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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검찰청 캐비넷 속의 '몰래변론 62건'

[마부작침] 오늘의 숫자

법조계 고질병 중 하나가 '몰래변론'입니다.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고 변론하는 걸 뜻하는데, 주로 법원 검찰 출신, 즉 고위 전관 변호사들이 애용하는 불법 변론 방법입니다.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다보니 수임료를 신고할 필요가 없고, 변론 과정은 불투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최근 구속기소된 홍만표 변호사(전 검사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홍 변호사는 알선 청탁 명목 등으로 5억 원대 금품을 수수하고 15억 원대 조세포탈 혐의로 앞서 구속 기소됐습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홍 변호사가 62건의 몰래변론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건을 두고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고, 은밀한 변론을 했는지 밝히지 않았습니다. 변호사 징계권한을 가지고 있는 대한변협에 징계 신청을 할 때도 해당 목록은 제외시켰습니다. 변협은 "징계 조사를 위해 몰래변론 내역이 필요하다"고 요청했지만, 검찰은 "의뢰인의 정보를 담은 수사자료를 변협에 전달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거부했습니다. 변협은 결국 해당 의혹에 대해선 징계를 하지 못하고 조세포탈과 다른 변호사법위반 혐의에 대해서만 징계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검찰 말대로 몰래변론 목록엔 사건 관계자의 정보가 포함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검찰은 정말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목록 공개를 거부했을까요. 속내를 살펴봐야 합니다. 통상 변호사들이 정상적으로 사건을 수임하면 지방변호사회를 경유해 선임계를 제출하게 돼 있습니다. 당연히 변호사단체는 변호사가 어떤 사건을 누구의 의뢰를 받아 수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홍 변호사가 정상적 절차에 따라 사건을 수임했다면 당연히 변협도 이를 알 수 있었는데 불법적인 몰래변론 탓에 알 수 없었다는 겁니다. 결국 검찰 주장대로라면 변호사가 몰래변론을 하면 '개인정보 보호 명목'으로 영원히 검찰청 캐비넷 속에 묻혀 있어도 된다는 뜻이 됩니다. 불법적으로 선임을 하면 숨길 수 있고, 합법적으로 변호사 선임을 하면 손해를 보는 셈입니다. 

이번 몰래변론 내역은 법정에서도 공개될 가능성은 낮아보입니다. 검찰이 홍 변호사를 기소하면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검찰이 몰래변론을 의도적으로 숨긴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뭘까요. 몰래변론 목록이 공개될 경우 파생될 일을 생각하면 그 이유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홍 변호사가 맡은 사건을 수사한 곳은 검찰입니다. 목록이 공개되면 수사를 담당한 검사와 검찰 지휘라인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홍 변호사와 부적절한 접촉을 했는지, 사건 처리가 정당했는지를 두고 검증이 들어갈 겁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가뜩이나 내부 비리로 골치가 아픈 검찰 입장에선 당혹스러울 겁니다. 게다가 정치권이 '공정성을 의심받고 권력만 비대해진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상황에서 추가 의혹 제기는 악재일 수 있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홍 변호사의 확인된 불법행위는 모두 기소 대상에 포함시켰다"는 입장입니다. 홍 변호사의 불법행위에 연루된 검찰 인사도 없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물론 홍 변호사가 몰래변론을 했지만, 검찰의 사건 처리는 정당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검찰의 행태를 반추해볼 때 이런 태도에 대한 확인이 필요합니다. 검찰은 내부 비리에 관대했고, 스스로를 '무결점의 기관'으로 합리화했고 그러면서 오만함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런 탓에 자정작용도 이뤄지지 못했고, 내부 개혁도 하지 못했습니다. 검찰이 '의뢰인 보호'를 위해 몰래변론 내역을 밝히지 않는다는 주장을 믿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장동호
디자인/개발: 임송이

※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방대한 데이터와 정보 속에서 송곳 같은 팩트를 찾는 저널리즘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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