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정작 칼끝은 뭉뚝합니다. 에페와 플뢰레의 경우 버튼도 달려있습니다. 상대방을 "쿡" 치르면 버튼이 눌리는 겁니다. 그럼 안전한 걸까요?
잘 부러지지 않는 재질을 사용해 만들었다고 해도 칼이란 건 부러지기 마련입니다. 녹슬고 오래된 칼이라면 더욱 그렇죠. 이번 리우 올림픽 펜싱 경기를 보면, 상대방을 찌르는 순간 칼이 한껏 휘어지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이 때 칼이 부러진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 한여름 무더위에도 '긴팔 펜싱복'은 필수
취재진이 찾아간 서울 중경고등학교 펜싱부 연습실. 무더위에 에어컨을 켜놨지만, 선수들의 훈련 열기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렇게 "덥다"는 게 첫 인상이었다면 "정신없다"는 게 그 다음이었습니다. 칼을 들고 거침없이 전진하는 바쁜 발소리와 칼 부딪히는 소리가 정신없이 귓가를 때렸습니다.
● "펜싱칼은 뭉뚝합니다만…"
펜싱칼이 뭉뚝하다고 해서 안전한 건 아닙니다. 만약 경기나 연습 도중에 칼이 부러진다면 부러진 칼의 단면은 매우 날카로울 수 있습니다. 뭉뚝한 칼날이 언제든 상대방의 옷 속을 파고 들 수 있는 날카로운 흉기로 변할 수 있습니다.
펜싱복은 그렇게 부러진, 혹시 흉기처럼 날카롭게 부러질 수 있는 칼을 막아내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대부분의 펜싱복은 수입품인데 대략 한 벌에 100만 원 조금 안 됩니다. 방탄복을 만들 때 쓰는 특수 섬유를 이용해 만들다보니 가격이 비싼 겁니다.
● "강철보다 5배 강하다"…방탄복에 쓰이는 특수 섬유
펜싱복에 사용된다는 케블라 섬유는 미국의 듀폰사가 1970년대에 개발한 인조섬유입니다. 이 회사 담당자는 "나일론의 먼 친척"이라고 이 인조 섬유를 소개했습니다. 물론 나일론보다는 훨씬 고강력 섬유입니다. 같은 굵기로 만들면 강철보다 5배 강합니다.
● 방탄복보다 "더 촘촘하게"…'방침'·'방검' 기술 적용
총알을 막는 방탄복의 경우에는 총알의 회전을 잡아주면서, 동시에 충격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방탄 기술이 사용됩니다. 하지만 펜싱복에는 베는 공격을 막는 '방검 기술'과 찌르고 들어오는 공격을 막는 '방침 기술'이 쓰입니다.
얇은 칼이 찌르고 들어오기 때문에 강력한 특수 섬유의 씨줄과 날줄을 더 촘촘하게 해서 파고 들어오는 틈을 최소화한 뒤 그런 조직을 켜켜이 쌓고, 그 앞에는 칼이 파고드는 힘을 줄여주는 특수 수지로 코팅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 만든 펜싱복은 속에 입는 옷과 겉옷을 합쳐 163kg의 힘을 버틸 수 있습니다. 특히 찌르기 공격을 해서 칼 끝의 버튼을 눌러야 하는 에페와 플뢰레가 단위 면적당 가해지는 힘이 더 강합니다. 한국스포츠개발원 정진욱 교수는 "플러레와 에페 같은 경우는 찔러서 칼 끝의 부위가 접혀야 되기 때문에 사브르에 비해서는 강도가 조금 세다"라고 설명했습니다.
● 워낙 빠르니까…마스크도 '촘촘하게'
머리와 얼굴을 보호하는 마스크는 녹슬지 않는 스테인리스 철강으로 촘촘하게 만듭니다. 규정상 구멍 크기는 최대 2.1㎜이고, 철선 굵기는 지름이 1㎜인데, 12kg의 힘을 버텨야 합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공격과 수비가 이뤄지다보니, 선수 보호 뿐 아니라 경기 판정에도 첨단 장비가 쓰입니다.
종목에 따라 찌르고 베는 방식과 점수를 주는 부분이 각기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칼과 조끼에 흐르는 전기를 이용해 점수를 판정합니다. 한때 전자 장비라는 걸 자랑하듯 선수들에게 치렁치렁 전선을 달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무선으로 바뀌었습니다.
아주 오래된 운동 경기인 펜싱. 하지만 몸에 걸치고, 얼굴에 쓰고, 손에 든 장비들에는 모두 첨단 과학이 곁들여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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