확실히 하자는 취지입니다.
 
● 취지는 좋지만…

꼭 법으로 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으로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취지 자체는 나쁘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기왕이면 나라꽃에 대한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는데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문제는 그런 취지라면 법안이 처리될 수 있도록 노력도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겁니다.
 
20대 국회에도 관련 법안은 어김없이 제출됐습니다. 과거 법안을 검색해보니 같은 의원의 대표발의로 거의 똑같은 내용의 법안이 지난 19대 국회에서도 제출된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법안 내용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살펴봤습니다. 각각 조항 1개씩 삭제한 걸 빼면 똑같았습니다. 제가 검토한 게 틀리지 않았다면 법안 조항의 글자 하나까지 모두 같았습니다.
 
해당 법안을 논의하는 상임위를 찾아가 19대 제출법안이 왜 폐기됐는지 물었습니다. 담당 직원은 자신이 이 업무를 맡은 뒤 2년 반 동안 단 한번도 관련 법안들이 논의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워낙 제출되는 법안들이 많기도 하려니와 당장 시급한 민생 법안이 아니다 보니 후순위로 밀려 폐기된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부 측 담당자의 이야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담당 상임위는 안전행정위원회인데 정작 법안을 내는 의원들은 다른 상임위 소속이어서 법안만 내놓고 제대로 챙겨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담당자는 “(의원들이) 발의만 하시지 그냥 관심이 없으시고 또 당장 민생 법안은 아니기 때문에 후순위로 밀리고, 하여튼 이벤트성으로 그치고 그렇습니다. 사실은….”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의원들의 노력을 폄훼할 생각은 없습니다. 토론회를 열어 여론을 수렴하는 등 열의를 보이는 의원실도 분명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정작 법안 처리를 위해 필요한 상임위 절차에는 제대로 된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 '나라꽃', 모두가 무궁화에 찬성?
 
앞서 말씀 드렸듯이 다른 나라와 달리 무궁화는 우리나라가 힘들고 어려웠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나라꽃으로 겨레의 마음 속에 각인된 특수성을 갖고 있습니다. 나라꽃을 꼭 법으로 정할 필요는 없지만 한 번쯤 진지하게 논의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일반적 생각과 달리 법안을 추진하는 의원실과 정부 관계자 이야기에 따르면 무궁화를 국화로 정하는데 반대하는 의견도 없지 않습니다. 실제로 구한말 황성신문이 무궁화는 국화로 마땅치 않다며 복숭아꽃으로 바꿀 것을 주장했는가 하면 해방 이후 소설가 이태준은 우리에게 친근한 진달래를 국화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다시 말해, 단순히 무궁화를 법으로 정할지 말지 수준의 문제를 넘어설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국민 대다수가 무궁화를 국화로 여기는 상황에서 국화가 바뀔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치권이 국화에 대한 논의를 직접 꺼낸 만큼 한번쯤 사회적 차원에서 명확히 정리하고 갈 필요성은 있어 보인다는 점입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정치권이 해야 할 책무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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