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등급이 내려갔을까?’ 궁금해졌다. 활동보조 지원을 받을 정도의 장애를 갖고 있다면, 대개 현상 유지가 최선이다. 180명이나 되는 사람의 건강(혹은 생활형편)이 갑자기 좋아졌을 리 없다. 이전 심사에 문제가 없었다면, 이번 조사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활동보조 지원을 받는 장애인이라면 누구나 2~3년에 한 번씩 등급 재심사를 통해 자격을 갱신해야 한다. 사정이 좋아졌을 수도, 나빠졌을 수도 있어 그에 맞춰 지원 규모를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공단 각 지사의 조사원들이 장애인 가구를 방문하는데, 그때 면담한 결과를 종합해 점수를 매긴다.
심사 과정에서 조사원이 어떤 질문을 던질 지는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규정에 따른다. (참고: 보건복지부 고시 제2016-14호) 항목을 보면 장애인의 건강상태, 경제상황, 같이 사는 가족 등 가구조사를 기본으로 좀 더 심화하는 질문까지 다양하다. 이를 테면, ‘혼자서 식사를 얼마나 잘 할수 있는가?’에 대한 객관식 답은 다음과 같다.
1) 도움이나 조언 없이 식사할 수 있다
2) 식사하는 방법이나 해야 할 때를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3) 밥을 떠먹는 데 도움이 필요하다
4)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전적으로 필요하다
혹여 장애인이 자신의 상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대답할 수 없다 할지라도 괜찮다. 조사원이 관찰한 것을 토대로 참작하는 과정이 면담의 한계를 보완하기 때문이다. 직접 집을 방문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조사원들은 누가 장애인의 집에 방문하더라도 같은, 혹은 비슷한 결과를 낼 수 있도록 교육받는다. 이번 강서구의 경우 총 2명의 연금공단 직원이 심사 대상이었던 458가구를 방문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강서 지역 장애인 458명 중 무려 181명의 등급이 많게는 세 단계까지 하락한 것이다. 올해 전국 등급 하락률 평균이 4.11%인데 반해 강서구에선 39.52%,10배 가까운 수치가 나왔다. 지난해 전국 등급 하락률 평균은 3.51%였다.
강서구는 현재 서울에서 장애인 수가 가장 많은 자치구다. 연금공단도 이 점을 높은 하락률의 원인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 팩트다. 오히려 하락률이 이렇게 높을 수 없다는 근거가 된다. 모수가 큰 만큼 한두 건만으로는 전체 퍼센티지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충북 옥천처럼 심사대상 장애인 수가 총 29명인 곳이라면 모를까. 서울에서 가장 장애인 수가 많은 강서구에서 40% 가까운 하락률이 나왔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활동보조 등급은 자치구 내 장애인끼리 경쟁하는 상대 평가가 아니다. 동일인이 같은 시기에 심사를 받았다면, 전국 어디에 살든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게 원칙이다. 강서구에 특정 장애 등급의 사람이 많이 살 수 있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건 장애인의 절대 수가 아니다. 등급 변화가 2년 만에 급격히 컸던 장애인이 강서구에 유독 많았다는 점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장애인의 건강은 정말 드문 경우를 제외하곤, 시간이 갈수록 나빠지는 게 일반적이다. 급격히 좋아질 수 없다.
윤 씨는 활동보조 심사를 처음 받았던 9년 전부터 쭉 같은 집에 혼자 살고 있다. 경제 활동은 그때나 지금이나 없다. 9년 내내 윤 씨의 활동보조 등급은 1급이었다. 그런데 올해 처음으로 2급으로 내려갔다. 달라진 것이라곤 좀 더 나빠진 오른팔뿐인데.
경우의 수는 두 가지다. 저번 심사 결과가 잘못됐거나, 이번 심사가 잘못된 것. 이유를 막론하고 둘 중 하나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하락률의 폭이 커진 거다. 그런데 연금공단의 해명은 놀랍게도 둘 다 아니라는 것이었다.
(2편에 계속) ▶ [취재파일] 장애인을 숫자가 아닌 이웃으로 대하는 일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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