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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진화하는 보험사기① "한 달에 1억은 거뜬하죠"…'내부자들'의 범죄

한 의사가 "도수 치료하면 큰 돈 벌죠?"라고 물었습니다. 아니 의사가 왜 기자에게 이런 질문을 할까. "아니 우리 옆 건물에 빈 사무실이 생겼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들이 찾아와서 도수치료 병원을 열어보자고 해서요"

● 한 달에 '억 단위 순이익'…"엄청난 매출이 적힌 병원 장부를 보여줬습니다"

그는 강남의 잘 나가는 성형외과 의사입니다. 어느 날, 일이 거의 끝나가고  환자 발길이 뜸해질 즈음에 자신들을 '병원 컨설턴트'라고 소개한 사람들이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도수 치료 병원을 차려라."라며 "병원 속의 병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설명을 했다고 합니다.

다소 뜬금 없는 얘기에 일단 이들을 돌려보냈던 이 의사는 "도수치료 병원이 실손 보험금으로 큰 돈을 번다."는 얘기도 들었고, 내용이 궁금하기도 해서 이들을 다시 만났다고 했습니다.
다시 만난 '병원 컨설턴트'들의 <사업 브리핑>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의사 면허증을 빌려주고, 허위 진단서만 끊어주면 모든 경영은 우리가 알아서 한다.
- 도수 치료에 쓰이는 침대 같은 장비와 도수 치료 인력까지 모두 알아서 구해온다.
- 고객 유치를 위해 피부 관리를 해줘야 하는데, 기존 시설을 이용하던가 아니면 우리가 아예 장비와 인력을 가져오겠다.
- 직·간접적으로 보험금을 받아 생긴 이익은 계약 조건에 따라 의사와 컨설턴트가 나눈다.


그러면서 이들은 이 의사와 병원 사무장에게 자신들이 이미 컨설팅한 병원의 장부를 보여줬다고 합니다. 의사는 "엄청난 장부였다. 한 달에 몇 억씩 벌더라고요."라고 전했습니다. 이 의사는 허위 진단서를 끊어줘야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이 제안을 거절했다고 했습니다. 아마 기자에게는 뿌듯함 반, 아쉬움 반의 심정으로 색다른 경험을 털어놓은 듯 했습니다.

● '내부자들'의 본격 가담…"누구 소개로 오셨어요?"

실손 보험과 도수 치료가 만나서, 보험사기에 얽힌 숱한 잡음을 만들어내는 건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닙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마사지, 피부 관리, 미용 주사(비타민 주사나 피로 회복 주사), 뱃살 제거 시술 등을 실손 보험으로 해주는 겁니다. 실손 보험은 치료 목적이 아니면 보험금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미용 시술을 해놓고 “도수 치료를 했다”고 허위 진단서를 끊어주고 보험금을 청구하는 겁니다.
취재진이 만난 한 물리치료사가 전해준 한 병원은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실손 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해서 "아파서 도수 치료를 받았다."는 허위 진단서를 끊어주는데, 실상 병원에서는 마사지만 받고 가는 사람도 많았다고 합니다. 부인 이름의 실손 보험으로 남편이 마사지를 받기도 하고, 딸 이름의 실손 보험으로 어머니가 와서 피부 관리만 받고 간다는 겁니다.

이 병원의 이런 보험사기는 제법 알려졌는데도 아직도 성업 중입니다. "검찰이 보고 있다.", "경찰이 곧 친다더라."는 얘기만 1년째 나오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굳건할까요?
 
이 병원을 직접 가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냥 가서 "실손보험으로 마사지 받을 수 있다던데.."라고 떠봐야 쉽지 않습니다. "누구 소개로 왔다"는 걸 명확하게 밝혀야 합니다. 다른 병원들도 마찬가집니다. 취재진이 잠입했던 한 병원에서는 "그냥 소문 듣고 왔다"고 했더니 직원이 의사에게 쪼르르 달려가 "소개 받은 분 성함을 모르는데 어떻게 할까요?"라고 '큰 소리'로 물어보기까지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부자'를 알아야 합니다. 실손 보험과 관련된 보험사기에 대해 논란이 커지자 범죄는 반대로 점점 더 은밀해지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 커넥션은 보험금 지급과 관련된 내부자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의사와 병원 직원, 전직 보험사 직원과 보험 설계사 같은 내부자들인 겁니다.

● 4년에 70억 원 매출도…"보험 약관을 정확히 알고 이용할 줄 아는 사람"

"보험금으로 돈을 버는 병원을 차리자"며 컨설팅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내부자들을 잘 엮어 하나의 팀을 만드는 겁니다. 고객 유치를 담당하는 상담 직원부터 보험금 청구를 맡는 회계 담당까지 모든 영역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한 생명보험사 소속 보험사기 조사팀 직원은 "보험사의 보험 약관을 정확히 알고 이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 팀을 짜서 보험사기에 가담한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금감원에 따르면 보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모집, 병원 등 내부자들의 보험사기가 매년 늘고 있는데, 특히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36.1% 늘었습니다.
역시 보험사기 컨설턴트들을 만났다는 한 피부과 의사는 "실손 보험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는 건 2~3년 정도 밖에 안남았다고 하더라고요."라며 "모든 걸 자신들이 구해올 테니 함께 경영만 하면 된다고 했다"고 전했습니다. 그 역시 그들이 내놓은 병원 매출 장부를 봤다고 합니다. 그 장부를 본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첫 달 병원이라고 보면 거의 있을 수 없는, 굉장히 놀라울 정도의 그런 매출표였습니다."

그게 얼마 정도인지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경찰 수사를 토대로 짐작은 가능합니다. 경기도의 한 유명한 도수치료 병원을 수사했는데, 4년간 70억원의 '영업 이익'을 올렸다고 합니다. 1년에 15억~20억원 사이의 이익을 남긴 겁니다.

대부분 우리 보험금입니다. 내부자들의 보험사기로 선량한 가입자들의 보험금이 술술 새고 있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내부자들의 보험사기 가담을 막을 수 있을까요?
 
'진화하는 보험사기' 다음 편에서는 '처벌 강화', '제보 강화'를 통해 나날이 치밀해지는 보험사기를 막을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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