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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이 대사] "깨달음의 길에서도 나는 여전히 암흑 속을 걷는다"

영화 '나의 산티아고'

[이 영화, 이 대사] "깨달음의 길에서도 나는 여전히 암흑 속을 걷는다"
▲ 영화 '나의 산티아고' 스틸 이미지

몇 년 전 일이다. 스페인 북서부 오세브레이로라는 작은 마을에서 산자락을 따라 이어져 내려오는 시골 길을 혼자 걷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출발해 4주 째 걷고 있다는 독일인 아저씨를 만났다. 족히 50대 중반은 돼 보였다.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4주를 계속 걸으면, 다리며 발이며 아프지 않나요?”
 
나란히 걷던 아저씨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빤히 쳐다봤다. 살면서 이런 한심한 질문은 처음 받아본다는 표정이었다. 한 음절 한 음절 또박또박 힘을 주면서 아저씨가 대답했다. “당.연.히. 아.프.지!”
 
그리고 이어진 아저씨의 또 한 마디. 그 한 마디에 나는 내 인생 첫 '까미노'에서 배워야 할 모든 것을 다 배웠다. “아픈 데가 없다는 건, 죽었다는 뜻이야.”
 
프랑스를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산티아고에 이르는 ‘까미노’는 스페인어로 ‘길’이라는 뜻이다. 원래는 예수의 제자가 걸었던 순례길이다. 풀코스는 800km에 달한다. 매일 25km 이상 걸어도 한 달 넘게 걸리는 긴 여정이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길로 몰려든다. 역설적이게도 그 길을 찾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삶에서 길을 잃은 이들이다. 영화 ‘나의 산티아고’의 주인공들 역시 그렇다.
 
번 아웃 증후군에 시달리는 유명 코미디언은 말할 것도 없다. 딸을 잃은 슬픔에서 회복하지 못한 어머니도 그렇다. 그저 기사를 쓰기 위해 왔을 뿐이라는 기자 역시 알코올의 힘에 의지해서 슬쩍 털어놓는다. “다들 자기 목표가 뭔지 모르니까 어떤 목표를 찾느냐가 (우리의) 목표”라고.
 
배낭을 싸는 이들이 챙겨 넣는 가장 흔한 목표는 아마 “깨달음”일 것이다. 하지만 며칠만 걸어 보면 금방 알게 된다. 집에서 회사로 이어지던 길과 마찬가지로 ‘까미노’ 역시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자신이 뭘 하는지를 의심하는” 여정이다. “깨달음의 길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암흑 속을 걷는다.”
 
육지에 ‘길’이 있다면, 바다엔 ‘섬’이 있다. 안도현 시인이 일찌감치 알려 주시지 않았던가? “세상한테 이기지 못하고/너는 섬으로 가고 싶겠지/한 며칠, 하면서/짐을 꾸려 떠나고 싶겠지/혼자서 훌쩍, 하면서.”
 
하지만, 막상 “섬에 가면/섬을 볼 수가 없다.” 그 섬 역시 사실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수평선 밖으로/밀어내느라 안간힘 쓰는 것을/보지 못한다.” 섬은 대답은 커녕 “삶이란 게 뭔가/삶이란 게 뭔가” 질문만 더 쏟아낼 뿐이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섬에서도 우리는 “밤새도록 뜬눈 밝혀야” 한다.
 
그러니 길 위에서 암흑 속을 걷든 “민박집 형광등 불빛 아래/…/섬이 되어 앉아”있든 마찬가지다. 혼자 오롯이 마음의 바닥을 들여다 보는 시간이 주는 위로는 고통스런 순례를 끝낼 새 길을 발견하는 데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순례는 매일 새로 시작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서 온다.
 
산다는 게, “긴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작은 여행을 이어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면, 까짓 것. 오늘 하루쯤이야 뭐 이만하면 대충 버텨볼 만 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니 오늘 험한 산길을 헤쳐 나가느라 다리가 좀 붓고 발목이 좀 아프더라도 모두 "부엔 까미노(Buen Camino)!" 내일은 내일의 길이 펼쳐질 것이다. ('부엔 까미노'는 '좋은 길'이라는 뜻이다. 까미노에서 만날 때마다 주고 받는 인사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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