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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곡성' 구니무라 준의 여섯 토막 이야기

[월드리포트] '곡성' 구니무라 준의 여섯 토막 이야기
영화 곡성의 섬뜩하고 비밀스러운 이방인, 구니무라 준 씨를 SBS 도쿄지국에서 만났습니다. '곡성' 뿐만 아니라 과거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빌', 또 키타노 타케시의 '아웃레이지' 등에서 워낙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했던 배우라서 솔직히 살짝 긴장했습니다. 

영화 전문 기자도 아니고, 일반 관객 수준의 지식과 질문으로 인터뷰를 잘 끌고 갈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현지 발음 대로라면 '쿠니무라 준' 씨지만, 표기원칙에 따라 '구니무라 준'으로 통일해 표기하겠습니다.) 

하지만 인사를 나누는 순간, 괜한 걱정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베테랑 배우답게 잘 훈련된 발성과(훈련한다고 아무나 되는 게 아니지만) 은근히 사람을 압도하는 아우라는 대단했습니다만,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근사하고 편안한 배우였습니다. 어떤 질문에도 친절하고 성실하게, 특히 편안한 웃음으로 답해 주었습니다.
SBS 도쿄지국에서 인터뷰에 응해 준 구니무라 준 씨
인터뷰는 1시간 정도 진행됐습니다. 곡성에 출연하게 된 계기와 인상적인 장면 등을 시작으로, 한국 영화에 대한 인상과 공동작업의 소감까지 열 가지 정도의 질문을 했습니다. 여기에서는 질문과 답변 전체를 옮기기보다 구니무라 씨의 인상적이었던 답변 여섯 토막을 소개할까 합니다. 답변을 텍스트로 요약하고, 1분 안팎으로 편집한 인터뷰 동영상을 첨부했습니다.

● "나는 큐싸인이 들어와야 스위치가 켜지는 타입입니다."

조금 결례가 될 수 있지만, 마치 동네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아저씨 느낌이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구니무라 씨는 평소 자신의 모습이라며 선뜻 동의(?)했습니다. 자신은 큐싸인이 들어와야 스위치가 켜지는 타입이라면서 곡성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습니다. 

키타노 타케시 감독의 '아웃레이지' 등을 보고 자신을 '야쿠자 전문 배우' 쯤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데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은 특정한 이미지에 고정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폭넓은 캐릭터를 연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한국 영화가 너무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강렬하고 재미있을 수 있죠?"

곡성에 출연하게 된 계기를 물었습니다. 나홍진 감독이 일본까지 건너와 극본을 전해주는 등 적극적으로 제안한 것이 직접적인 출연 이유였지만, 그 이전에 한국 영화에 꼭 한번 출연해보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힘 있고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 늘 궁금했다고 합니다.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니까 예의상 하는 말일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한국영화를 줄줄 꿰고 있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등을 정말 재미있게 봤다고 소개한 뒤, 멀게는 안성기 씨 주연의 1987년 작 '안녕하세요 하나님'까지. 한국영화는 단단하고 깊이 찔러와서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87년 작 '안녕하세요 하나님', '살인의 추억', '서편제' 등 한국 영화를 줄줄 꿰는 구니무라 씨

● "작가주의적 감독들의 절대적 권한…강렬함의 원천이 아닐까?"

어느 나라나 영화 만들기는 비슷하다고 전제하면서도, 한국은 특히 '감독들의 절대적인 권한'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나홍진 감독이 유별나다는 평가를 나중에 들었다고 살짝(?) 폭로하면서, 감독의 머리속에 있는 이미지를 영상화하기 위해 혼연일체가 되는 제작 현장이 한국영화 강렬함의 원천이 아닐까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곡성' 제작 현장의 나홍진 감독과 구니무라 씨…'감독의 절대적 권한이 인상적
● "곡성에서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바로…"

영화 곡성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한 장면만 꼽기는 쉽지 않다며 잠시 침묵한 뒤, 먼저 '굿 대결' 장면을 꼽았습니다. 자신과 일광(황정민 분)의 굿 장면을 교차 편집한 부분인데,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엄청난 에너지를 쏟았던 촬영분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본 부분은, 주인공 종구(곽도원 분)가 차 안에서 부부관계를 갖다가 딸 효진(김환희 분)에게 들키는 장면. 이어서 입막음(?)을 위해 이것 저것 사주다가 "어디까지 본겨?"라고 물어보는 종구와 어른스러운(?) 효진의 대꾸 장면이라고 말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게 찍은 장면은 종구가 일종의 시험에 드는 '교통사고' 촬영이라고 했습니다. 곡성의 영화 속 계절은 여름이지만 실제 촬영은 겨울에 많이 이뤄졌기 때문에, 비 오는 아스팔트 위에 호흡을 멈추고 시신 연기를 했는데 속된 말로 "얼어 죽는 줄 알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최고의 장면을 건지기 위해 몇번에 걸쳐 촬영이 이어졌고, 도저히 견디기 어려워서 "한번만 더 하고 이제 그만합시다."라고 나홍진 감독에게 항의성(?) 요청을 했다고 합니다.
니무라 씨가 가장 힘든 촬영이었다고 소개한 교통사고 장면
 

● "일본 관객들은 곡성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바깥세상에서 온 사악함', '미지의 공포'를 영화적으로 표현했다고 하더라도 일본인을 악마로 그린 영화적 설정에 일본 관객들은 거부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구니무라 씨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구니무라 씨도 비슷한 걱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먼저 영화 속 자신의 이름을 '이방인'으로 고쳐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처음 극본에는 '일본인'으로 돼 있었는데, 자신이 감독에게 얘기해서 '이방인'으로 수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인'이라는 이름은 영화 속 이야기와도 연관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위 질문과 같은 오해를 받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사람인지도 불분명한 존재에게 붙일 이름은 아니라는 게 이유였다고 말했습니다.

그 외에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는 게 구니무라 씨 답변입니다. 냉각된 한일관계 때문에 혹시 일부 관객이 그런 거부감을 가질지도 모르지만, 완성된 영화 '곡성'은 그런 오해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자신은 전혀 걱정하지 않지만 혹시 일부 관객이 그런 반감을 나타낸다면, "너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떠드는 거냐."라고 말해줄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 "국적을 떠난 영화 만들기, 행복했다."

곡성 이후 한국에서의 큰 관심에 너무 감사하다는 구니무라 씨는, 앞으로도 '한일 공동의 영화만들기'가 활발해졌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서 열정을 쏟아붓는 것에 국적과 인종은 전혀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국가 차원의 관계(한일관계)가 어떠하든, '영화 만들기 공동작업의 즐거움'에는 아무 지장을 줄 수도 없고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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