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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상계동 올림픽과 리우 올림픽

리우 올림픽 공원 옆 빈민가 ‘오토드로모’

지구촌 축제 외곽에는 소외된 이웃이 있었습니다. 외국 손님들에게 서울의 못난 모습을 보일 수 없다던 ‘미학의 시대’. 그 덕에 서울 상계동 달동네는 포클레인과 용역 깡패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수 십 년 꾸역꾸역 살아왔던 주민들은 그렇게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고, 공권력에 맞선 이는 철창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야기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상계동 올림픽’은 올림픽의 뒤안길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리우의 철거촌 오토드로모 입구. 폐허가 된 마을 뒤로 올림픽 미디어 센터와 5성급 호텔이 보입니다. 올림픽 공원 주변은 지금 개발 붐이 일고 있지만, 정작 이곳에 살았던 주민들은 개발의 수혜를 입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올림픽 취재를 위해 브라질 리우에 와 있습니다. 프레스 센터와 올림픽 경기장이 모여 있는 올림픽 공원 주변에는 고가 아파트와 호텔이 즐비합니다. 국내는 물론 외국 투기자본까지 몰려들면서 집값이 꽤 많이 올랐다고 합니다.

올림픽 공원 지척에는 오토드로모라는 빈민가가 있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방송 센터(IBC)에서 걸어서 10분이 채 되지 않는 거리입니다. 취재를 마치고 방송 센터로 들어가던 길, 폐허가 된 빈민가의 모습에 잠시 발목이 잡혔습니다. 잘 정돈된 올림픽 공원과 어색한 동거 때문이었습니다.
철거 직전에 몰린 주택에 주민이 쓴 저항의 흔적. 생존권을 보장해달라는 내용인데, 마지막 문장인 "Nem Todos Tem Um Preco!"는 "사람의 가치는 돈으로 매길 수 있는 게 아니다."란 뜻입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오토드로모는 조그만 어촌 마을이었습니다. 하지만, 리우가 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되면서 마을 주민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렸다고 했습니다. 700가구가 수십 년 넘게 이곳에 살았지만, 올림픽 개최 결정 이후 계속된 브라질 정부의 빈민가 철거 작업에 대부분 쫓겨났습니다. 정부는 전기와 수돗물까지 끊었지만 끝까지 버틴 20가구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오토드로모를 찾아갔을 때 한 영국 언론이 취재를 하고 있었습니다. 브라질 정부는 리우 올림픽이 확정된 직후 빈민가 119곳에 대한 철거 계획을 발표했는데, 오토드로모는 올림픽 공원 가장 가까이 있어 부당한 철거의 상징이 됐습니다. 오토드로모를 포함해 지금까지 2만 명에 가까운 빈민가 주민이 철거로 인해 이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철거의 상흔은 곳곳에 남아있었습니다. 마치 폭격에 맞은 듯 여기 저기 널린 시멘트 덩어리들, 서슬 퍼렇게 드러난 철골, 주위를 덮고 있는 희뿌연 먼지. 그리고 곳곳에 저항의 흔적도 보였습니다. 철거 직전에 몰린 한 주택 벽면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Nem Todos Tem Um Preco. “사람의 가치는 돈으로 매길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토드로모의 풍경은 폐허를 방불케 합니다. 언덕 위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집들은 대부분 무너졌고, 곳곳에 버려진 살림살이가 나뒹굴고 있습니다. 마을의 활력은 철거와 함께 잃어버렸고, 지금은 적막만 흐르고 있습니다.
탄압받는 이웃의 생존권보다 체면 구기는 걸 못 견뎌했던 시대. 이게 비겁한 줄 알면서도, 그래도 이 덕에 우리가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고 자위했던 역사. 이렇게 또 다른 희생을 정당화시키며 자본주의를 추동했던 권력. 그리고 이를 배겨내야 한다며 회초리를 들었던 언론까지. 서울과 리우가 지구촌 축제를 소비하는 방식은 이렇게 닮아있었습니다. 제가 지구 정반대편 브라질에서 본 풍광은 대한민국의 과거인 동시에 현재였고, 미래이기도 했습니다. 
폐허 속 흰색 건물이 떠나지 않은 주민들의 임시 거처입니다. 일부 주민들은 끈질긴 저항 끝에 이곳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됐습니다.
현지 언론은 최근 오토드로모에 끝까지 남아 싸웠던 20가구가 잠시나마 자신의 집에 남을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해피 엔딩’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오토드로모에는 이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조그만 흰색 컨테이너 박스 건물이 마련됐습니다. 철거 이후 그나마 새로 생긴 터전입니다. 그런데, 정말 모든 게 좋게 끝난 걸까요. 정말 행복한 마무리였을까요. 1988년 그렇게 쫓겨난 상계동 그 분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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