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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카드포인트, '현금처럼' 아니라 '현금'을 원한다

장롱 속 '카드 포인트', 언제든 빳빳한 1만 원 권으로 바꿔줍니다

KEB하나금융그룹이 지난해 '하나멤버스'라는 걸 내놓았습니다. 은행, 카드, 증권, 보험을 통합해 포인트를 쓸 수 있는 서비스인데, 8개월 만에 회원이 56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신한금융지주도 7월 들어 비슷한 걸 내놨는데, 보름 만에 40만 명이 가입했습니다. 금융지주회사들의 통합 포인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겁니다. 평소에 장롱 속에 넣어놓듯, 별 관심 없던 바로 그 '포인트'인데, 왜 갑자기 포인트에 열광하는 걸까요?

비결은 간단합니다. 내가 쌓은 포인트를 현금처럼 쓸 수 있다는 겁니다. 포인트 쓰려고 이것 저것 생각하기 싫으면 길거리 현금인출기로 걸어가서 내 카드 포인트를 바로 빳빳한 1만원짜리 현금으로 바꿀 수 있게 된 겁니다. '포인트 사용'에 대해 유독 고압적이던 금융회사들이 왜 이러는 걸까요?
● 금감원, "포인트는 맘껏 써야 해" 카드사 "네! 그런데요…"

금감원은 지난달 카드사들에게 "포인트, 소비자 마음대로 쓸 수 있게 하라"고 지시합니다. 기자회견까지 열고 이런 발표를 한 이유는 카드사들의 포인트 사용에 제한이 많았고, 그만큼 금감원에 들어온 민원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A씨는 카드 포인트를 잔뜩 모아서 벼르던 10만 원짜리 물건 사러 갔더니, "아, 그 포인트로는 5만 원밖에 결제 안됩니다. 나머지는 돈 내세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포인트 사용에 제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금감원에 따르면, 카드사 8개 가운데 5개 사가 포인트 사용 비율을 제한해놨습니다.

"이런 제한을 피하고 싶으면 카드사 자체 쇼핑몰에서 사라"는 게 카드사들의 뻣뻣한 자세입니다. 물론 많은 소비자들이 알고 있듯이, 자체 쇼핑몰에는 물건이 많지 않습니다. "제품이 다양하지 않고, 시중 보다 비싼 경우가 많다"는 것이 소비자들의 반응이죠. 하지만 카드회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싼 것도 있다"며 포인트를 마치 자신들의 것처럼 "여기서 써"라고 정해줬던 겁니다.

결국 보다 못한 금감원이 지난달 "내년부터 새로 가입하는 카드는 사용 제한이 없어진다"라고 발표했습니다. 금감원이 누굽니까. 금융 검찰입니다. 카드사들은 그날 바로 "그렇게 하겠다"고 일제히 공식 입장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뒤로는 불만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신규 카드가 아닌 기존 카드에 대해서는 "이 문제는 가맹점과 협의를 해야하기 때문에 기존 카드가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다"며 다른 소리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에버랜드 입장권의 50%까지 카드 포인트로 쓸 수 있도록 A카드사와 에버랜드가 계약을 맺었다고 치죠. 100% 쓰도록 하려면 계약을 다시 맺어야 하고, 그럴 경우 에버랜드가 "그런 조건이면 다시 협상하자"라고 나올 텐데 그럼 카드사는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에버랜드로서는 억울할 수 있겠지만, 여하튼 카드사들의 설명은 그렇습니다.

금감원의 야심찬 발표와 금감원을 의식한 카드사들의 긍정적인 답변. 그러나 카드사들이 솔직히 내놓는 이런 저런 핑계를 생각하면 '소비자들의 포인트 사용 자유'가 이뤄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 문제가 풀릴 기미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서민들에게 문턱 높고, 깐깐하다는 바로 '은행'에서 말입니다.

 금융지주사들의 변신, "ATM기에서 뽑아보라니까요. 포인트는 현금입니다"

시작은 KEB하나금융그룹이었습니다. 지난해 말 하나멤버스라는 걸 내놨는데, 처음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냥 기존에 있던 그런 포인트 서비스 정도로 치부됐습니다. 그런데 성공을 거뒀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귀찮게 카드 포인트에 캐쉬백 포인트 더하고, 포인트 옮기고 합치고 할 것 없이 그냥 내가 가진 포인트를 숫자로 딱 보여주고, 이것저것 계산하기 싫으면 ATM기로 가서 현금으로 뽑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형 금융지주사들은 은행을 기반으로 카드, 증권, 보험 등 다양한 금융회사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서비스가 가능해진 겁니다. 즉 다양한 포인트 적립처와 사용처를 갖춘 '통합 포인트' 제도가 가능해진 겁니다. 전업 카드사들과 달리 카드 포인트를 같은 계열의 은행 통장에 현금처럼 넣고, 또 그걸 ATM기에서 바로 뽑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 "포인트가 돈이 될 때 포인트가 강해집니다"

카드 포인트로 할 수 있는 것을 물어봤습니다. 은행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보험료, 공과금, 펀드 가입, 대출 이자, 은행 수수료 납입이 가능합니다. 모두 자신들이 금융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으니 가능한 겁니다. 공과금 내면서 "포인트로 내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고, 은행 창구에서 "수수료 1,000원인데요."라고 손을 내밀면 "포인트로 하세요."라고 말하면 되는 겁니다.

이렇게 현금처럼 쓰이기 때문에, 포인트로 고객을 유혹하는 힘도 강해졌습니다. 은행 창구에서 금융상품에 가입하면 포인트를 주고, 증권사에서도 펀드 가입 이벤트를 벌이면서 포인트를 줍니다. 금융 생활에서 주고 받는 포인트가 비로소 ‘돈’ 역할을 하면서 포인트는 더 강해졌습니다.

● 1.6% 정기적금 + 추가 포인트 = 2.6% 정기적금

'포인트는 현금'이라는 마케팅을 선점하기 위한 금융지주간의 경쟁이 심해진 건 소비자들에겐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특히 은행들은 계속되는 '저금리'에 주목했습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계속 떨어뜨린 뒤, 시중은행에서 1% 후반 대의 적금이나 예금 금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1.8%인 한 상품에 돈이 몰리는 현상이 생길 정도였죠.

그런데 큰 차이도 나지 않고, 소비자들도 시큰둥한 이 '금리 경쟁'을 '포인트 경쟁'으로 뛰어넘는 일이 생긴 겁니다. 지난 7월부터 판클럽이라는 이름으로 통합포인트 경쟁에 뛰어든 신한금융지주 측은 18세에서 30세까지 가입할 수 있는 신한은행의 한 적금 상품을 내놨는데, 1.6% 금리에 20만 원씩 내는 적금에 가입할 경우 은행에서 주는 포인트를 더하면 사실상 2.6%의 금리에 해당한다고 홍보를 했습니다.
포인트를 바로 현금처럼 뽑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홍보가 가능하겠죠. 예전 같으면 '포인트는 포인트고, 금리는 금리'라고 생각하는 소비자가 많기 때문에 효과가 없었겠죠. 하지만 포인트가 실시간으로 현금으로 교환되는 상황이 오자 이런 홍보가 효과를 내기 시작해진 겁니다.

● 금융지주회사가 왜?..."설문 조사해보니까 '돈으로 달라'고 하더라"

하나금융지주의 하나멤버스 테스크포스팀 최규원 부장은 "고객이 은행에 원하는 것을 지난해 설문 조사 형태로 알아 봤더니, 사은품도 필요 없고, 금리 찔끔 올려주는 것도 필요없고, 포인트를 현금처럼 쓰게 해달라는 게 가장 많았다."고 설명했습니다. 한마디로 "돈으로 달라"는 요구가 가장 많아 통합 포인트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겁니다.
신한금융지주 역시 은행, 카드, 증권사 등 계열사들을 총괄하는 TF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통합포인트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은행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단, 금융 계열사가 가장 많은 KB금융지주만 계열사 통합 과정을 거쳐 올 9월쯤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금융지주사들이 고객 요구만 바라보고 이 통합포인트를 운영하는 건 아닙니다. '충성 고객'을 늘리겠다는 생각이 깔여있습니다. 오는 12월이면 자신의 모든 계좌를 한 눈에 보고 클릭 한 번으로 이리저리 옮길 수 있는 계좌관리통합서비스가 시작됩니다. 이미 각종 공과금, 통신요금, 카드값 등이 빠져나가는 '주거래 계좌'는 손쉽게 옮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저금리 시대에 눈에 띄는 예금, 적금 상품을 내놓기도 쉽지 않습니다.

결국 포인트에서 차별화의 해법을 찾고 있는 겁니다. 포인트는 소비자 불만이 가장 많은 서비스였습니다.

● 일부 카드회사 "큰 영향 없을 것"

물론 아직 은행계 카드라고 해도 일부 가맹점에서는 포인트 사용에 여전히 제한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은행 카드는 안 받는다 싶으면 근처 ATM기에서 '현금'으로 뽑아 물건 값을 주면 됩니다. 포인트를 바로 현금으로 바꿔준다는 건, 포인트 사용 제한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은행계 카드사들이 이렇게 바쁘지만, 전업 카드사들도 다 그런 건 아닙니다. 이런 움직임이 어떤 영향을 줄 지를 물었습니다. 대기업 계열의 한 카드사 홍보팀은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봅니다."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답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 카드회사 판단대로 소비자들이 단지 포인트 때문에 오래 쓰던 카드를 옮기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앞으로 계속 카드사들이 원하는 곳에서 비싸게 포인트를 쓰지는 않을 겁니다. 포인트를 현금으로 뽑을 수 있는데, 사용에 제한이 있는 포인트를 주는 회사를 굳이 이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경기는 계속 어렵고, 소비자들은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습니다. 은행권의 통합 포인트가 인기를 얻은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포인트'의 주인인 소비자들은 '현금처럼'이 아니라 '현금'을 원합니다. 이런 흐름을 무시하고, 그저 그런 '포인트'를 유지하려는 일부 카드사들에 대해 소비자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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